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대넓얕

예술가와 정신질환

어떤 예술가에게나 정신질환 하나쯤은 있다..?!?

by Jinny

찬 바람이 부는 겨울, 연례행사처럼 감기에 걸리기 마련인데요, 마음의 감기라고 하는 우울감도 스멀스멀 밀려오곤 합니다. 한 해가 흘러간 데에 대한 허무감과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대한 압박.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이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오늘 나눌 이야기는 예술가들의 정신 질환이에요. Jinny가 오랜 시간 동안 겪은 바에 미뤄보면, 예술가 집단에는 아주 예민하고 섬세한 사람들이 많고 우울증을 포함한 정신 질환자들도 많았거든요. (Jinny 본인을 포함해서 말이죠 ㅎㅎ)

이 같은 경험적 통계가 사실일까요? 예술가는 왜 쉽게 우울할까요? 혹시 우리는 우울할 수밖에 없는 운명일까요?

목차
  1.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겨울 나그네"
  2. 예술가는 우울하거나 미쳤다
  3. 광기의 천재라는 환상
  4. 왜 그들은 미쳤을까?
  5. 건강한 예술가
  6. 당신의 섬세한 감수성이 빛을 잃지 않기 위해

1.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겨울 나그네"

떨이로 싸게 파는 음식을 사러 여기저기 헤매는 비쩍 마르고 왜소한 남자. 가난 때문에 사는 게 고달파 매일 밤 잠들 때마다 내일 아침 눈을 뜰 수 없으면 좋겠다고 하는 남자. 이 남자는 가곡의 왕으로 추앙받는 위대한 작곡가 슈베르트입니다.

슈베르트는 31세에 요절하였는데요,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그의 명성은 사후에 그의 곡들이 재평가받으면서 쌓아진 것이에요. 생전에 살리에르나 베토벤 같은 작곡가들의 주목을 받긴 했지만, 큰 성공을 거둔 대 작곡가 반열에는 오르지 못하였죠. 그러기에는 너무나 일찍 사망하기도 하였고요.

매독으로 건강이 악화되면서 조울증 (기분이 들뜬 상태인 조증과 우울한 상태인 우울증이 번갈아 나타나는 양극성기분장애)을 앓았다고 하는데요, 병마와 싸우던 그는 죽기 한 해 전 1827년에 그의 대표작 연가곡 "겨울 나그네"를 작곡합니다.

"겨울 나그네"는 뮐러의 시집 "겨울 나그네" 시집에 실린 24편의 시에 음악을 붙여 만든 방대한 분량의 연가곡이에요. 전체적인 줄거리는 사랑하는 여인과 이별한 남자가 황량한 겨울 들판으로 방랑을 떠나는 이야기인데요. 극도에 달한 가난과 병마로 시든 몸, 성공을 향한 갈망이 부름받지 못했다는 낙담 등 당시 슈베르트의 여러 어려운 상황과 심리적 스트레스 때문에 그가 이 우울한 시집에 매료되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중에서도 슈베르트가 조증일 때 쓴 곡과 우울증일 때 쓴 곡이 조금 다르다고 해요.

Franz Schubert: Der Lindenbaum, D.911 n°5 (Winterreise)
Dietrich Fischer-Dieskau, Bariton / Gerald Moore, Klavier

다섯 번째 곡 '보리수'조증일 때 썼던 곡으로, E 장조와 e 단조로 조성이 번갈아 나타나며, 피아노의 반주패턴 또한 비교적 화려해요.

성문 앞 우물 곁에 서 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에서 수많은 달콤한 꿈을 꾸었네 그대의 단단한 껍질 위에 수많은 사랑의 말을 새기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나는 항상 그를 찾았네 ... 그러자 나뭇가지가 속삭이며 말했네 마치 나를 부르는 듯이 여기 내게로 오라 나그네여 여기서 너의 안식을 찾으리 ... 이곳에서 휴식을 찾으라!

