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먹고사는 사람들

매체음악 작곡, 냉정과 열정 사이 인고의 세계 - 작곡가 박정인을 통해 듣다

매체음악 작곡, 이론부터 실제를 거쳐 꿀팁까지 알아보기

by Estel



작곡가 박정인 (28) 대중매체음악 작곡가

대학에서 클래식 작곡을 전공하고 졸업 후에는 영화, 드라마, 뮤지컬, 연극, 광고, 가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작곡, 편곡, 사운드 디자인 등을 작업하고 있다.


대표작

- 연극 [리차드 3세] - 2018, 작곡 및 음악조감독
- 드라마 [18어게인] - 2020, 작곡
- GOT7 [Miracle] - 2018, 스트링

Editor's Comment
영화, 드라마, 가요, 뮤지컬 등 음악은 실로 여러 분야에서 쓰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베토벤의 이름은 알아도, 내가 즐기는 영화와 가요의 작곡가가 누구인지,
작곡가의 작업과 일상은 어떤지, 어떻게 작업을 시작할 수 있는지 알기 쉽지 않습니다.
작곡에 관심 있는, 작곡가를 지망하는 독자 여러분을 위해
현장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작곡가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목차

1. 협업, 마음의 기술
2. 작업 꿀팁
3. 일상과 작업의 줄다리기
4. 해주고 싶은 말
5. 하고 싶은 일

1. 협업, 마음의 기술

매우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어요. 활동의 시작점 내지 변곡점이라 할 수 있는 작품, 또는 작곡가로서 개인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작품이 있는지?

2018년 초 연극 <리차드 3세>에 작곡 및 음악조감독으로 참여했어요. 황정민 등 내로라하는 배우님들께서 출연하시는 작품에 참여하는 게 신기했고, 현역에서 베테랑으로 활동하시는 분들 곁에서 많이 배울 수 있었어요. 매일 연습장에서 배우님들의 연기를 보았고, 그로부터 우러나오는 감성과 음악이 들어가고 나오는 타이밍 등의 감을 잡는 데 큰 도움을 받았죠. 내 곡이 작품에 유효하게 많이 쓰여 내가 작품 안에서 음악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느꼈고, 작품이 흥행하면서 음악에 대한 평도 좋았기에 무척 뿌듯했어요. 음악활동을 하다 보면 감정적으로 위축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을 떠올리면 “뿌듯하다”는 단어가 떠올라요.


음악을 하면서 감정적으로 위축되는 경험은 음악인이라면 정말 많이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그렇게 위축된 순간을 잘 버텨내는 것도 음악인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일 텐데, 조금 더 이야기해주세요.

지금보다 훨씬 초보였을 때, “음악을 하면 안 된다”는 말을 들었어요. 이 세계는 정말로 실력주의고, 냉정해요. 어느 학교를 졸업했는지, 경험이 몇 년인지 등은 상관없죠. 실력이 있어야만, 잘해야만 일을 얻을 수 있어요. 그렇기에 언제나 경쟁 상태에 내몰려 있고, 스스로 뒤처진다고 느끼면 스트레스를 받고, 저렇게 차가운 평가를 받으며 상처받을 때도 있고... 모두 견뎌내야 하지만 쉽지 않아요. 그래도 버텨야 하죠.
또 단편영화 등을 작업하다 보면 곡이 굉장히 많이 까여요(연출에게 컨펌받지 못하고 리젝된다). 소통 과정에서 자존심 상하는 말을 많이 듣기도 하고, 여러 이유로 내가 쓴 곡이 최종적으로 쓰이지 않을 때도 있어요. 그래도 버텨야 해요. 맷집이 세야 하죠. 동시에 낙천적인 융통성 역시 필요해요. 생각이 다른 사람과 일을 하면 나를 숙여야 하는 상황이 많고 결국에는 타협해야 하는 경우가 있어요.
내가 원하는 대로 음악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는, 머릿속 상상의 나래와는 다른 상황에 괴리감을 느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게 바로 우리 일이에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하는 일. 끊임없이 소통하고, 타협하고, 결과를 내는 일. 자꾸 겪어나가며 이겨낼 힘이 필요해요.

“버티는 힘” … 맷집과 융통성을 동시에 지닐 것
소통과 타협은 작업의 방해물이 아닌 핵심


대중매체음악 작곡의 특성상 연출과의 소통이 매우 중요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앞서 소통과 타협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 같아요. 작업 과정에서 연출과의 소통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특히 의견이 부딪칠 때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궁금해요.

