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신대륙을 발견하다

사운드아트, 열린 마음의 역사

음악의 경계를 부수고 확장해 온 사운드아트 일대기

by Estel

👵 잠시, 철학자가 되어볼까요?


“음악이란 무엇인가?” 철학적인 질문은 대답하기 어려워서 철학적인가봐요. 어떤 노래를 듣고 이건 팝이야, 이건 재즈야, 라고 말하기는 쉽지만, 그래서 “팝이 뭐야?” “재즈가 뭐야?” “노래라는 게 뭐야?” 라고 물으면 한순간 말문이 막히는 것처럼요. Estel은 학교에 다니던 시절 수업에서 “음악이란 소리의 구성”이라고 들었던 기억이 나요. 즉 소리를 재료로 삼아 더하고 오리고 붙이고 쌓은 무엇이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음악의 재료가 되는 “소리는 무엇인가?” 소리는 음악보다 더 넓은 범위를 이르는 말 같아요. 피아노 소리, 장구 소리, 바이올린 소리 등 음악에 쓰이는 악기가 내는 소리도 생각나지만, Estel이 지금 키보드를 두드리며 내는 소리, 종이를 넘길 때 나는 소리, 과자 봉지를 뜯는 소리 등 음악과는 영 관련이 없는 소리도 함께 떠오르니까요. 그렇다면 소리는 악기에서 나는 음악적인 소리와 일상에서 접하는 비음악적인 소리로 구분할 수 있을까요? 어쩐지, 찝찝하죠?

새로운 패러다임은 기존의 관습과 관념을 부수는 것으로부터 비롯되잖아요. 20세기 초, 100여 년 전부터 “음악이란 무엇인가?” “음악을 만드는 데 어떤 소리가 가능한가?” 와 같은 질문들이 던져졌어요. 음악적인 소리와 비음악적인 소리의 경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했죠. 음악에 대한, 소리에 대한 실험이 활발하게 이루어졌고요. 현재 예술 전 분야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사운드 아트는 바로 이러한 질문과 실험을 통해 성장했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뮤지터 여러분과 함께 소리(사운드)가 무엇이고 ‘비음악적인 소리’에 대한 실험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러한 실험과 질문을 통해 사운드아트가 어떻게 태동하고 발전하였는지, 현대 사운드아트 분야에서는 어떤 작품이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사운드아트 작곡가 로버트 워비(Robert Worby)의 글 "사운드 아트 소개(An Introduction to Sound Art, 2006)"와 함께 살펴보려고 해요.

자, 그러면 음악의 신대륙으로 출항합시다!


목차
1. 소리(Sound)란 무엇인가?
2. 사운드아트(Sound Art)의 태동
3. 존 케이지, 사운드아트의 기반을 닦다
4. 음악은 그 무엇보다도 우선, 듣는 것
5. 레코딩 기술과 융합한 실험음악의 발전
6. 사운드아트, 시각예술과 융합하다

1. 소리(Sound)란 무엇인가?


우리는 소리를 귀로 들어요. 즉 청각을 통해 청취하는 것이 소리죠. 그렇다면 소리는 어떤 과정을 거쳐 우리의 귀에까지 전달될까요?


sound machanism

소리의 전달 과정
사진 출처 https://kocoafab.cc/


소리는 물체의 진동에 의해 생겨나요. 어떤 물체를 두드리거나 불거나 마찰하거나 하면 물체로부터 진동이 발생하죠. 이 진동이 주변의 매질(공기, 물, 벽 등)을 통해 상하-좌우-전후 등 모든 방향으로 파동 형태로 퍼져 나가고, 그 파동이 우리의 귀에까지 전달되면 그것이 우리에게 소리로 인지되어요. 즉 소리(Sound)란, 진동을 통해 전달되는 파동(Wave)이에요. 진동은 물체에서 발생하여 매질을 통해 전달되니, 물체에서 소리가 발생하더라도 소리를 매개해 줄 물질이 없다면 우리의 청각은 소리를 인지할 수 없어요. 매질이 존재하지 않아 소리를 듣지 못하는 대표적인 공간으로 대기권 밖 우주가 있죠. (지구가 이래서 좋습니다!)

사운드아트 작곡가 로버트 워비(Robert Worby)는 소리에 관해 이렇게 이야기해요.

