음악으로 먹고사는 사람들

음악 + α + ∞을 추구하는 거문고올라운더 박다울의 세계

몸과 마음이 하나 되도록, 말과 음악이 같아지도록 모순 없는 이상을 추구하다

by Estel

거문고 연주자 박다울

현)국립국악중학교 강사 / 방울성 동인

2018 음악감독
2019 <목요풍류>
2020 <수림뉴웨이브> 두개의 방 / <대륙시대> 만주여신
2021 거문고 패러독스 <거문고는 타악기가 아니다> 음악감독

Editor's Comment

거문고를 연주할 때에는 소리와 움직임에 헌신하는 “찐”뮤지션,
유튜브에서는 거문고로 할 수 있는 4837293846가지 헛짓을 탐구하는 “찐”유튜버,
거문고를 중심으로 연주, 창작, 연출, 예술의 온 분야를 종횡무진하는
거문고 올라운더 박다울과 그의 음악을 만나보았습니다.

목차

1. 거문고와의 인연
2. 거문고 연주자 박다울
3. 거문고 연주자, 그리고 창작자 박다울
4. 거문고 연주자, 그리고 창작자, 그리고 기획자 연출가 그리고 유튜버 박다울
5. 미래와 거문고

1. 거문고와의 인연

거문고, 일반적으로 접하기에 쉬운 악기는 아닌데요. 처음 거문고를 어떻게 접하셨나요?

초등학교 1학년 때 집앞에 국악 학원이 생겨서 거기 다니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장구, 판소리, 민요를 취미로 배웠죠. 그러다 4학년 때쯤 어머니께서 거문고를 해보지 않겠냐고 물어보셨어요. 다니던 학원의 거문고 선생님께서 거문고는 너무 어렵다고, 소리를 내는 과정 자체부터 어려운 데다가 초등학교 4학년이면 손가락도 짧아서 잘 짚이지도 않는다고 반대하셨어요. 하지만 어머니께서 그냥 애랑 놀아준다 생각하시고 해달라 하셔서, 그렇게 시작하게 되었어요. 실제로도 그때는 거문고로 동요 조금 배우고 그랬어요. (웃음)


취미로 즐기는 것과 전공하여 업으로 삼는 것은 차이가 크잖아요. 어떻게 거문고를 전공하겠다고 결심하셨나요?

정신을 차려보니 전공을 하고 있었어요. 그냥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되는 것들 있잖아요. 그냥 그렇게 되었어요. 어린 나이에 거문고를 싫증낼 법도 한데, 싫증이 나기보다는 약이 올랐어요. 어렸을 때에는 자존심도 세고 고집도 세고 승부욕이 강했거든요.

그렇게 계속 하다가 국악중학교를 거쳐 국악고등학교에 진학했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 동아콩쿨이라는 대회에 나갔어요. 그전까지 대회에 나갈 때마다 "몸을 좀 덜 쓰면 좋겠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어서, 몸 쓰는 걸 자제하려고 신경 쓰면서 연습을 했어요. 그런데 막상 대회 나가서 연주를 하니, 자연스럽게 몸이 연주에 반응하는 거예요. 그래서 연주 도중 스타일을 바꾸었죠. 재미있게 몸 흔들면서 연주했어요. 이 기분이면 상 못 받아도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그 연주가 참 기억이 나요. 결과적으로는 상도 받았고요. 기분에 너무 취해서 몸을 움직인 탓인지 심사평으로는 역시 "몸을 너무 많이 쓴다"는 지적을 받았지만요.

2. 거문고 연주자 박다울

실제로 연주하시는 모습을 보면 움직임이 크게 느껴진달까, 손으로만 연주하는 게 아니라 팔과 어깨 온몸을 쓰면서 연주하는 게 느껴져요.

연주하면서 움직임에 특히 집중을 하고 있어요. 어떻게 움직이는 게 좋은 걸까 항상 고민하죠.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호흡에 방해되지 않는 움직임으로 연주하자는 거예요. 연주를 할 때 직관적으로 연주가 나올 수 있는, 머리를 거치지 않고 바로바로 나올 수 있는 동작들로요. 뭐랄까, 몸의 감각인 동시에 동작이 나오기 전까지의 생각이 많이 들어간 생각의 감각인 것 같아요. 연주할 때뿐만 아니라 창작할 때에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감각입니다.