단편영화의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할게요. 사실 굉장히 많이 부딪쳐요. 열에 아홉 이상 부딪쳐요.😊
작업공정이 정확히 정해져 있고 그에 따라 일만 하면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부딪칠지는 그야말로 사람 바이 사람, 일 바이 일이에요.
작품과 연출의 의도를 최대한 빨리 파악하는 것, 그게 다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힘을 쏟아요. 내가 내 음악의 주인이고, 영상 안에서 음악이 끌고 가는 힘이 있기 때문에 욕심이 나지만, 되도록 내 의견보다는 연출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려고 해요. 결국 연출의 방향으로 가야 하고 가게 되어 있으니까요. 아무리 내 느낌에 100% 좋은 음악을 써서 줘도 퇴짜맞는 경우가 있어요. 결국에는 총괄자인 연출이 선택하는 것이죠.
다만 설득하고 싶은 부분에 대해서는 몇 가지 아이디어를 내어 음악으로 스케치하여 들려주며 의견을 개진하려 해요. 말로 설명하는 것과 음악으로 설명하는 것은 엄청나게 큰 차이가 있기에 음악으로 들려주는 것이 중요하죠. 최종적인 결정은 연출이 내리지만, 음악 역시 프로덕션의 일원으로서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언제나 옳고 좋은 것이라 생각해요. 대부분의 경우 연출 역시 의견 개진을 원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나의 개성을 내세우는 것이 아닌 
작품과 연출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협업의 핵심
일은 잘해야 하고 잘 되어야 한다

2. 작업 꿀팁

지금까지 작곡가로서 작업에 임하는 마음가짐을 아울러 들었어요. 더욱 실제적인 작업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다양한 매체의 음악을 작업하는 만큼, 매체마다 어떤 관점에서 작업에 접근하는지 묻고 싶어요.

매체마다도 다르고, 장르마다도 달라요(로맨스코미디, 스릴러 등). 작품마다 다 다르게 되는 것 같아요.굳이 매체별로 구분하자면, 매체의 작업공정에 따라 작업방식과 내용이 영향을 받아요.

드라마/웹드라마의 경우, 대체로 음악이 먼저 나오고 영상이 나중에 나와요.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미리 몇십 곡씩 쌓아두었다가 나중에 영상이 완성되면 적당한 음악을 골라서 붙이는 순서로 진행되죠. 그래서 한 곡을 만들어도 그 곡 전체가 쓰이지 않고 오퍼레이터에 의해 커팅될 수 있어요. 그 점을 감안하여 음악 중간에 호흡을 주거나 유용하게 쓰일 것 같은 기승전결을 생각하여 작곡을 해요.

반면 영화의 경우에는, 영상이 먼저 나오고 장면마다 직접 음악을 붙이는 방식이에요. 따라서 길이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장면에 완전히 부합하는 음악을 작곡해야 해요.

뮤지컬 편곡의 경우, 작곡된 멜로디와 코드와 느낌을 오케스트레이션으로 풀어내야 해요. 넘버마다 특화된 장르가 있고(스윙재즈, 발라드 등) 정확히 그 장르로 표현되도록 접근해요.

그에 비해 연극은 경우의 수가 매우 많고 작품을 특히 많이 타는 편이에요. 음악을 만들었을 때 의도한 장면이 아닌 다른 장면에 들어가 재조립이 된 적이 많았어요. 그만큼 더 열려 있고 작품과 연출을 파악하는 데 더욱 힘을 쏟아야 하는 것 같아요.

가요 스트링은 스트링이 메인으로 나서지 않고 노래의 감정을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해요. 노래에 잘 어울리도록, 동시에 존재감이 있어도 안 되고 없어도 안 되죠. 지나치게 단순해지지 않게끔 스트링 자체의 자아가 있어야 하지만, 앞으로 나서는 자아가 아니라 뒤에서 받쳐주는 자아이도록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며 멜로디를 작곡해야 해요. 스스로 발전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부분이에요.


박정인 작곡가만의 구체적인 작업 프로세스가 궁금해요. 한정된 시간 안에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작업하는 자신만의 팁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그때그때 달라요. 매 작업마다 상황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작업 프로세스도 그때그때 달라져요. 필요에 의해 과정은 언제나 변할 수 있고, 상황에 따라 작업 방식과 속도가 달라지는 것에 인내심을 갖고 작업에 임해야 해요.