소리는 매우 이상한 것이다.
사실, 소리는 어떠한 ‘것’조차 아니다.
식별 가능한 물질이나 질량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리는 하나의 복잡한 과정이다 –
입자들이 움직이는 과정, 물체들이 움직이는 과정, 공기가 움직이는 과정,
그리고 때로는 액체가 움직이는 과정인 것이다.

우리는 소리를 잡을 수도,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다.
사물이 소리를 만들어내고, 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하여 사물이 움직여야 하지만,
소리는 절대로 사물이 아니다.

소리가 사라지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기억만이 남을 따름이다. (...)
소리는 공기를 움직이고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소리는 자신의 시간을 펼치고는 사라진다... 영원히.
기억만이 살아남는다. 그리고 기억은 빠르게 희미해진다.

2. 사운드아트(Sound Art)의 태동


우리가 ‘음악’을 상상하며 흔히 떠올리는 소리는 무의식중에 상당히 제한되어 있어요. 피아노 소리, 장구 소리, 바이올린 소리, 기타 소리, 가수의 노랫소리 등 우리의 상상 속에서 ‘음악적인 소리’는 대부분 ‘악기가 내는 소리’에 국한되어 있죠. 이는 악기로 음악을 연주하고 감상하던 오랜 전통과 관습에 의해 굳어진 우리의 무의식의 일환일 거예요.


lougi russolo

루이지 루솔로(Loigi Russolo, 1885-1947)
사진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Luigi_Russolo


그런데 바야흐로 20세기 초 이러한 관습적 틀에 도전장을 내미는 사람이 있었으니, 이탈리아의 미래주의 예술가 루이지 루솔로(Luigi Russolo)는 자신의 선언문 "소음의 예술(The Art Of Noises, 1913)"에서 이렇게 이야기해요.

음악적 소리는 음색의 질적인 다양성에 있어 너무나 제한되고 있다. (...)
순수한 소리의 제한적 순환은 반드시 깨져야 한다.
‘소음-소리(Noise-Sound)’의 무한한 다양성이 허락되어야 한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인간의 청각이 근대 산업화로 인해 생겨난 소음들에 익숙해졌으며, 음악 작곡과 악기편성에 있어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발상에서 비롯되었어요. 전기를 포함한 다양한 기술의 발전이 음색을 무한히 확장시킬 것이라고 예견하기도 했답니다. 그가 이 선언을 발표한 시기를 생각해보면 참으로 '미래주의자'라는 명칭이 어울리는 예술가죠? 루솔로는 자신이 세운 미학을 토대로 소음을 내는 기계 'Intonarumori'를 발명하고, 파열음, 잡음, 연속음 등의 소음들을 음악회에서 발표하는 등 실험적인 행보를 이어갔어요.


3. 존 케이지, 사운드아트의 기반을 닦다


미국의 작곡가 존 케이지(John Cage)는 그의 대표작 "4분 33초"로 유명합니다. 4분 33초 동안 연주자들이 소리를 연주하지 않고 침묵을 유지하는, 일반적인 소리의 구성이 아닌 소리의 부재를 음악이라 명명하고 발표한 일은 지금에 와서 생각해도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해냈는지 신기합니다.


lougi russolo

존 케이지(John Cage, 1912-1992)
사진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John_Cage


존 케이지의 "4분 33초"는 얼핏 감상하기로는 그저 황당하고 어이없게만 생각되기도 합니다. 분명 귀가 즐거우라고 만든 음악은 아닐 거예요. 🤔 그러면 존 케이지는 도대체 왜 "4분 33초"를 작곡했을까요? 이 곡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로버트 워비(Robert Worby)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4분 33초"에서 연주자는 아무 소리도 만들어내지 않지만,
실제로는 많은 소리들이 들려온다.
4분 33초는 관객에게 상당히 긴 시간이다.
관객들이 움직이고, 재채기를 하고, 발을 끄는 소리가 공간을 울린다.
소리는 (무대가 아닌) 바깥쪽으로부터 객석으로 이동한다.
존 케이지는 이 상황을 설계했으나 (관객들이 내는) 소리에 대하여
통제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작곡가, 연주자, 감상자의 관습적인 역할이 완전히 전복된다.
연주자는 감상자가 된다. 작곡가는 소리의 발생에 관여한 것이 없다.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전적으로 관객이며, 사실상 관객이 작곡가가 된다.
존 케이지는 음악 창작의 관습을 뒤집은 것이다.