지금까지 정말 많은 연주 해 오셨을 텐데요. 특히 기억에 남는, 개인적으로 의미를 부여하시는 연주가 있으시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몇 년 전 한옥에서 산조 한바탕을 한 적이 있어요(2015년 남산골한옥마을 "예인, 한옥에 들다"). 그때 연주가 기억에 남아요. 이때 이후로 음악이 많이 열렸어요. 산조에 대해서 많은 것들이 들리고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죠.


한갑득류 거문고 산조 한바탕을 연주도 하시고, 녹음도 하셨어요. 국악을 잘 모르는 독자들에게는 산조라는 단어가 생소할 것 같은데, 산조는 어떤 음악인가요?

산조는 옛날에 민속악 판에서 즉흥으로 연주하던 가락들이 악기별로 정립이 된 것이에요. 창작음악이자 전통음악이죠. 가락들이 악보로 정립화가 되고, 이건 누가 연주했고 저건 누가 연주했다 그러면서 한갑득류처럼 무슨무슨 류 이런 것들이 생겨났어요. 음악성도 있고 가치도 있는 음악이라 중고등학교 때 정악과 함께 가장 중요하게 배우는 음악이기도 해요.

선들이 굉장히 자유롭고, 직선과 곡선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음악이 달라지고, 한 소리를 얼만큼 머물게 하고 어느 시간을 보내게 하고 그런 것들에 따라 맛이 달라져요. 재미있어요. 전통음악이라는 범주 내에서는 자기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음악인 것 같아요.


산조 한바탕 연주를 준비하시면서 특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힘들었던 게 기억에 남아요. (웃음) 준비기간이 짧았어서, 악보 외우고 음악적으로 다듬을 시간이 촉박했어요. 산조 한바탕을 한 번 하려면 한 시간 정도를 내리 연주해야 해요. 통으로 외우면서 전체를 연주하는 감을 익혀야 하니, 한 번 연주를 하는 연습을 하려면 한 시간이 걸려요. 부동자세로 계속 앉아있어야 하고, 하다 보면 손가락이 굳어 있어서 펴 줘야 하고, 한바탕 하다가 중간에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고... 감을 찾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근육이 너무 붓는 바람에 손이 너무 아파서 주사도 맞아보았어요. 주사가 굳이 필요한지 전에는 이해가 안 갔는데, 이걸 준비하면서 이해가 되더라고요. 연주 전전날 맞고, 맞으면 힘이 풀려서 연주 전날에는 쉬고, 연주날 그냥 연주했어요.

“손이 풀린다”고 하잖아요. 저는 산조를 세 번째 탈 때 연주가 가장 잘 되더라고요. 무조건 앞에 두 번 통으로 연주를 해야 해요. 일단 루틴이 생기면 그 루틴을 지켜야 하고 안 지키면 마음이 굉장히 불안해지죠. 연주 당일 아침에 일어나서 한바탕, 리허설 때 한바탕 하고 세 번째 한바탕을 연주 때 탔어요. 리허설을 할 때 반주 선생님께서 “리허설인데 한바탕을 다 해야 하냐”고 물어보셨는데 다 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죠. (웃음) 재미있었어요. 20대 들어서 가장 열심히 연습한 시기인 것 같아요.




녹음을 진행하는 과정은 어땠나요?

짧은 산조를 녹음하면서는 정확한 박자와 음정에 집중을 많이 했어요. 학생들이 듣고 참고할 수 있는 가이드를 만든다는 측면에서 녹음을 했죠. 산조는 표현하는 게 사람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정확한 박자와 음정에 관한 가이드가 많지는 않아요. 박자도 여기서는 이런데 저기서는 다르고... 어떻게 보면 안 맞는 박자로 틀리게 연주하는 것이 전승되어 멋처럼 굳어지는 것들도 있고요. 분명히 박자가 안 맞는데 경험적으로 그렇게 연주되는 거죠. 저는 그렇게 하기보다는 정확한 박자와 음정을 제시할 수 있는 음원으로 만들어보기로 했어요.


