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먹고사는 사람들

한 가락 한 가락 선율을 빚는 장인, 아쟁 연주자 겸 창작자 김용성

아쟁 연주자이자 아쟁 음악 창작자 김용성의 예술세계

by Jinny

아쟁 연주자 겸 창작자 김용성

현) 국립국악중학교, 계원예고 출강 / 방울성 동인

2021 돈화문국악당 [산조대전] – 김용성류 아쟁산조
2021 시들의 사운드트랙 009 - [송승언 X 김용성 – ‘흰빛’]
2021 여우락 페스티벌- [김용성 X 박선주 - ‘실마리’]
2021 신진국악실험 무대 [Gray by Silver - ‘표현주의’]

Editor's Comment

뚝딱뚝딱 실험처럼 요리하는 것이 취미라는 아쟁 연주자 김용성. 그는 아쟁이 내는 '소리'를 재료로 이런저런 실험을 한다.

골방에서 한 가락 한 가락 뽑아 낸 선율로 그는 그의 산조를 만든다. 소리의 전체적 인상은 지극히 전통스럽지만 내적으로는 기존의 관습을 깨버린 산조다. 이런 그에게서 세속적 삶을 초월하고 화풍의 구속을 벗어 던졌던, 붓 끝에 한평생을 바친 조선후기 화가 장승업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아쟁 연주자이자 아쟁 음악 창작자 김용성의 예술세계를 인터뷰를 통해 엿보았다.

목차
  1. 아쟁과의 인연
  2. 김용성의 산조
  3. 김용성의 시와 그림, 그리고 음악
  4. 아쟁에 관하여
  5. 앞으로의 계획

1. 아쟁과의 인연

안타깝지만, '아쟁'의 생김새를 단번에 떠올릴 사람이 많지 않을 것 같아요. 아쟁은 어떤 악기인가요?

제가 지금까지 해온 설명 중에 가장 직관적이었던 것은, '가야금을 활로 켜는 모양새를 가진 악기'였어요. 많은 분들이 아쟁과 해금을 헷갈리시는데, 외양은 가야금과 더 비슷해요. 가야금보다는 훨씬 크고 두껍고, 낮은 음을 내고요.

아쟁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쓰임이 다양하지 않아서 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같은 찰현악기(활을 줄에 마찰하여 소리 내는 현악기)인 해금 연주자가 겸해서 연주하곤 하였죠. 전통 국악기 중에는 낮은 음역대를 긴 음가로 풍성하게 채워주는 악기가 희박한데, 아쟁이 거의 유일하게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요. 마치 첼로처럼요. 그래서 그런지 현대에 와서 점점 수요가 많아지는 것 같아요. 전공자도 많아졌고요.


대중에게 이렇게 생소한 악기인데, 김용성님은 어떻게 처음 아쟁을 접하였고, 업으로 삼게 되었나요?

할아버지께서 전주에서 판소리를 하셨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아버지가 국악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그러던 중 아버지 친구의 아내분께서 아쟁 연주자시라는 것을 알게 되셨고 저에게 배워보길 권하셨죠. 그때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어요.

배우다 보니 재밌었던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전주 예술 중학교에 입학하였고, 이후에는 서울에 있는 국립국악고등학교에 갔죠. 정신차려 보니 지금은 아쟁으로 밥을 벌어먹고 있네요.

2. 김용성의 산조

몇 년 전부터 '김용성류 아쟁산조'를 창작하고, 연주하시는 것으로 주목받고 계세요. '산조'란 어떤 음악인가요?

질문 주신 '산조의 정의'가 요즘 저의 화두인데요, 사전적으로만 말하자면, 산조는 판소리에 영향을 받아 20세기 초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기악 독주 장르에요. 악기의 기교가 농밀하게 담긴 기악곡의 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산조는 전통 국악 중 유일하게 저작자가 분명한 장르예요. 보통 저작자 본인의 이름을 따서 'ooo류 가야금 산조'와 같이 이름 붙이죠. 이걸 제자들에게 구전심수로 전승해 왔어요. (요즘엔 정리된 악보집이 나오고 있지요) 저도 그와 비슷하게 저만의 산조 가락을 짜서 '김용성류 아쟁산조'라고 한 것이에요.

근데 요즘에는 산조의 정의에 물음표가 생겼어요. 제가 만든 음악을 자작곡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산조라고 불러야 할까요?

