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신대륙을 발견하다

'하모니시스트 박종성의 오케스트라 프로젝트' 관람 후기

하모니카의 잠재력을 엿보다

by Harrison

목차
  1. 하모니카, 친숙하면서도 낯선
  2. 연주회 정보
  3. 공연은?!
  4. 하모니카의 가능성과 앞으로의 과제

1. 하모니카, 친숙하면서도 낯선

'옥수수 하모니카'라는 음악을 들어보신 적 있나요?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던 이 음악은 제게 하모니카라는 악기를 처음 알려주었답니다. 어린 시절의 저는 이 음악이 꽤 인상 깊었었는지, 옥수수를 먹을 때마다 '옥수수 알 길게 두 줄 남겨 가지고' 하모니카처럼 연주하는 시늉을 하곤 했습니다.


cornharmonica

장난스럽게 연주하던 옥수수 하모니카의 기억 때문인지, 성인이 되어서도 하모니카는 악기보다는 장난감 같은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더군요. 그도 그럴 것이 하모니카는 입술을 가져다 대기만 해도 소리가 나는, 연주가 매우 쉬운 악기입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불어봤을 리코더도 바람을 넣으면 소리가 나긴 하지만, 연주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운지법(악기를 연주할 때 손가락을 사용하는 방법)도 익혀야 하고, 고음을 예쁘게 연주하려면 숙달된 호흡이 필요합니다. 그에 반해 하모니카는 취구에 바람을 넣거나 마시기만 해도 소리가 바로 나옵니다. 또한, 가격도 매우 저렴한 편입니다. 수백, 수천만 원에 이르는 악기들과는 달리 하모니카는 비교적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죠. 방송이나 만화 등 매스컴에서 보이는 하모니카의 이미지 또한 한몫하고 있는데요, 주로 길거리에서 구슬픈 연주를 한다거나, 온갖 악기로 치장해놓은 퍼레이드, 혹은 Bob Dylan과 같은 포크 음악에서 종종 하모니카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대중들이 기억하는 하모니카는 누구나 할 수 있고, 흔한, 장난감스러운 이미지가 지배적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하모니카가 연주를 위한 악기보다는 길거리 악사나 퍼레이드 같은 악기로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사진 출처: pixabay)


이미지 출처: 이말년 Bob Dylan (사진 출처: pixabay)

제가 하모니카에 대해 구구절절 이야기한 이유는 오늘 이야기할 주제가 바로 '하모니시스트 박종성의 오케스트라 프로젝트' 공연의 관람 후기이기 때문입니다.

parkconcert

손바닥만 한 하모니카로 연주회를 하는 것도 모자라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한다는 것이 낯설고 어색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박종성 씨의 연주회를 관람하고 나면 두 번 다시 그렇게 생각할 일은 없을 겁니다. 기존에 알고 있던 하모니카의 이미지를 산산이 부수어 버리거든요. 공연을 관람한 모두가 한결같이 말하길, '내가 그동안 알고 있던 하모니카는 하모니카가 아니었구나'라는 반응을 보인답니다.

단언컨대, 여러분도 같은 반응을 보이리라 장담합니다. 두말 말고 감상해보시죠!

💡 하모니카 깨알 지식

어떻게 하모니카만으로 다양한 음악을 연주할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지는 분들은 아마 우리가 친숙하게 알고 있는 트레몰로 하모니카를 떠올리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모니카를 간략하게 소개해드리자면 트레몰로 하모니카는 '도레미파솔라시도'로 구성된 하나의 조(key), 피아노로 비유하면 흰색 건반만을 연주할 수 있습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하모니카이기도 하죠.

하지만 하나의 조만으로는 다양한 음악을 연주하기에 많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모니카 전문 연주자들은 주로 크로매틱 하모니카를 사용합니다. 크로매틱 하모니카는 악기 옆에 달린 레버를 누르면 반음 위의 소리, 즉 피아노의 검은 건반 소리를 낼 수 있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를 통해 모든 음의 연주가 가능하죠.

트레몰로 하모니카(좌)와 크로매틱 하모니카(우). 트레몰로 하모니카에는 레버가 달려있으며,
트레몰로 하모니카는 취구가 두 겹으로 되어있는 반면, 크로매틱 하모니카는 한 겹이다.
(사진 출처: pixabay)

2. 연주회 정보

본 연주회는 6월 13일 17시, 강동아트센터 대극장 한강 홀에서 공연되었습니다. 이번 연주회의 프로그램과 연주자 프로필은 아래와 같습니다. 아래의 프로그램 노트에 적힌 연주 순서는 실제 공연과는 사뭇 달랐는데요, 1부의 'Harmonica Memorial'이 2부 앞 순서로, 2부의 '새야 새야'를 제외한 나머지 곡이 1부로 변경되었고 'cavalleria rusticana'가 빠져있었습니다. 공연을 관람해보니 이와 같은 순서 변경은 좋은 판단이었다고 생각이 들었고,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program parkbellsound

저는 이전에도 박종성 씨의 연주회를 몇 차례 관람한 적이 있어서 하모니카 무대는 낯설지 않았지만,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무대는 처음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하모니카와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공연은 초청 무대 등에서는 종종 있었지만 오로지 하모니카만을 위한 연주회 프로그램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더군요.