다만 음악이 후반작업이라는 것은 늘 문제가 되죠. 전체 마감기한은 정해져 있는데 앞 작업에서 시간을 많이 소요해 버리면 결국 뒤가 쫓기거든요. 언제나 시간적으로 여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빠른 소통을 위해서 레퍼런스를 붙여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연출에게 음악을 처음 들려줄 때 시간이 허락하는 선에서 완성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정 정도 이상의 퀄리티로 만들어 들려줘요.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헐거운 스케치로 들려주면 설득이 안 되는 경우가 다반사에요. 아이디어 자체에 대한 회의감까지 들 수 있고요. 아무리 좋은 장면이더라도 옛날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 것과 최신 카메라로 찍는 것에 퀄리티 차이가 분명하고, 그에 따라 사진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게 되듯, 귀도 마찬가지에요. 퀄리티가 일정 이상 나와야 연출을 음악으로 설득할 수 있어요. 어느 정도의 시간과 퀄리티의 선을 지키며 연출에게서 첫 컨펌을 받는 것이 중요해요.


음악 작업을 할 때 혼자서 맡는 경우도 있지만, 팀으로 작업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작업방식에서 상당히 차이가 날 듯한데, 팀으로 작업할 때에는 특히 무엇을 염두에 두는지 궁금해요.

제가 팀의 일원으로서 작업하는 경우와 팀의 리더로서 작업하는 경우 두 가지로 나누어 이야기할게요.

드라마 등 규모가 큰 작업에서는 팀의 일원으로서 곡을 쓰는 역할을 맡아요. 팀의 일원이 되는 루트는 인맥을 통하거나, 공공사업 내지는 교육 기관을 통하는 경우도 있어요. 팀마다 음악감독의 스타일과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그 팀 안에서 톤을 맞추기 위해 노력해야 해요.

또 제가 직접 일을 따 와서 동료들과 협업하는 팀이 있어요. 현재 톤을 맞춰가는 과정 속에 있어요. 그 팀에서 상사로 군림하지는 않지만, 가장 경험이 많고 맥락을 끌어가는 사람으로서 동료들의 음악을 점검하고 수정을 요구하기도 해요. 동료들 모두 음악을 너무 잘 하는데 자기 음악에 대한 고집이 세요.
그래서 협업 초반에는 음악 자체는 좋지만 장면이나 상황에 덜 맞을 경우 수정을 설득하기가 힘들었어요. 하지만 수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부탁이든 사정이든 회유든 결국에는 수정을 하게끔 해요. 몇 번 손발을 맞추며 영상과 음악의 시너지를 본인들이 직접 느끼니 제 수정방향에 드디어 귀를 기울여 주기 시작했죠🙂

사람이 음악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각기 다양한 특색의 음악이 나와요. 그렇기에 팀으로서의 합이 잘 맞으면 굉장히 다른 좋은 매력들을 한 작품에 쏟아넣을 수 있어 작품에 플러스가 되죠. 서로에게서는 서로의 장점을 배울 수 있어 좋아요.

매체마다, 장르마다,
작품마다, 사람마다 다른 작업적응과
인내 그리고 부단한 숙련이 필요

3. 일상과 작업의 줄다리기

작곡가의 일상에 관해서도 궁금해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 같아요. 일상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세요.

음악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 99%가 비슷하게 살 거라 생각하는데, 처참해요. 워라밸이라는 단어가 전혀 통용이 안돼요. 몇 시간을 투자하면 어떻게 아웃풋이 나온다는 보장이 없으니까요. 주 52시간제, 하루에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몇 시간만 일하자, 이럴 수 없어요. 일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하는 거고, 일이 많으면 밥과 잠을 최소화하며 모든 시간을 작업에 들이붓죠. 시즌 비시즌도 따로 없어 일이 없으면 몇 달이고 손가락 빨며 전전긍긍할 수도...

프리랜서의 특성상 일을 해야 다음 일이 있고, 계속해서 일을 갈구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일들이 몰려버리면 포기도 못해요. 일이 몇 개씩 겹치는 경우가 많고, 그러면 나락으로 떨어져요. 잠 거의 못 자고, 바쁠 때에는 당연히 친구 못 보고, 아무것도 못해요. 여가시간 없어요. 간간히 조금씩 30분 정도 TV 보고, 잠깐 인터넷으로 휴식을 갖거나 아무것도 안하거나 그런 정도죠. 이런 부분에서는 각오를 해야 해요. 여타 직업과 굉장히 많이 달라요.

보통 프리랜서라 하면 자기 일정을 직접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죠. 그러나 우리는 사장이 아니라 직원에 가까워요. 작업하는 건마다 연출에게 귀속이 될 수밖에 없고, 연출이 주는 일정에 따라 일을 해야 해요. 프리랜서라고 조율을 할 수 있다는 상상은 굉장한 오산이에요.


작업은 보통 어디에서 하나요? 작업을 위한 공간에는 어떤 것이 필요한지 궁금해요.

