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대넓얕

예술작품은 상품과 다른 것일까?

예술의 상업적 가치에 대한 탐구

by Harrison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생명? 시간? 건강? 사랑? 이와 같은 수많은 답변 중에서 흔히들 예술도 돈과 무관한, 순수하고 고귀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프랑스 작가 스탕달(Stendhal)은 ‘예술이 번창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한 나라가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과 반대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선 돈은 필수 불가결 합니다. 이는 예술가도 마찬가지죠. 그렇다면 애초에 예술 활동은 경제적 이익 추구와 무관할 수가 없지 않을까요? 만약 예술이 자본을 초월한 그 무언가라고 한다면, 예술작품을 상품으로 여기는 시장의 존재는 합당한 것일까요? 미술 시장이나 영화관, 출판사가 예술의 가치를 폄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예술작품으로 정의하는 기준은 무엇인지, 예술을 상업적 가치와 어떻게 연관 지을 것인지 등에 대한 합의가 필요합니다. 정답이 있는 질문이 아니다 보니 간명한 해답을 드릴 수는 없지만, 이번 아티클을 통해 여러분의 예술이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을 살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목차
  1. 작품과 제품의 경계에 관한 여러 의제
  2. 우리가 예술에 바라는 것
  3. 예술의 가치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1. 작품과 제품의 경계에 관한 여러 의제

작품은 제품과는 다른가?

예술은 생산 과정만 놓고 보면 제품과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예술가는 자기 분야의 전문 기술자이며, 재료(소리, 물감 등)를 가지고 자신의 의도에 맞는 무언가를 생산합니다. 그리고 그에 따른 보수를 받죠.

생산 과정만 놓고 보면 작품과 제품은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제품과는 달리 예술작품에 가치, 가격을 정하는 것은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예술작품은 일상의 필요에 의해 생산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술작품은 물질적·사회적 가치, 즉 필요성이 보장되지 않고, 그로 인해 효율성·유용성을 가지지 않습니다. 때문에 사회로부터 가치가 입증되지 않은 대부분의 예술은 무가치한 평가를 받게 됩니다. 그렇기에 예술작품은 마트의 물건처럼 평범한 방식으로 가격을 매길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대다수의 예술작품은 돈으로 살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수십, 수백억에 거래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왜 예술작품에 상업적인 가치를 매겨 거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술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하기 때문일까요? 혹은 예술가의 명성에 기대거나, 투자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작품의 가격은 오로지 예술적인 가치만으로 순수하게 평가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또한 이러한 맥락으로 거래되는 예술작품이라면, 그건 제품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을까요? 예술의 가치는 어떻게 정해지고, 누가 정하는 것이며 이는 신뢰할 수 있는 것일까요?

뛰어난 제품은 작품인가?

위와 반대되는 상황으로, 명품은 어마어마한 부가가치가 매겨진 상품입니다. 사람들은 명품에 제품의 기능보다 초월적인 가치를 바라고 부여합니다. 이러한 명품의 부가가치가 예술에 붙는 가치와 다를 바가 있을까요? 다르다면 무엇이 다르며, 만약 별 차이가 없는 거라면 명품은 작품으로 보아도 무방한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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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생각하는 명품의 기준(출처: 마크로밀 엠브레인)

복제품은 작품인가?

훌륭한 예술성을 가진 것으로 인정받는 작품은 무수히 많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작품을 진품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복제하고, 무한정 생산할 수도 있습니다. 누구나 돈만 지불하면 원본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마크 로스코의 위조품을 집에 걸어둘 수 있고, 수십만 원에 달하는 공연 티켓을 구매하지 않고도 매일 아침 쇼팽의 음악을 모닝콜로 들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복제 덕분에 도리어 작품에의 접근도 쉬워졌습니다. 바다 건너 미술관에서나 볼 수 있는 작품을 내 집 안방에서도 감상이 가능해졌으니까요.