3. 공연은?!

공연의 성패부터 먼저 말씀드리자면, 그야말로 대성공이었습니다. 공연이 끝난 뒤 공연장을 가득 메운 청중의 박수갈채에는 연주자에 대한 무한한 감사와 찬미가 진심으로 어리어 있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극장을 빠져나오는 관객들의 표정만 봐도 얼마나 성공적인 무대였는지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제 미천한 글솜씨로는 연주회의 벅찬 감동과 아름다움을 제대로 표현해낼 자신이 없어서 이 글을 보시는 분들께 죄송할 따름일 정도로요.

이번 공연을 몇 가지 핵심 키워드로 요약하자면, 그 중 첫 번째는 천하일색(天下一色)입니다. 박종성 씨의 비루투오소적인 연주는 비견할 데 없을 만큼 놀랍고 훌륭했습니다. 각각의 음악이 지닌 다채로운 풍미를 하모니카만으로도 손색없이 살려냄과 동시에, 하모니카로 보여줄 수 있는 극한의 기량과 판타지가 겸비되어 청중의 눈과 귀를 매료했습니다.

그다음은 '채색(彩色)'입니다. G.Gershiwn이나 A.Piazzolla 등의 잘 알려진 명곡들을 하모니카라는 새로운 음색을 통해 듣는 것은 매우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하모니카의 제한적인 음색으로 인해 공연이 자칫 단조로워질까 걱정했었지만, 제 염려와는 달리 작품이 가진 고유한 매력에 박종성 씨의 풍부한 표정이 더해지면서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했습니다. '새야 새야' 또한 잘 알려진 전래 동요에 박종성씨의 음악적 색을 입혀 재해석한 작품인데요, 현란한 기교나 화려한 미사여구로 점철되지 않으면서도 정제된 감정이 깊이 우러나옵니다. 국악적인 소재 또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는데요, 하모니카로도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을 소화할 수 있다는 무궁한 가능성을 선사합니다. 제 견해로는 박종성 씨의 음악적 정체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말로 수백 번 설명하는 것보다 한 번 감상해보시길 바랍니다.

새야 새야 - 임로한, 박종성 편곡

마지막 키워드는 하모니카로서의 본색(本色)입니다. 하모니카만이 할 수 있는, 가장 하모니카다운 연주를 통해 역설적으로 하모니카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관념과 편견을 부수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Toledo: Spanish Fantasy'와 'Harmonica Memorial'은 하모니카를 위해 만들어진 작품들로써 하모니카의 정수를 보여주기에 매우 적절했습니다. 특히 'Harmonica Memorial'은 박종성 씨와 작곡가 김형준 씨가 1년간 함께 하모니카를 연구하여 만든 국내 최초의 하모니카 협주곡이어서 의미가 더 컸습니다. 'Harmonica Memorial'은 제목이 뜻하는 바처럼 하모니카가 개발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장대한 서사시를 음악으로 담아내고자 한 작품입니다.

'Harmonica Memorial'의 연주 순서가 1부에서 2부로 넘어왔는데요, 곡이 가지고 있는 호흡이나 에너지가 장대해서 이를 1부에서 먼저 보여주었으면 다른 음악의 맥이 풀렸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2부 순서로 변경한 것은 적절한 판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모니카를 위한 곡을 만들겠다는 신념 하에 고군분투해온 두 분의 노력이 이토록 아름답고 멋진 곡으로 결실을 맺음에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세계적인 아티스트의 반열에 오를 만한, 어쩌면 이미 초월했는지도 모를 작곡가, 연주자가 만든 무대를 볼 수 있음에 크나큰 영광이었습니다.

Harmonica Concerto , 김형준 작곡, 박종성 연주

하지만 모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하모니카와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 처음인 만큼 모든 것이 순탄하지는 않았을 테고, 이에 몇몇 아쉬운 부분도 눈에 띄었습니다.