그동안 제가 제 음악을 산조라고 부른 이유는, 산조가 가진 특정한 음악 형식에서 출발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산조는 한 사람의 독주자가 연주하고 보통 장구 반주를 수반해요. 음계는 판소리에서 쓰이는 조 중에서 계면조*우조*를 주된 음계로 사용하고요. 그리고 대개 느린 장단에서 시작하여 빠르게 끝나요.

저는 이 틀을 부수면서 산조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여전히 혼자 연주한다는 것은 변함없지만, 장구, 북 대신 징, 별신굿 장구* 등 다른 악기로 반주하기도 하고, 계면조 우조 외의 여러 음계를 사용하기도 해요. 장단은 기존에 사용하지 않던 장단을 차용하거나 새롭게 장단을 만들기도 하고요.

그런데 틀을 부수다 보니 '자작곡과 산조의 차이는 뭘까?'라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물론 자작곡이라는 단어가 보다 넓은 의미여서 쉽게 생각을 정리해 볼 수도 있지만, ‘산조가 뭐지?’라는 물음은 결코 쉽지 않더라고요. 어디까지를 산조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산조라고 불리는 것'에 정악* 선율을 넣고 싶을 수 있고, 심지어 연주하는 동시에 구음*을 부르고 싶을 수 있잖아요. 이렇게 된다면 이게 산조일까요?

저는 명확하게 정의되는 음악은 죽은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산조는 지금도 살아서 활발하게 꿈틀거리는 음악이기 때문에 정의 내리기 어려운 건 당연한 것 같아요. 산조의 의미가 예술적으로 확장되면서 더 풍성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가사 없는 판소리에 온점이 찍혀 마무리되기에는 아쉬운 장르에요.

용어사전
  • 계면조: 여러 뜻이 있지만, 본문에서는 판소리와 산조에서 쓰이는 계면조 즉, 계이름으로 '미 라 도시'가 중심이 되는 음계를 뜻한다. 격한 떠는 음과 꺾어내는 음 등의 표현법이 독특하며, 주로 전라도 지역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 우조: 여러 뜻이 있지만, 본문에서는 판소리와 산조에서 쓰이는 우조 즉, 계이름으로 '솔 라 도 레 미'를 사용하며, 이 중 '솔-도'가 중심음이 되는 음계를 뜻한다.
  • 별신굿 장구: 동해안 별신굿에서 쓰이는 장구로 몸체가 작고 소리가 비교적 가볍다.
  • 정악: 궁중음악이나 선비의 풍류 음악을 통칭하는 장르명이다.
  • 구음: 악기의 소리를 입으로 흉내내어 부르는 소리, 혹은 재즈의 스캣처럼 가사 없이 즉흥적으로 흥얼거리는 소리를 말한다.

이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사실 제가 하려던 작업이 처음부터 산조라는 장르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어요. 대학 학부 시절에 다양한 전통음악을 배우면서, "우리 음악에 이렇게 좋은 음악적 소스들이 많은데, 왜 이런 전통 어법으로 더는 새로운 음악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정대업*보다, 수제천*보다 더 멋진 '전통다운' 창작 음악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어요. 당장 악보를 뽑아서 분석하기 시작했죠. 그게 시발점이었어요.

군대 가서 여러 논문을 읽으며 '전통적인 창작방식'에 관해 생각을 정리했어요.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한 선배들이 많았더라고요. 그때 저는 '첫 시작을 산조로 해야겠다'라고 정했었어요. 산조가 독주 장르이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가장 많이 연주해온 장르이기도 하고요.

용어사전 2
  • 정대업: 조선 역대 왕의 신주를 모신 종묘에 제사를 지낼 때 연주하는 '종묘제례악'에서 왕의 무공을 칭송할 때 연주하는 악곡이다.
  • 수제천: 관악기가 무정형 장단으로 호흡에 의해 음악을 전개하는 것이 묘미인 재미있고 멋진 곡이다.

작업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산조가 국가 무형문화유산으로 문화재화 되다 보니, 젊은 연주자가 자신의 이름을 건 산조 류파를 만드는 것에 대해 국악계의 부정적인 시선이 있어요. 특히 산조 앞에 붙는 '류'라는 단어는 전승체계 안에서 쓰이는 용어이고, 나이가 많거나 제자가 많고 예술성이 뛰어난 원로 연주자에게 붙이는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라서, 첫 독주회 때([김용성류散調] 2018.4.14. 한국문화의집 KOUS) 긍정적인 시선 못지않게 부정적인 시선도 많이 있었습니다.