-보리수 (Der Lindenbaum) 가사 中

Franz Schubert: Der Leiermann, D.911 n°24 (Winterreise)

반면 마지막 곡 '거리의 악사'우울증일 때 썼다고 알려졌는데요, 조성이 f단조로 고정되었으며 피아노는 동일한 선율을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반복합니다. 화성 변화가 비교적 적고 지속해서 연주되는 낮은 C음 때문에 곡의 시작부터 끝까지 짙은 음울함이 마치 끝나지 않는 안개처럼 펼쳐져 있는 것 같습니다.

마을 뒤 저편에 거리의 악사가 서 있네 얼어붙은 손가락으로 최선을 다해 연주하네 맨발로 얼음바닥 위에서 이리저리 비틀거려도 그의 작은 접시는 항상 텅텅 비어있네 아무도 그를 들으려 하지 않고 아무도 그를 쳐다보지 않네 ... 그의 악기는 절대 멈추지 않네 ... 기이한 노인이여 나 그대와 함께 가리까?

-거리의 악사 (Der Leiermann) 가사 中

2. 예술가는 우울하거나 미쳤다

슈베르트뿐만 아니라 말러, 차이코프스키, 로베르트 슈만...등 많은 작곡가들이 우울증으로 괴로운 삶을 살았거나 실제 자살을 행했어요.

유럽 클래식의 역사가 작곡가 중심으로 기록되어왔기 때문에 연주자의 정신 장애에 대해서는 많은 자료를 찾을 수는 없지만, 정신과 의사 아놀드 루드비히의 저서 ⟪천재인가 광인인가⟫에 따르면 창의적 예술 활동을 하는 사람 중 연주자나 배우 같이 감성적 표현과 개인의 체험, 생생한 상상력을 영감의 주된 원천으로 삼는 사람이 정신 장애를 겪을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예술과 광기의 상관관계는 역사적인 통념이에요. 플라톤은 "시인의 영감은 종교적인 광기의 순간에 나타난다"고 하였고,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는 "나와 미친 사람 사이의 유일한 차이란 내가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라며 역설적이고 심오한 통찰을 보여주었죠.

심지어 이를 뒷받침하는 객관적인 지표도 있는데요, 로버트 파워 영국 런던 킹스칼리지 정신의학연구소 박사팀은 조현병과 조울증 발병 위험을 2∼3배 높이는 유전자 변이가 예술가 집단에서 정상인보다 17% 더 많이 발견된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 뉴로사이언스’를 통해 밝혔다고 합니다.

3. 광기의 천재라는 환상

위와 같은 통계는 예술과 광기 사이의 낭만적인 해석을 낳게 합니다. 이 때문에 병에 걸린 이들은 병을 방치하고, 어떤 이들은 예술을 위해 술이나 마약과 같은 향정신성 약물을 통해 정신 이상자가 느낄법한 고양된 기분을 느끼거나 환각 체험을 하기도 합니다. 프레디 머큐리, 밥 딜런, 쳇 베이커, 비틀즈, 전인권, 비아이 등 인기 대중음악가의 마약 중독은 비일비재한 뉴스이지요. 대중 매체들은 이런 이미지를 미화하여 판매하기도 합니다. 정신 질환은 창의적인 사고에 필수 자질일까요? 정신질환과 예술가적 창의성이 양적으로 관련 있다는 통계가 정말 진실을 담고 있을까요?

lambo

광기, 착란, 죽음, 파괴 등을 소재로 작업한 천재 시인 '랭보'를 다룬 영화 "토탈 이클립스"의 한 장면.
랭보에게 정신병이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예민하고 섬세한 성정이었으며, 의식적인 광기를 추구했다고 분석된다.
온갖 기행을 저지르고 다녀, 미친 천재라는 낭만적인 이미지에 완벽히 들어맞는 인물이다.

4. 왜 그들은 미쳤을까?

아놀드 루드비히 박사는 '왜 예술가 집단에 유독 정신 질환자들이 많은지'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통찰을 내놓는데요, 이를 통해 정신질환과 예술가적 창의성의 양적 연구가 가진 오류를 엿볼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술직은 '불안정한 사람들'을 배제하는 능력이 부족합니다.