첫 번째는 음향과 관련한 문제였습니다. 하모니카는 소리가 작기 때문에 큰 무대에서는 마이크가 꼭 필요한 악기이고, 때문에 악기에서 나오는 소리가 스피커를 거쳐서 청중에게 전달됩니다. 때문에 오케스트라와의 음향을 조율하기 위해선 스피커의 배치나 방향성도 매우 중요하겠죠. 하지만 하모니카의 소리가 객석으로 전달되지 않고 옆으로 퍼져나가거나, 오케스트라를 겉도는 느낌이 종종 들어서 공연에 제대로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공연 전반적으로 하모니카와 오케스트라와의 음량 밸런스는 괜찮은 편이었으나, 음향에서의 아쉬움 때문인지 개인적으로는 하모니카의 소리가 더 컸으면 좋았겠다고 욕심이 들었습니다. 하모니카의 레버를 누르는 소리가 계속 마이크를 타고 들어오는 것도 아쉬운 부분 중 하나였습니다. 박종성 씨의 다른 공연을 관람할 때에는 크게 인식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유독 그 소리가 잘 들렸습니다. 물론 악기의 특성상 레버 소리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겠지만요.

lverrever

하모니카 레버

두 번째 아쉬움은 편곡이었습니다. 이번 공연에서 하모니카를 위해 만들어진 작품은 두 곡이 있었는데요, 아무래도 하모니카를 위해 만들어진 곡이다 보니 하모니카와 오케스트라와의 균형이 적절했습니다. 특히 김형준 작곡가님이 작곡한 'Harmonica Memorial'은 오케스트라의 사운드가 다채로우면서도 하모니카를 전혀 방해하지 않고 시의적절한 흐름으로 음악 전반을 이끌어나갔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곡들은 하모니카를 위해 만들어진 곡이 아니라 이번 연주회를 위해 편곡을 한 버전이었는데요, 이들은 하모니카의 음색이나 음량 등을 배려하지 못한 아쉬운 상황이 자주 연출되었습니다.

'Adios, Piazzolla'는 편곡의 퀄리티만 놓고 보면 손색없을 만큼 좋았으나 전반적으로 현악기에 음악의 비중이 쏠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모니카와 나머지 악기들은 겉도는 인상이 강했습니다.

'Rhapsody in Blue'는 원 버전이 피아노를 위한 작품이기 때문에 오케스트레이션이 피아노의 음색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오케스트레이션을 하모니카로 대체해서 연주하기 위해선 하모니카의 음색에 적절한 새로운 오케스트레이션이 필요한데, 이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여 하모니카가 오케스트라에 묻히거나 부적절한 음색이 맞닥뜨리는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새야 새야'는 앞선 곡들에서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관 편성으로 편곡되어 하모니카와 오케스트라 간의 균형을 잡고자 한 듯하나, 역으로 오케스트라의 에너지가 부족하여 하모니카의 음악을 따라가지 못하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4. 하모니카의 가능성과 앞으로의 과제

이번 무대는 하모니카의 무궁한 가능성에 대한 실험의 장이자, 앞으로 하모니카가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이정표를 설파하는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성공적인 무대라고 해서 결코 완성적인 무대는 아니기에, 앞으로 더욱 발전된, 새로운 가능성의 지평을 열어주는 출발점으로 자리매김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몇 가지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습니다. 우선 위에서 언급한 음향이나 편곡 등의 문제는 쉽게 극복 가능한 부분이기에 다음 공연에서는 더욱 성숙하고 완성도 있는 무대를 보여주리라 기대가 됩니다. 제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앞으로의 해결 과제는 바로 하모니카 레퍼토리의 확장입니다. 사실 A.Piazzolla나 G.Gershiwn과 같은 장르의 음악은 하모니카의 음색과 너무나 잘 어울리고, 이번 연주회 선곡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모니카인데, 이러한 선곡이 당연한 거 아니야?'라고 반문하신다면, 저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레퍼토리의 확장을 언급한 이유는 하모니카가 나아갈 수많은 기로 속에서 앞으로 어떠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가를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피아노는 혼자서도 고전, 낭만, 재즈, 뉴에이지 등 여러 양식의 음악을 담아내듯이, 하모니카도 그간 연구되거나 선보여지지 않았던 다양한 레퍼토리를 갖춤으로써 더욱 견고한 기반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당연한 것, 익숙한 것에 안주하여 매너리즘에 빠져버린다면, 그저 화려하고 멋있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하나의 쇼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새야 새야'와 'Harmonica Memorial'은 이에 대한 해결책을 쥐고 있는 작품입니다. '새야 새야'는 잘 알려진 원작을 본인만의 색깔로 재해석하고 국악과의 이색적인 결합을 성공적으로 이뤄낸 작품으로서,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을 흡수하고 소화해낼 수 있는 하모니카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주었습니다. 'Harmonica Memorial'에서는 특수한 주법, 실험적인 음향 등 다양한 시도를 통해 기존에 없던 하모니카의 새로운 매력을 확장해주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시도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짐으로써 하모니카의 레퍼토리를 더욱 확장해나가리라 기대해봅니다.

하모니카로 멋진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에게 놀라움을 선사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하모니카는 아직 비주류 악기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개척 가능성을 품고 있는 악기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는 하모니카의 역량을 시연하는 무대였다면, 앞으로는 하모니카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시험할 무대로 발돋움할 수 있길 응원하겠습니다.

목록으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