외부적인 어려움 외에 작업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 중 하나는 제 인식이었어요. 산조를 만들 때 멋진 가락을 만들어 놓고도 이게 맞는지 틀리는지 옳고 그름의 잣대가 자꾸 머릿속에 맴돌았어요. 자신의 분명한 예술적 관점에 따라서 판단하고 이끌어 가야 하는데 저도 모르게 자꾸 정통성의 관점으로 저 자신을 분재하려고 하더라고요. 그 생각을 내려놓는 데에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렸어요.


작업 방식에 대해 조금 더 소개해 주세요. 전통 어법을 사용한다고 하셨는데 전통 어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음계는 전통음악의 다양한 장르에서 가져오기도 하고, 제가 원하는 음으로 음계를 새로 만들기도 했었어요. 마찬가지로 장단도 동해안 별신굿*의 장단을 사용하기도 하고, 제가 장단을 만들기도 했어요.

예전에 전지영 선생님 글에서 '전통음악의 도구적 사용'이라는 표현을 읽은 적 있는데요, 서양음악 진영에서 전통음악의 어떤 부분 부분을 효과음으로, 연출적 요소로, 도구적으로 사용하기에 그친다는 내용이었어요. 물론 그렇게 사용하는 것이 전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만 그치는 것이 안타깝다는 것이죠. 저는 여기에 깊은 공감을 했어요. 그래서 저는 전통적 창작방식이 뭘까 고민하면서 작업을 하고 있어요. 서양작곡하는 사람이 서양작곡(composition)을 하는 것처럼 전통음악 하는 사람이 전통적 작곡을 한다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편할 것 같아요.

용어사전 3
  • 동해안 별신굿: 동해안의 어촌 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비는 굿으로, 장단체계가 매우 복잡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3. 김용성의 시와 그림, 그리고 음악

'객석'이라는 잡지에 올라간 용성 님의 글을 보았어요. 표현이 굉장히 시적이시더라고요.

시를 즐겨 읽진 않지만, 많이 좋아해요. '객석'에 올린 글은 정태춘의 '시인의 마을'이라는 노래를 듣고 떠오른 감상을 적은 것이에요. 글에 전문적인 사람은 아니라 부끄럽네요. 얼마 전에는 송승언 시인의 시낭독에 음악을 연주하는, 낭독회 겸 공연을 하기도 했어요. 시 전문 서점에서 진행했는데 굉장히 새롭고 재미있는 경험이었죠.


글에 본인이 그림을 그리신다는 얘기가 있던데요, 그림과 함께하는 공연을 기획 중이시라고!

소소한 취미로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요. 아쟁을 하면서는 늘 천국과 지옥을 넘나드는데, 그림을 그릴 때는 마음이 편안해요. 전공이 아니어서 잘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없으니 그럴지도 몰라요. (웃음) 그림을 자주 그리다 보니 꼭 그려보고 싶은 그림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린 그림과 음악이 함께하는 공연 겸 전시를 기획하게 되었어요. 서촌에 공간 서로라는 곳에 이틀 동안 전시 하고, 마지막 날 같은 곳 지하 연주장으로 그림을 가지고 내려와 무대에 놓고 음악을 하는 공연이에요.


여러 예술 분야에서 다재다능한데, 서로 간 연관성이 있나요? 그 원천이 되는 예술관이 있으신가요?

원천이라고 한다면 그냥 '김용성'입니다. 앞서 '류'라는 용어에 관해 얘기 했었는데, 저는 이 '류'를 단지 전승체계 과정 안에서 쓰이는 용어로서가 아닌 다른 의미로 해석하고 싶어요. '류'의 한자는 '흐를 류' 자인데요. 여기서 흐른다는 의미가 위 세대에서 아래 세대로 흐른다는 것이 아니라, 작자의 마음속 심연에서 흐른다는 의미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누구나 마음속에 심연이 있잖아요. 그 심연 즉, 깊은 연못에서 흐르는 물이 어떤 예술로서 표출된 것이죠. 그것이 산조일 수도 있고 시일 수도 있고 그림일 수도 있는 거죠.


용성 님의 심연이 음악으로 흐를 때, 산조가 아닌 다른 음악이 나온 적은 없으신가요?