미디작곡을 직업적으로 할 것 같은 순간이 오면, 방음시설이 갖추어진 공간이 무조건 필요해요. 헤드폰으로만 작업하는 데에는 한계가 명확해요. 요즘은 밖에 방음시공이 되어있는 업자들이 운영하는 작업실이 많이 있어요. 집에 공간이 어느 정도 된다면 방음부스를 설치해서 작업을 하는 경우도 많고요. 게임음악 등 회사 차원의 작곡은 회사에서 제공해주는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장비들도 필요해요. 프로그램과 가상악기를 돌릴 수 있는 충분한 사양의 컴퓨터, 음을 입력하는 데에 필요한 장비(주로 키보드), 작업한 음악을 모니터할 수 있는 헤드폰 혹은 스피커, 스피커로 출력되는 소리와 마이크로 입력되는 소리를 관장하는 오디오 인터페이스는 필수에요. 이 장비들을 갖추는 데 적지 않은 초기비용이 들고, 추후 필요에 따라 장비를 업그레이드하려면 추가적으로 비용이 들어요. 비용적인 부분을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해요.


생계유지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음악 작업을 통한 경제적 수입만으로 생계유지가 가능한가요?

생계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죠. 서른 초중반까지는 금전적으로 음악을 통해 일정한 금액 이상을 벌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우리나라의 예술적 예산이 다 적지만, 특히 후반작업에 들이는 예산은 굉장히 적어요. 그러다 보면 당연히 건당 페이가 몹시 작아, 시간으로 따지면 최저시급만도 못한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굉장히 실력주의에요. 예산의 규모가 큰 일들은 이미 좋은 이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쓰죠. 처음부터 경력을 쌓아가는 사람들은 거기에 바로 도달할 수 없어요. 처음 작업할 때에는 경력을 쌓겠다고, 돈을 안 받거나 결혼식 축의금 급으로 받으며 시작을 해요. 서로 돈이 없으니까요. 안타깝고 어렵죠.

그렇기에 부업, 경제적 대안을 찾아야 해요. 처음부터 경제적 설계를 하며 작업을 시작해야 해요. 그래야 버틸 수 있어요. 레슨이나 학원을 통해 생계를 유지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꼭 그렇게 해야 해요. 경제적 수입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으면 언젠가 꿈과 현실의 딜레마를 슬퍼하다가 그만두게 될 수도 있어요. 레슨이나 학원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아르바이트나 다른 일을 해서라도 돈을 벌 곳을 마련해두어야 해요. 풀칠 정도라도.


음악으로 먹고살기란 정말 쉽지 않은 것 같네요. 그럼에도 현재 음악으로 먹고 사는 이유가 무엇인지? 작업을 버텨내는 내적 동기가 궁금해요.

저는 음악에 미친 사람은 아니에요. 냉정하게 봤을 때 저는 음악에 남들보다 열정이 떨어져요. 노력과는 별개로. 아직도 그게 약점이라고 생각하지만, 작업을 하다 보면 그 약점이 제 실력으로 보완되는 순간이 있어요. 그 순간을 바라보면서 지내게 되는 것 같아요. 좋은 작업을 해서 좋은 작품을 만들고 지인들과 공유하는 순간, 내가 떳떳해지는 감동이 저를 유지하게 해 주죠.

또 힘이기도 하고 부담이기도 한데, 집에서 믿어주는 부모님이 계세요. 작업 장비에 드는 돈을 혼자 벌지도 못하는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믿어주고 도와주는 가족이 있어 힘이 나요. 아직 오를 길이 멀다는 것, 내가 발전할 여지가 많다는 것, 더 잘하고 싶은 욕심 역시 저를 지탱해 주어요.

그런데 사실 수백 번씩 고민해요. 포기할지 말지(웃음). 결과적으로 ‘하겠다’는 선택을 하는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4. 해주고 싶은 말

작곡가로서의 작업과 생활을 세세하게 말씀해주셨어요. 작곡가를 지망하는 독자들에게 조언 부탁드릴게요.

👆🏻정신적 측면 : 체력, 인내심, 그리고 도전정신

무엇보다도 체력이 가장 중요해요. 일은 몰릴 가능성이 크고, 몰리지 않더라도 하나의 일이 크게 작용하는 경우도 많아요. 결국에는 버텨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 반드시 체력이 필요해요. 운동을 하거나, 비타민 등등의 영양제를 챙겨먹거나, 체력과 건강을 위한 온갖 노력을 쏟아야 작업하는 일상을 유지할 수 있어요. 중요한 시기에 작업량과 강도를 견디지 못해 아파서 고꾸라지지 않도록 체력에 투자해야 해요.