아마도 평범한 사람들은 훌륭한 위조품과 진품을 구분할 수 없기에 복제품만으로도 예술을 즐길 수 있습니다. CD에 담긴 바흐의 음악은 복제품이기 때문에 즐길 수 없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죠. 이렇듯 복제품과 진품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같아진다면, 진품만이 가지는 예술적인 의의가 있을까요?

복제된 작품은 제품인가

고도화된 복제는 작품을 있는 그대로 베끼는 것을 뛰어넘어 머그잔, 핸드폰 케이스 등 온갖 제품들에서 예술작품을 디자인 삼아 제작되고 있습니다. 그것도 엄청 저렴한 가격에 말이죠. 하지만 이러한 행태를 통해 작품과 상품의 경계가 모호해집니다.

이렇듯 무한한 복제가 되어버린 상업화 된 예술은 제품과 다를 것이 있을까요? 이것들은 예술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해버린 것이 아닐까요? 반대로 이러한 상품에도 예술의 가치가 존재한다면, 원작과의 가치와 다를 것이 있을까요?

2. 우리가 예술에 바라는 것

온갖 질문을 쏟아내고 나니 머릿속이 매우 복잡해졌습니다. 이쯤 되니 작품과 제품을 구분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드네요.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가요?

위의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선 이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근본적인 물음에 답을 해야 합니다. 바로 작품과 제품의 차이는 무엇인가입니다. 즉 우리는 예술작품으로부터 제품과는 다른 어떠한 가치를 바라는가가 핵심이 되겠습니다.

예술이 주는 쾌감?

앞서 말한 바처럼 사람들은 제품을 구매하듯이 예술작품도 돈으로 거래합니다. 이처럼 예술작품을 돈 주고 샀을 때 얻는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면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컨대 우리는 영화나 콘서트 등을 돈을 주고 관람합니다. 이러한 예술은 관객에게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경험을 제공합니다. 관객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하며, 이에 따른 쾌감을 얻습니다. 즉 유쾌한 순간을 위해 돈을 지불합니다. 하지만 경기장에 가서 스포츠를 관람하거나 놀이동산에 놀러 가는 것도 이와 비슷한 쾌감을 주는데, 이러한 경우는 예술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 편입니다. 즉 유흥에만 초점을 둔 것은 상품과 다를 바가 없다는 뜻입니다.

예술의 미적 아름다움?

다른 경우로, 사람들은 예술작품이 선사하는 아름다움에서 가치를 찾곤 합니다. 하지만 아름다움은 인간의 쾌락을 충족시킨다면 예술은 그보다도 더 넓은 범주에 있습니다. 예술작품은 꼭 아름답지 않더라도 사람들을 자각하고, 자극하고, 각성하고, 고발하며 감동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예술은 아름다움이 주는 쾌락 이상의 가치를 내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아름다움 그 자체가 예술의 목적이라면, 수많은 제품도 고객의 니즈에 맞춘 아름다움을 추구합니다. 이러한 제품을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예술작품이라고 칭하기엔 어려움이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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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을 제품의 홍보 수단으로 이용하는 경우는 적지 않다. (사진 출처: 발뮤다)

예술의 무목적성과 순수성?

또 누군가는 예술이 상업적 이익을 목표로 하지 않고 예술가의 본질적 내면세계를 표현하는 것, 즉 예술 본연의 무목적성과 순수성으로부터 그 가치가 발현된다고 말합니다. 예술작품의 상업화는 예술의 정신을 위배하며, 그렇기에 자본주의의 논리에서 벗어나 예술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는 역설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순적인 결과를 초래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작품에 부여된 상업적인 가치는 대부분 작품이 지닌 예술성을 기준으로 삼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즉 사람들은 그 작품이 예술적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만한 값을 지불합니다. 하지만 위의 주장처럼 예술이 상업적 이익에 반함으로써 가치가 발현되는 것이라면, 예술적인 가치를 추구할수록 오히려 가격은 상승하는 역설이 발생합니다. 작품의 가격은 예술가의 의지와는 별개라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으나, 상업적인 가치를 거세해 버리겠다고 500억에 낙찰된 작품을 500원에 파는 작가는 없을거니와, 가격은 보통 작가의 명성 등으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에 완전무결한 관계라고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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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서 수만 달러 짜리의 작품을 수십 달러에 판매한 뱅크시. 하지만 고작 8개의 작품만이 팔렸다. 상업적인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작품을 판매했으나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예술적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서 작품을 구매하지 않았으며, 뱅크시라는 거장의 예술적인 가치가 반영되었다는 것이 알려진 순간 작품의 가격은 수천 배가 상승했다.