관습의 틀을 깨고 음악의 본질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 것이 존 케이지의 작품활동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뿌린 질문의 씨앗이 자라 사운드아트의 발전을 이룩하게 되죠. 존 케이지가 남긴 어록 중 다음의 구절에서 그의 작품세계, 나아가 사운드아트의 정신을 엿볼 수 있어요.

나는 사람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두려워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나는 오래된 아이디어가 두렵다.

4. 음악은 그 무엇보다도 우선, 듣는 것


‘음악이란 소리의 구성’이라는 명제로 다시 돌아가볼까요? 이 명제에서 음악을 바라보는 관점은 창작자 즉 작곡가의 시각에 치우쳐 있어요. 이 관점에 따르면 작곡가는 재료인 소리를 다듬어 음악을 만들어내는 주체입니다. 연주자는 작곡가에 의해 구성된 소리를 실현하는, 제한적 창조성을 발휘하는 존재이죠. 감상자는 가장 수동적이고 수용적인 존재로서 작곡가에 의해 구성되고 연주자에 의해 재현되는 음악을 가만히 청취할 뿐 음악의 창조 과정에는 개입하지 않아요.

하지만 사운드아트는 이 전제 자체를 뒤집어요. 로버트 워비(Robert Worby)는 이를 “음악은 듣는 것(Listening)이다”라는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죠. 그에 따르면 "음악이란 소리에 대한 적극적인 청취 자체"이며, "소극적인 감상(Hearing)이 아닌 적극적인 청취(Listening)"를 하는 존재(청자)가 있다면, 그 존재로 말미암아 어떤 소리든 음악이 되기에 소리의 범위에도 제한이 없어지겠죠. 즉 음악이란 "창작이 아니라 감상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에요.

이처럼 사운드아트에서는 감상자의 위치가 이전 어느 때보다도 격상되었기에, 소리의 구성 방식이 창작자가 아닌 감상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형식의 사운드 아트 작품들이 등장하게 되어요. 감상자의 입장에서부터 소리에 대한 상상이 비롯되면서, 어떤 소리를 어디에서 듣느냐는 소리의 공간성이 중요한 개념으로 떠올랐죠. 음악의 청취 장소는 연주회장을 벗어나 모든 장소로 확장되어요. 가령 사운드 설치(Sound Installation) 장르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맥스 노이하우스(Max Neuhaus, 1939-2009)는 그의 작품 "청취(Listen, 1966)"에서 청취자들의 손등에 'Listen'이라는 단어를 찍은 뒤 특정한 거리를 걸으며 들려오는 거리의 소리를 감상하도록 해요. 그의 또다른 작품 "타임 스퀘어(Time Squares, 1977)"는 군중들이 끊임없이 밀집하고 이동하는 교통의 요지 맨하탄에 설치된 작품으로, 저음의 풍성한 울림이 물결치듯 높아졌다가 낮아지는 사운드가 환풍구를 통해 울려나오도록 했어요.



소리의 공간성과 함께 소리의 일상성 역시 많은 예술가들에 의해 작품의 소재가 됩니다. 일상의 물건으로 나름의 소리를 낼 뿐 그 소리를 음악화하는 발상을 하지 않았던 과거와 달리, 존 케이지의 "거실 음악(Living Room Music, 1940)"은 포크 부딪히는 소리와 테이블 두드리는 소리 등 일상에 존재하는 소리들을 음악의 재료로 삼아 작곡되었어요. 벤자민 패터슨(Benjamin Patterson, 1934-2016)의 "종이 작품(Paper Piece, 1960)"은 종이를 구기거나 찢는 등 악기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종이에서 나는 소리를 소재로 음악을 만들었답니다.