전통어법을 위주로 하지 않은 창작곡을 만든 적이 있긴 해요. '해무'라는 곡과 '공허 속 위로'라는 작품이에요. '해무'는 예전에 하던 앙상블 팀에서 자작곡을 발표하게 되어 만들었던, 제 첫 창작곡이에요. 바다 춤이라는 뜻이고요. 바다와 죽음을 중심에 놓고 작곡한 음악이에요. 아쟁의 여러 주법들을 모두 사용해서 음악적으로 녹여내려고 노력했어요. '공허 속 위로'도 주법이 위주가 되는 곡인데, 악기 두 대를 T자로 놓고 양손으로 한 대씩 연주했어요. 군대 가기 전에 썼는데, 공허한 마음을 스스로 위로하는 곡이었을까요? (웃음) 이런 작업을 할 때는 주제에 걸맞는 이미지를 상상하고 거기에 어울리는 소리를 찾아가요. 산조 만들 때처럼 악기로 계속해보면서 한 땀 한 땀 만들어나가기 때문에 악보는 없어요. 악보를 만드는 것보다 외우는 게 더 빠르고 저에겐 더 편해요.

해무 - 김용성, 김재훈

공허 속 위로 - 김용성, 이은지


자신만의 곡을, 산조를 만들고 싶은 연주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전통음악을 하며 자신을 드러내는 일은 아직까진 용기가 필요한 일이에요. 옛 부터 전승되는 음악에는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니까요. 저는 그 생각을 내려 놓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어요. 모두가 자신을 믿고 자유롭게 표출하길 바라요.

자신의 고유성을 분재 하지 말고 본연의 모습으로 솔직하게 음악을 했으면 좋겠어요.

나를 표현한다고 만드는 곡이 타자의 시선에, 사회적 의미나 관습에 휘둘리고 결국 결론적으로 나 자신이 소외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시대를 앞서야 한다거나 동시대적이거나 대중적이어야 한다는 거대 담론에 의해 자기 삶을 소외시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분재 되지 않은 나무처럼 자기가 뻗어 나가고 싶은 대로 치열하게 자신의 가지를 뻗어 냈으면 좋겠어요. 스스로 속이지 않는 솔직한 음악을 하면서 자기 본연의 향기를 뿜어내는 삶을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제 지향점이기도 해요.

4. 아쟁에 관하여

김용성에게 아쟁이란?

비싼 악기요. (웃음) 악기값이 점점 올라서 걱정이네요. (웃음) 국악기들은 보통 쓰면 쓸수록 닳는 소모품인데, 아쟁은 다른 악기들에 비해 수명이 길긴 한 것 같아요. 오래 쓰면 20년? 최대 음량과 에너지가 크기 때문에, 셈여림의 범위나 표현의 영역이 넓은 것이 아쟁의 큰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15년차 아쟁 연주자가 생각하는 아쟁 연주의 포인트는 무엇인가요?

아쟁은 에너지가 커서 조금만 감정을 넣어도 넘치기 쉬운 것 같아요. 특히 왼손으로 현을 누를 때 조금만 격해도 농현*이 심히 굵어진다거나 빨라져요. 그게 매력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긴 한데, 저는 개인적으로 담백하게 연주하는 게 더 어렵다고 생각해서, 우선 담백하게 연주하는 연습을 많이 하고 필요에 따라 격한 표현을 하는 편이에요.

용어사전 4
  • 농현: 현을 흔든다는 뜻으로 '비브라토'를 일컬으며, 국악 현악기에 사용하는 용어. 참고로 관악기에서는 '농음'이라고 표현한다.

5. 앞으로의 계획

앞으로의 공연이나 활동 계획이 어떻게 되나요?

우선 오는 12월 22일서촌 공간 서로에서 아까 말씀드렸던 그림과 함께하는 공연을 해요. 이날 또 다른 산조를 발표하는데요, 가야금, 거문고, 해금, 대금, 아쟁, 피리, 총 여섯 악기가 각각 연주하는 여섯 개의 산조를 새로 발표합니다. 이에 어울리는 여섯 점의 그림도 함께 전시하고요.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이 여섯 산조를 하나의 음반으로 내고 싶어요. 그리고 당장은 아니지만, 이 산조들의 악보집을 내고 싶습니다. 한 ...30년 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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