결국 예술가가 자신의 예술적 가치를 발할수록 가격이 상승하는 자본주의 시장에서, 예술가는 상업적 이익을 배제한 작품을 만들 수 없는 현실적인 구조 속에 처해있는 것입니다.

또한 작품성을 인정받은 예술작품 중에는 상업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경우가 상당합니다. 감상자가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다면, 예술작품이 주는 감동도 반감되어버릴까요?

3. 예술의 가치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우리는 예술에 무엇을 바라는가에 대한 다양한 주장들을 살펴보았으나, 확고한 답을 얻진 못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답을 영영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술가도, 예술작품도, 감상자도 모두 각각의 개별자일 뿐, 그 어떤 것도 절대적인 가치로 정의할 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예술의 가치는 예술을 받아들이는 각각의 수용자에게 전적으로 달려있습니다. 시력 2.0과 0.1이 보는 세상이 다를 수밖에 없듯이, 예술을 받아들이는 준거는 모든 사람이 같을 수가 없습니다.

눈은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 하지만 눈의 개념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누군가에겐 로코코와 같은 화려한 기교의 화풍이 예술이며, 흐리멍텅해 보이는 인상주의는 예술이 아닐 수 있습니다. 매트릭스나 블레이드 러너와 같은 영화가 누군가에겐 철학적 담론을 제시하는 예술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겐 그저 화려한 볼거리의 오락 영화일 수 있습니다. 때문에 변기에 서명을 하는 것만으로도, 아무것도 연주하지 않고 앉아있는 행위만으로도, 그 모든 것이 예술임과 동시에 예술이 아닙니다. 작품이 예술이 되기 위해선 감상자가 이를 예술작품이라고 수용해주는 과정이 있기 전까진 예술작품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작품이 상상 속에 있든, 누군가의 개인 컬렉션이든, 공공재처럼 널리 퍼져있든, 복제되었든, 작품의 가격이 어떻든 간에 예술이 가진 가치는 폄하되지도, 상승하지도 않습니다. 예술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가치 또한 위에서 언급했던 그 모든 것을 얻을 수도, 아무것도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좌) 마르셀 뒤샹, 샘 | (우) 존 케이지, 4분 33초

(좌) 마르셀 뒤샹, 샘 | (우) 존 케이지, 4분 33초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되돌아 가봅시다. 예술작품은 상품이 될 수 있을까요? 예술적 가치는 감상자가 그 가치를 스스로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이미 쓰임새가 정해져 있는 상품과는 다릅니다. 하지만 감상자가 작품이 지닌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수용할 수 없다면 작품은 상품과 다를 바가 없는, 어쩌면 상품보다도 못한 것이 되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즉 작품과 상품으로서의 준거는 이를 받아들이는 여러분에게 달려있습니다.

때문에 다양한 예술을 폭넓게, 깊이 있게 이해하고 싶다면 감상자의 가치관 성장이 우선시되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예술작품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 감상자 또한 예술가가 되어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술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예술가의 눈높이만큼 본인의 정신세계를 고양하는 과정이 될 테니까요. 이렇듯 예술작품을 통해 자신을 변화시키는 과정 또한 예술이 주는 즐거움 중 하나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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