3. 거문고 연주자, 그리고 창작자 박다울

거문고라는 악기로 기존에 있던 곡을 연주하시는 것뿐만 아니라 새로운 곡을 직접 창작하여 연주하는 활동도 활발히 하고 계세요. 창작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특별한 계기는 없었어요. 졸업하기 전에도 짬짬이 무언가 만들어보고 자투리로 녹음하기도 했어요. 졸업연주회 때 자작곡 를 연주했어요. 같이 졸업연주회를 맞은 친구들과 자작곡을 해보자고 마음을 맞춰서 같이 자작곡을 연주한 거였죠. 졸업연주회에서 자작곡을 연주한 게 사상 최초였어요. 그렇다고 엄청난 포부로 한 건 아니었고, 그냥 재미있으니까 별 생각 없이 했던 것 같아요.

졸업을 하니까 연주를 하고 싶은데 돈이 없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지원사업 공모에 이러이러한 걸 하고 싶다며 기획서를 썼어요. 썼는데 됐어요. 됐으면 만들어야죠. 그렇게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조금씩 가지고 있던 생각들이 구체화되고 그런 것들이 음악으로 나오게 되었어요.


, <두개의 방> 등 다양한 창작 작업이 있으신데, 어떤 작업들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Universe in me

는 문화오름이라는 곳의 기획자 분께서 기획하셨어요. 연주자와 무용수가 모여서 워크샵을 해 보면 어떨까 했던 게 계기였죠. 음악하는 사람들은 음악을 하고 무용하는 사람들은 춤을 추고, 그렇게 하다가 섭외가 들어와서 공연까지 올리게 되었어요.

내 안에 작은 우주가 있다- 이게 첫 발상이었어요. 우리의 우주는 무엇일까, 나는 누군가와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같을까, 같으면 정상일까, 다르면 비정상일까 이런 질문들을 서로 하며 점점 더 깊숙한 곳에 있는 질문으로 들어갔어요. 집착 같은 거죠. 이 집착이 굉장히 커지는 거죠. 거기서 소리를 내는 것에 집착해보자 하여 작업했어요.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음악과 움직임에 익숙해져 가면서 즉흥으로 만든 공연이었죠. 즉흥적인 움직임과 소리... 제가 생각하고 있던 것들과 잘 맞았어요.


두개의 방

<두개의 방> 공연은 수림문화재단의 기획과 제안으로 하게 된 공연이었어요. 수림문화재단에서 “파생”이라는 주제로 거문고 연주자 두 명을 섭외해서, 거문고를 바라보는 태도가 서로 다른 두 연주자가 나누어진 두 공간에서 각자 한 작품씩 번갈아 연주 하는 컨셉이었어요. 함께 협업해서 한 작품도 있었고요. 저는 여기서 <블랙 스완>, <칠채 뽀시래기>, <미완성곡이 하나 붙은 거문장난감>, <호모 파베르> 네 곡을 창작해서 연주했어요.

🎵 블랙스완
<블랙 스완>은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마구 섞어서(mash up) 짬뽕조합으로 만든 곡이에요. 거문고의 그루브, 블루스, 락적인 요소, 그리고 생상의 <동물의 사육제> 중 <백조>의 주제를 섞었어요. 왜 백조냐 하면... 제가 학교 다닐 때 클래식을 좋아했어요. 특히 생상의 <동물의 사육제> 그중에서도 <백조>를 굉장히 좋아했죠. 왜 좋아했나 생각해보니까, 유치원도 가기 전 어렸을 때 오디오 앞에 앉아서 집에 있는 태교음반 같은 것들을 하나씩 넣어 보면서 들어보던 기억이 나요. 집에 아무도 없으면 그러고 놀았어요. 집에 음반이 많은 편이었어서 하도 듣다 보니 취향이 생겼어요. 번호로 기억했죠. 이건 좋은 거, 이건 안 좋은 거... 그때도 <백조>를 너무 좋아라 했더라고요. 어릴 적부터의 취향으로 <백조>를 선택했어요. (웃음)