사회에서는 신뢰 가능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사람, 예측 가능하고 논리적이며 이성적인 사람을 선호합니다. 그에 반해 예술직은 이성과 논리보다는 감성을 중시하며, 그 때문에 정서적으로 불안한 사람들을 배격하지 않습니다. 직업을 갖는 데에 통과 의례도 없고요. 그래서 많은 정신질환자가, 그들이 뛰어난 예술가이든 아니든, 예술직에 쉽게 진입할 수 있습니다. 양적인 통계가 정신질환자의 예술적 자질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란 것이지요.

둘째, 직업적 기대 때문입니다.

대중은 광기 어린 예술가가 주는 신비감과 낭만을 좋아합니다. 누군가가 본인의 귀를 잘랐거나 자살을 했다면 안타까운 소식으로 신문에 나올 법하지만, 그것이 고흐와 레죄(헝가리 자살 테마 송이 되어버린 '글루미 선데이'Gloomy Sunday 작곡가)의 행위라면, 그 행위는 그들의 작품에 낭만을 덧입힙니다.

캐나다 작가 마거릿 에트우드Margaret Atwood가 본인 소설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부유한 미술품 수집가들이 사고 싶어하는 것은 다른 것보다 약간의 대리 광기이다"라고 말한 것을 보면, 많은 예술가들이 '보통 사람'이라는 정체감에 콤플렉스를 느끼는지도 모릅니다.

예술가에 대한 이 같은 이미지 때문에 예술가들은 본인의 정서적 아픔을 본인의 삶과 작품을 통해 드러내는 것을 서슴지 않습니다. 공무원이나 회사원 같은 직업군에서 보통 본인의 정신질환을 숨기려고 하는 것과 대조적이지요. 이 때문에 통계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5. 건강한 예술가

예술성을 외부의 존재나 영향으로 얻고 싶은 유혹은 달콤합니다. 얼마나 달콤한지, 크리스틴은 오페라의 유령에게 영혼(?)을 팔기도 하죠. 창조적 영감을 정신질환이나 약물에 의존하여 얻고 싶은 마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신질환은 창의적 예술 활동의 필수조건도, 선행조건도 아닙니다. 아놀드 쇤베르크, 조지 거슈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안정된 삶을 살았던 예술가들이 그 방증이지요. 정신질환을 앓은 사람들의 작품이 더 뛰어나고 독창적이라는 객관적 증거도 없습니다.

예시가 되는 인물을 볼까요?

strauss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Richard Strauss (1864-1949)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가난, 괴팍함, 고독 등 작곡가가 가진 모든 사회적 이미지를 깨버리는 인물이에요. 가난하고 괴팍한 성정의 아버지와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던 어머니 밑에서 순탄하지 않게 자랐지만, 타고난 성향 탓인지 그는 기민하게 이익을 쫓고 꿈을 실현해가는 성인으로 자라났습니다. 독일음악협회의 화장장을 맡는 등 정치적인 활동을 왕성하게 했던 슈트라우스는 나치를 본인 명성과 경제적 부를 쌓는 데에 이용하여 비난받기도 했어요. 그러나 그와 별개로 작품은 매우 독창적이고 예술적입니다.

영화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수록곡으로 널리 유명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가 그의 대표곡인데요, 니체의 철학책과 동명인 이 곡은 인류가 그 기원에서부터 발전해가는 모양을 그리고 있다고 합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였다'에서 명확한 3화음과 웅장한 팡파르로 대중의 귀를 사로잡은 슈트라우스는 실험적인 음악 어법에도 능하였습니다. 근친상간, 누드, 세례자의 목을 베고 그 머리에 입을 맞추는 선정적이고 끔찍한 내용의 오스카 와일드 희곡을 날카롭고 극단적인 불협화음으로 그려낸 오페라 '살로메'는 초연 무대에서 대성공을 거둡니다.