다음으로는 인내심이 있어야 해요. 인내와 끈기. 작업에서의 인내와 끈기도 필요하지만, 작업 외적으로도 나의 성장속도와 성취를 남과 비교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해요. 경쟁 상황에서 내가 떨어지고 다른 사람이 뽑힐 때가 있어요. 다른 사람이 나보다 훨씬 더 일찍 성공하는 모습을 볼 때도 많아요. 자존심 상하고 자괴감 들 수 있어요. 그걸 다 참아내고, 자존심 부리지 말고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인내심이 필요해요.

인내심과 더불어 도전정신이 필요해요. 처음에는 작은 일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어요. 오르지 못할 나무만 보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그 작은 나무가 어떻게 클지 몰라요. 연줄에 따라, 상황에 따라 무엇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에요. 내가 내 기회를 악착같이 찾아내야 해요. 언제 입봉하지, 언제 상업하지 방구석에서 기다릴 게 아니라, 인터넷을 뒤져 일거리 없나 찾아보고, 누가 음악감독 모집한다 하면 밑져야 본전이니 다 지원해 보고,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 넓고 깊게 공부하기, 대중적인 형식에 익숙해지기

작업에 가장 핵심적인 기술인 미디작곡은 배워야 해요. 선생님이 있어야 해요. 그리고 시간을 두고 배워야 해요. 6개월 속성, 이건 알맹이가 없어요. 6개월만에 누군가의 일을 맡을 정도로 실력이 늘 수 없어요. 배움에는 기간이 필요해요. 그렇기에 빨리 시작해야 하죠.

또 대중매체음악은 다양한 예술이 접합되어 있는 분야에요. 자기 본래 전공에 얽매이지 않고 시선을 넓힐 수 있는 공부를 많이 해야 해요. 결국에는 다 필요하거든요. 대학에서는 클래식을 전공했더라도, 실용음악 세션에게 디렉션을 줄 때 필요한 단어나 요구할 수 있는 사항에 대해서는 버거워하지 않을 수 있는 정도로 귀와 눈과 머리가 트여 있어야 해요. 부지런히 배우면 좋겠어요. 세상이 준비된 사람을 원하지 준비할 사람을 원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언제 얼마나 배우냐에 따라서 본인의 출발점이 달라져요. 망설일 시간에 해야 해요. 빨리 준비할수록 출발이 빨라져요.

자신의 음악적 개성과 대중매체음악에서 요구하는 대중성 간의 충돌은 필연적이에요. 영화음악 멋있다는 단순한 마음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나 생각보다 투박하고 형식적인 작업이에요. 영상음악이라면 영상이 앞으로 나오고 음악이 뒤로 빠져야 해요. 음악이 영상에 맞추어야 해요. 대중성에 대한 요구도 있고요. 그 형식에 나를 숙이고 맞추는 동시에 나의 독창성을 개발하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 나의 권리 지키기

마지막으로 자신의 권리는 자기밖에 못 챙겨요. 돈 떼먹히지 말고, 계약상의 조건(구두계약이든 어떤 식이든)을 꼼꼼하게 따져야 해요. 상황에 따라 페이를 적게 받을 수밖에 없더라도, 다음에는 이 페이보다 나은 페이를 요구하는 등 자기의 가치를 조금씩이라도 본인이 높이지 않으면 안 돼요. 또한 법적으로 저작권이 걸리는 일들의 경우 저작권 떼먹히는 일이 없는지 확인을 해야 해요. 그런 부분에서 예민해졌으면 좋겠어요.

5. 하고 싶은 일

현재의 작업들, 그리고 앞으로의 작업 계획에 대해 듣고 싶어요.

현재는 드라마 작업을 하고 있어요. 앞으로의 계획은 아직 없고요. 있는데 없어요. (웃음) 일은 있는데 언제 올지는 몰라요. 일정을 나열하고 계획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라서요. 지금은 겨울이니 가요 스트링 일이 아무래도 있지 않을까요?


작곡가로서의 최종 목표가 있다면?

지금의 저에게는 제 예술을 펼치기보다는 매체 안에서의 제 예술성을 펼치는 게 우선이에요. 어떤 작업을 해야 한다기보다는, 어떤 작업을 만나더라도 다 해내는 작곡가가 되는 게 작곡가로서의 목표에요. 어느 한 장르에 천재성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다양성으로 승부하고 싶다. 뭘 해도 나는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또 언젠가는 형식이 무엇이 되었든 국악 콜라보레이션을 제대로 해보고 싶어요. 아직은 미지의 꿈 정도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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