🎵 칠채 뽀시래기
<칠채 뽀시래기>는 풍물가락 중 “칠채”라는 가락을 가지고 와서 거문고로 만든 음악이에요. 초등학교 다닐 때 국악학원 다니면서 사물놀이를 했어요. 너무 재미있었어요. 템포도 빠르고, 여러 명이 같이 치는 가락이 잘 맞아들어가니까 카타르시스를 느끼고요. 아, 이런 게 그런 거구나 싶었어요. 그 기억을 계속 가지고 있었어요. 그 기억 때문에 거문고 때려치고 타악기를 전공하고 싶은 시기도 있었고요. (웃음) 그 기억을 늘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 타악의 가락을 가지고 와서 거문고로 음악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해서 만들었어요. 2018년에 만들었는데, 이 곡도 “파생”이라는 주제와 잘 어울려서 선정했어요.

🎵 미완성곡이 하나 붙은 거문장난감
<미완성곡이 하나 붙은 거문장난감>은 갖고 노는 장난감으로서의 거문고라는 컨셉으로 만들었어요. 거문고를 처음 배울 때에는 배우기 어려우니까 그냥 뚱땅뚱땅 두들기고 치잖아요. 거의 갖고 노는 거죠. 앉아서 소리 내 보고, 녹음해보고, 퍼즐 맞추듯이 창작하는 모습과도 많이 닮아있다고도 느꼈어요. 창작하는 방식의 파생이랄까, 그런 느낌으로 만들었어요. 아 그리고 아 앞에 붙은 미완성 곡이 <거문고 패러독스>의 전신이에요.

🎵 호모 파베르
<호모 파베르>는 같이 공연한 황진아 연주자님과 협업해서 만든 작품이에요. 두 명의 연주자가 각자 거문고로 음악을 풀어내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지만, 거문고를 도구로 사용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공통점에서 착안했어요. 도구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인류 <호모 파베르>라는 제목으로 음악을 구성했죠.




창작을 하실 때 염두에 두시는 주제나 방향이 있나요? 평소에 일상 속에서 하는 생각들과 창작이 연결되는 지점도 있나요?

평소에는 우리 삶이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을 해요.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지 않을 때가 많아요. 그래서 의심하게 되고, 삐딱하게 봐요. 시비 걸고 싶어요. (웃음) 이게 어느 정도는 창작으로 연결되는 것 같아요. 내 음악을 들을 때 사람들도 의심이 될까? 그 지점을 계속 고민해요. 그 고민 속에서 나온 무언가는 적어도 지금에는 최선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그런 태도만으로 창작을 하지는 않아요. 어떨 때는 단순해요. 거문고는 재미있는 악기에요. 타악기가 아닌데 때려야 소리가 나는 타현악기에요. 말 그대로 거문고는 재미있어요 이런 지점조차도. 이렇게 보다시피 창작의 아이디어를 얻는 곳은 굉장히 단순하고 쉽지만, 그걸 밖으로 나오게 하는건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그 사이에서의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요.


긴 이야기인데... 국악하는 사람들이 졸업하고 뭘 할까요? 다른 음악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국악에서는 할 게 많지는 않아요. 악단에 자리가 나면 시험장이 동창회에요. 10년 위의 선생님들까지 다 오셔서 뵙고요. 반갑죠. 시험장인데 분위기는 전혀 시험장이 아니에요. 이것도 아이러니죠. 악단 시험 끝나면 또 뿔뿔이 흩어져요.

우리들은 창작에도 도전하게 되죠. 익혀놓은 기술은 악기 연주이고, 악기 욕심은 있고 계속 연주하고 싶으니까요. 창작하려면 돈이 필요하니 여러 지원사업에 기획서를 내요. 그런데 지원사업은 뭘로 뽑나? 글로 뽑아요. 그래서 글이 엄청나게 부풀려져요. 내가 보여줄 것은 자그마한 건데, 글로는 어마어마하게 거대해지죠. 다 그래요. 그냥 저는 그걸 “음악 거짓말”이라고 하는데, 부풀려지고, 과대해지고...

우리가 배운 건 다 똑같아요. 우리 한계가 이거밖에 없는데 글로는 하겠다는 것들이 되게 부풀려져요. 되면 하죠. 그런데 다 비슷비슷해요. 이거 봐도 저거 봐도 그게 그거 같아요.