5. 레코딩 기술과 융합한 실험음악의 발전


"음악은 듣는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하는 것,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소리를 시도하는 것, 실험음악이 사운드아트의 한 갈래가 됩니다. 실험음악이 발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레코딩 기술의 발달이 무엇보다도 중요했어요. 레코딩 기술을 통해 소리를 기록하게 되면 무엇이 가능해질까요? 소리의 가공과 변형이 가능해집니다. 음원을 녹음하는 과정을 상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잘라내 없앨 수도 있고, 특정 이펙터를 걸어 소리를 원하는 방향으로 왜곡시킬 수 있고, 소리 조각을 뒤집어 앞에서 뒤로 녹음되었던 소리를 뒤에서 앞으로 재생되게 할 수도 있고... 소리의 가공과 변형을 통해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소리를 인공적으로 창조해 낼 수 있게 되었죠. 바로 지금 우리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해내는 것처럼요.

"소리는 자연의 단어"라는 말을 남긴 구체음악의 창시자 피에르 셰페르(Pierre Schaefer)현실의 소리들을 녹음한 뒤 기계장비로 가공 변형하여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소리를 구현해냈습니다. 전자음악의 시초라 할 수 있어요.



한편 카를하인츠 슈톡하우젠(Karlheinz Stockhausen)은 셰페르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녹음기술을 활용했어요. 셰페르가 현실에서 녹음한 소리만을 재료로 삼아 가공하고 변형했다면, 슈톡하우젠은 소리의 파동을 전자적으로 조작한 전자음까지 사용하여 새로운 소리의 지평을 열었죠. 지금이야 전자적인 소리가 넘쳐나는 시대지만, 소리의 발생을 전적으로 악기에 의존하던 시대 슈톡하우젠이 선보인 소리는 얼마나 센세이셔널했을까요? 그의 대표작 "소년의 노래(Gesang der Jünglinge, 1956)"는 전자음과 소년의 노랫소리를 재료로 만들어졌는데, 당시 음악계에 커다란 돌풍을 일으켜 전자음악의 발전을 촉진했답니다.


6. 사운드아트, 시각예술과 융합하다


오늘날 사운드아트는 소리만을 활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퍼포먼스, 설치, 조각 등 시각예술과 융합된 형식으로 활발히 창작되고 있어요. 이러한 형태의 사운드아트 작품들은 사운드 설치(Sound Installation), 사운드 조각(Sound Sculpture), 사운드 퍼포먼스(Sound Performance)의 세 종류로 분류됩니다.

사운드 설치(Sound Istallation) 작품은 설치미술과 사운드아트의 결합으로 이루어집니다. 앞서 살펴본 노이하우스의 작품과 같이 작품이 설치되는 공간의 특성이 무척 중요한 장르라고 할 수 있어요.



사운드 조각(Sound Sculpture)조각이라는 시각적 요소가 사운드의 발생체가 되어 조각이 시각예술인 동시에 청각예술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사운드 퍼포먼스(Sound Performance)퍼포먼스 과정에서 발생하게 되는 소리 역시 예술적 요소로 간주하고 퍼포먼스라는 시각적 요소와 사운드라는 청각적 요소를 통합적으로 사유하는 것이 특징이예요. 특히 인터랙티브 등 기술적 요소까지 결합하면 감각적으로 무척 화려한 작품이 탄생하게 된답니다.



이렇듯 시각예술과 융합한 형식의 사운드아트를 세 가지로 분류해 살펴보았지만, 사운드 조각에서 사운드 퍼포먼스의 요소가 보이고 사운드 퍼포먼스에서 사운드 설치의 요소가 보이는 등 각 장르의 경계는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고 흐릿한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어요. 이러한 모호성과 통합성, 자유로움 역시 사운드아트의 매력이라 할 수 있겠죠.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사운드아트는 음악의 관습적 틀에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고 파격과 실험을 거듭하는 것으로부터 태어났어요. 기술의 발전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했고, 다른 예술 분야와 적극적으로 융합하며 새로운 예술 형식을 만들어내고 있지요.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것, 관습과 경계를 거리낌없이 부수며 나아가는 것,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열린 마음에 음악의 미래가 있을 것입니다.

Editor's Comment
이 원고를 작성하며 많은 도움을 받은 글 "사운드 아트 소개(An Introduction to Sound Art, 2006)" 전문은 저자인 영국의 사운드아트 작곡가 로버트 워비(Robert Worby)의 웹사이트 http://www.robertworby.com/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글의 인용을 허락해 준 로버트 워비(Robert Worby) 작곡가에게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감사를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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