매년 음악 어법과 주력 장르를 거침없이 바꾸어 나가며 다양한 행보를 보였던 그는 언변도 거침없고 솔직하여 주변 예술가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였다는데요, (특히 말러 곡을 비판하여 소심한 말러가 힘들어했다고 합니다) 본인의 정신 건강과 삶에게 만큼은 아군이었던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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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사이시 조 (본명 : 후지사와 마모루 ふじさわ まもる) (1950~)

많은 사람이 사랑하는 히사이시조 또한 정신적으로 건강한 작곡가입니다. 그는 자기 저서 "감동을 만들 수 있습니까"에서 자신의 창조력의 원천을 밝히고 있는데요, 질보다 양으로 승부해야, 축적되는 경험과 무의식 속에서 영감이 찾아온다고 말합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시간에 곡을 쓴다는 점이 기존에 알고 있던 무절제한 작곡가의 이미지와 정반대여서 놀랍습니다.

6. 당신의 섬세한 감수성이 빛을 잃지 않기 위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저, Jinny도 널뛰는 기분과 낮은 자존감으로 인한 끝없는 우울 때문에 힘들어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한때는 이 우울을 원동력 삼아 작업하기도 하였고요. 하지만 우울한 시기가 찾아올 때마다 바닥 치는 의욕과 생산성, 하루에 20시간을 누워서 보내는 제 모습에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심리 상담을 받았답니다. 완전한 치유란 없겠지만 마음이 힘들 때마다 스스로를 다독이는 법을 배우고 실천하고 있어요.

섬세한 감수성은 양날의 검이라고 생각해요. 더 많은 감정과 감각들을 느낄 수 있게 하고, 그것이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될 수 있죠. 하지만 예리한 날을 자신의 내부에 들이댄다면 자기 파괴를 하게 되어요. 내가 스스로 멈추기 전까지는 누구도 대신 붙잡아 주기 어려운 공격이죠.

정신질환과 예술가적 창의성의 상관관계에 관해,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정신질환이 창의성을 북돋아 준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창조적인 사람의 섬세한 감수성이 마치 자가 면역질환처럼 정신병을 유발한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오히려 창의적 생산을 저해한 것이 아닐까요?

조증일 때와 우울증일 때 작품 수가 현저히 차이 났던 슈만이 정신과 치료를 받았더라면, 오히려 좋은 작품을 더 많이 남기지 않았을까요?

schumann

조증과 우울증에 따른 슈만의 작품 수 비교

영화 "토탈 이클립스"의 랭보 역에 원래 캐스팅 예정이었던 리버 피닉스가 약물 중독으로 급사하지 않았더라면, 그 자리를 꿰찬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처럼 리버 피닉스도 지금쯤 중견의 훌륭한 배우가 되어있지 않을까요?

창조의 원천이 사라질까 정신과 치료 혹은 약물 중단이 두려운 예술가들에게 용기를 주는 소식이 있어요. 자기 자신이 성모마리아라고 믿고, 달리는 차를 멈춰 세우겠다고 차도에 뛰어든 시인 로버트 로웰(Robert Lowell)조울증을 치료하고 난 이후에 오히려 창조력을 극대화한 작품으로 퓰리처상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실 누군가에게 감히 말씀드리고 싶어요. 당신의 마음이 아픈 것은 당신이 상처받기 쉬운 순수한 영혼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에요.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는 당신의 섬세한 감수성을 우울이나 아픔이, 약물이 좀 먹게 두지 마세요. 당신의 섬세한 감수성이 오래도록 찬란하게 빛나길 바랍니다.

참고 문헌
  • 랭보의 시 세계에 나타난 광기의 양상들 - [ 지옥에서의 한철 ] 시집의 착란 1 , 착란 2 를 중심으로
    (불어불문학연구, 39권 0호, 곽민석, 1999)
  • 예술은 언제 슬퍼하는가 (박종호, 민음사, 2016)
  • 영화로 보는 현대음악 (임지선, 수문당, 2014)
  • 천재인가 광인인가 (아놀드 루드비히, 김정휘 역,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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