그래서 <거문고는 타악기가 아니다>가 나왔어요. 앞서 말한 것처럼 거문고는 타악기적인 요소가 강하기 때문에 타악적 요소가 배제될 순 없어요. 그래서 앞에 말한 것처럼 음악이 비슷해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 안에서 달라질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저는 소리들에 집중해요. 일상에서 느끼는 모순이나 삶의 태도나 시선을 억지로 투영하려고 하지 않아요. 뭘 표현하고 싶다, 뭘 표현해야겠다는 메시지가 없지는 않지만 굳이 우선시하지 않으려 해요. 지금으로서는 생각의 감각 몸의 감각들이 창작으로 연주로 이어지는... 이상주의 같은 생각을 해요. 궁극적으로 진짜로 그렇게 표현이 되게끔 하고 싶어요. 그게 지금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요. 계속 고민을 해야죠. 제 말과 음악이 같은 무게를 가지게 될 때까지.

4. 거문고 연주자, 그리고 창작자, 그리고 기획자 연출가 그리고 유튜버 박다울

그러한 아이디어로부터 <거문고는 타악기가 아니다>가 나왔는데요. 어떻게 기획하시고 공연하셨나요?

<거문고는 타악기가 아니다>라는 제목은 창작자보다는 기획자의 마음으로 지었어요. 거문고는 어차피 타악기면서 타악기가 아니기 때문에, 그 사실을 딱히 염두에 두지 않아도 타악기면서 타악기가 아닌 방향으로 창작이 흘러가거든요. 이 제목만으로도 매력있는 아이템이 될 것 같다는 생각으로 지었어요.

그리고 이 공연에서는 연출자의 마음이 컸어요. 작년에 온라인 공연이 굉장히 많아졌잖아요. 저도 몇 번 봤는데... 재미가 없어요. 온라인 공연의 특성상 계속 보고 있기 힘들어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와 넷플릭스에서 볼 때의 마음가짐이 다르듯이, 핸드폰 들고 한 시간 가만히 앉아서 보는 것이 굉장히 어렵고 힘들어요. 계속 자극을, 특히 시각적 자극을 주어야 보는 사람의 집중이 유지되고 그 사람의 시선을 붙들어둘 수 있죠. 그래서 초창기에 기획했던, 연주력으로 뒤덮는 방향과는 다르긴 한데,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예산 안에서 가능한 만큼 비주얼적으로 눈뽕을 한번 때려 보자고 마음을 먹었어요. (웃음)


내가 생각해도 이건 좀 잘 연출했다 싶은 부분이 있나요? 연출은 어떤 경험이었나요?

좀 잘했어, 라고 하는 부분은 연주자가 두 명으로 갈라지는 순간이요. 그건 온라인 공연으로만 표현 가능해요. 애초에 내가 두 명으로 갈라지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있었고, 예산이 허락하는 내에서 연출을 진행했어요. 잘 된 것 같아요.

RC카라는 매개체를 잘 찾은 것 같아요. 곡과 곡 사이를 매개해줄 만한 장치요. 하나 샀는데 속도가 너무 빠르더라고요. 그래서 부랴부랴 공대생한테 자문 구해가며 저항 붙여가며 개조했어요. 연습해야 할 시간에 그러고 있었죠. (웃음)

사실 이 공연이 끝나고 연출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졌어요. 만들다 보니까 욕심이 생겼어요. 일을 진행할수록 허점이 보이는데, 그 허점을 못 참겠더라고요. 그 허점을 메꿔야 하고, 옥의 티가 자꾸 눈에 밟히는 거에요. 기술팀에서 안 된다고 하는 걸 하고 싶고요. 표현하고 싶어요. 어떤 지점으로 가능해질까를 계속 고민했어요. 머릿속에는 생각의 뭉텅이가 있는데 따로 연출 공부를 한 게 아니다 보니 적절한 단어로 설명이 안 되는 지점들이 화가 많이 나기도 했어요. 그러다 보니 거의 나는 연주자가 아닌데? 이 공연에서 지금 나의 스탠스는 뭐지? 공연을 준비하면서 그런 생각들을 했고, 연출에 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어요.



유튜버로도 활동하고 계신데, 채널 이름이 <거문고의 대중화>에요. 유튜버 활동은 어떻게 시작하시게 되었나요?

원래 인터넷 감성을 좋아해요. 쓰잘데기 없는 것들, 우리 인생에서 정말 도움도 안 될 것 같은 그런데 재미있는 것들을 좋아하고 많이 봐요. 유튜브를 오래 전부터 하고 싶었고, 몇 년 전에 아리아나 그란데의 커버 영상을 처음으로 올렸어요. 올리고 나니 뭔가 부끄럽더라고요. 그때 계속 했었으면 지금쯤 채널이 상당히 컸을 것 같은데, 부끄러워서 안 했어요.




계속 중간중간 유튜브에 올릴 만한 아이디어들을 떠올리곤 했어요. 그런데 그 생각들이 정말로 유튜브에서 떡상하더라고요. 아, 내가 이런 쪽으로 감각이 있긴 있나보다 싶었어요.

재작년에는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렸어요. 국악에서는 한 번 연습을 하려면 한 시간이 걸리는 긴 곡들이 많잖아요. 산조 한 시간 정악 한 시간... 그런데 대중들은 그런 것들을 경험할 일이 거의 없어요. 앉아서 한 시간 동안 그것만 하는 집요함을요. 그래서 한 시간짜리 연습영상을 한 시간짜리를 올려 볼까, 쓰잘데기 없는 걸 한 시간 동안 계속 하는 영상을 올리면 언젠가는 뭔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연주를 하거나 동전 만 개를 세거나... 이런 컨셉이 별로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이 아이디어가 작년에 빵 떴어요. 이제는 배가 아픈 거지. (웃음) 그래서 시작을 하게 됐어요. 생각을 하자마자 집에 가서 했어요. 마음먹은 김에 스타트를 끊은 거죠.




더 나아가서... 그런 마음이에요. 거문고가 대중들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연주영상을 아무리 올려봤자 대중들은 안 봐요. 그러면 거문고를 영상의 아이템으로서 사용해보자고 생각했어요. 두루뭉술하게 열심히 해보자 이런 것보다, 구체적으로 거문고 시장을 넓힐 수 있는 지점을 찾고 싶어요. 영상의 내용 자체는 쓸모없고 별 거 없지만, 이 영상들이 대중들에게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가고, 대중들에게 거문고를 노출시키는 거죠. 그렇게 해야 조금씩 보니까요.

물론 그런 사명감만으로 하는 건 아니고, 제 안의 여러 부분과 맞물려 활동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게을러서 안하게 되네요. (웃음) 아이디어는 계속 있는데, 몸이 하나라서 힘에 부쳐요. 촬영 편집팀만 꾸릴 수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텐데, 결국 그게 또 돈이 드는 거라서... 그래도 조만간 또 열심히 키워볼 생각을 하고 있어요.


5. 미래와 거문고

올해의 작업 목표나 계획 말씀 부탁드립니다.

올해 개인앨범을 낼 거에요. 제가 그동안 했던 공연의 셋리스트들이 들어가는 앨범이죠. 현재 녹음은 다 마친 상황이고 후반작업을 남겨두고 있어요. 또 새로운 공연의 기획서를 쓰고, 이번에 악단 오디션 공고가 나서 준비해야죠. 지난 공연 정산도 해야 하고요. 다 겹쳐 있네요. (웃음)


거문고는 어떤 악기인가요? 거문고를 연주한다는 것은 박다울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거문고는 소중한 밥줄이에요. 진짜로요. 먹고 살 수 있게 해 준다는 건 소중한 거예요. 그리고 아직까지는 하면서 재미있어요. 연주도 창작도요. 과연 이 재미가 언제쯤 떨어질까, 떨어질 때쯤에 다른 것들을 하지 않을까, 재미가 떨어지면 연주자로서의 성장이 멈출 텐데 그 시기가 언제일까, 그러면 나는 거문고에서 탈출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희미하게 고민하기는 해요. 아직 책임질 게 많은 나이는 아니기 때문에, 책임감이 점점 무거워질수록 재미가 없어질지 어떨지 잘 모르겠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

뮤지트 많이 사랑해주세요. (뮤지트 팀의 입김이 없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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