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신대륙을 발견하다

한국대중음악상 요모조모 뜯어보기 (하)

넓고 깊고 반짝이는 우리의 음악세계, 한국대중음악상을 길라잡이로 살펴보자

3년 전|Estel

상업적 인기 여부에 상관없이 훌륭한 음악성을 지닌 음악과 뮤지션들을 조명하는 한국대중음악상 요모조모 뜯어보기, (하)편으로 돌아왔습니다. (상)편은 다음 링크에서 확인해보세요!

(상)편에서는 한국대중음악상이 어떤 상인가를 소개하고, 2004년부터 2021년에 이르는 한국대중음악상의 역사를 네 시기로 나누었어요. 그리고 그 중에서 첫 번째 시기(2004년~2008년)까지의 수상작과 수상자 일부를 함께 살펴보았어요.
이번 (하)편에서는 두 번째 시기(2009년~2013년), 세 번째 시기(2014년~2017년), 네 번째 시기(2018년~2021년)를 순서대로 살피고, 한국대중음악상을 통해 알 수 있는 한국대중음악의 갬~성과 현재의 트렌드,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를 Estel피셜로 상상해 보겠습니다. 그럼 오늘도 음악에 흠뻑 뮤며들어 갑시다!

목차
  • 한국대중음악상, 도대체 어떤 상이야?
  • 한국대중음악상의 역사 : 네 시기로 나누어 살펴보자
  • 2004년~2008년 : 추억은 아름다워라, 록발라드의 화려한 불꽃과 될성부른 떡잎들
  • ☕ 2009년~2013년 : 맛있는 싸구려 커피에서 피어오르는 사이키델릭 리버브에 취해요
  • 💊 2014년~2017년 : 빨간 약은 레트로요 파란 약은 트렌디요 제3의 길은...
  • 😎 2018년~2021년 : 미친 존재감의 재등장, '빅 뮤지션'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 2009년~2013년 :
맛있는 싸구려 커피에서 피어오르는 사이키델릭 리버브에 취해요

2009년에서 2013년까지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수상한 작품들과 음악인들을 다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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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 장기하와 얼굴들은 올해의 음반(2012) 올해의 노래(2009) 올해의 음악인(2012)으로 한국대중음악상에서 무려 세 번이나 수상했어요.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장기하와 얼굴들을 이렇게나 주목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름다움에는 예쁜 아름다움, 슬픈 아름다움, 그리고 웃픈 아름다움이 있죠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눅눅한 비닐장판에
발바닥이 쩍 달라 붙었다 떨어진다

Estel은 학창 시절 장기하와 얼굴들의 '싸구려 커피'를 접하고 여러 의미로 충격을 받았더랬습니다. 이게 뭐하는 노래야?!? 멜로디가 분명 있긴 있는데 예쁘게 멜로디를 다듬어 부르는 익숙한 방식으로가 아니라 노래와 나레이션과 랩과 감탄사(?)가 묘하게 버무려져 들려오는 보컬을 난생 처음 접했거든요. 가사도 이건 주제가 사랑도 아니고 이별도 아니고 무슨 넋두리를 이렇게 길게 늘어놓는지, 당시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기억이 나요. (대학생이 되고 나서부터는 뼈저리게 이해했지만요... 😂)




한국대중음악상의 첫 번째 시기(2004년~2008년)에는 록발라드가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서정성을 지니고 있는 음악들이 우세했어요. 지난 아티클에서 말씀드렸듯 록은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핵심 기둥 중 하나이고, 서정성 역시 인간에게 가장 친숙하고 보편적인 감성이기에 수상작들이 낯설기보다는 낯익고, 신선하기보다는 친숙하고, 이해하기 쉬운 언어와 어법으로 감동을 주었죠.

그런데 '싸구려 커피'는 이전 시기의 주류와는 전혀 다른 감성을 담고 있으며, 그 감성을 표현하는 음악 어법도 이전과는 무척이나 달라요. 화자가 자신의 처지를 화폭에 그려내듯 상세하게 묘사하며 자조하는데, 등장하는 문장들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어
바퀴벌레 한마리쯤
쓱~ 지나가도

모기 때려잡다 번진
피가 묻은 거울을 볼 때마다
어우! 약간 놀라

이빨을 닦다 보면은
잇몸에 피가 나게 닦아도
당췌 치석은
빠져 나올 줄을 몰라

서정성과 품위라고는 눈을 씻고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바퀴벌레', '때려잡다', '치석' ... 이런 가사에 예쁜 멜로디가 붙는다면 그건 그것대로 모순적이고 그로부터 어떤 역설이 발생하여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전달하겠지만... 장기하는 가사에 꼭 맞는 자기만의 독특한 보컬을 개발하여 들려주고 있어요.
말하는 듯 음정보다는 억양이 강조되어 들리는 창법, 장난하듯이 꾹 누르거나 홱 던져 끊는 어미, 연극의 독백인지 랩인지 나레이션인지 아무튼 말하는 구간 등 가사와 노래가 동시에 만들어진 것만 같이 꼭 붙어 있어요. 뮤지션 자신의 감성과 음악적 색채가 너무나 뚜렷한 나머지 '장르가 장기하'라 해도 될 만큼 장기하만의 독특한 음악세계를 구축하고 있죠.

그렇다면 장기하와 얼굴들이 인디씬을 넘어 대중음악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수상을 거듭한 사실은 무엇을 뜻할까요? 뮤지션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개성을 음악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다각적으로 실험하여 독자적인 음악세계를 형성하고자 하는 노력이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실례일 거예요. 그리고 대중의 입장에서는, 이전 시기에 비해 대중이 음악을 통해 향유하는 감성이 더욱 다양해졌어요. '기쁨', '슬픔' 이외에도 '해학', '찌질' 등 기존 음악에서 주변부에 위치했던 감성을 적극적으로 향유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변화라 할 수 있어요.

우리는 핫하며 더욱 핫해질 것이다 1 - 사이키델릭

2010년도 올해의 음반과 올해의 음악인 두 부문에서 동시 수상한 서울전자음악단[Life Is Strange]가 눈에 띕니다. 이 음반은 종합분야뿐 아니라 세부분야에서도 최우수 록 음반 부문을 수상하여 3관왕에 올랐어요. 선정위원이 심사평에서 표현하듯 "낭만과 관능", "몽환의 서정"이 담겨 있어 약 빤 듯한 사이키델릭의 분위기가 뿜어져나오죠.



2013년도 올해의 음반을 수상한 3호선버터플라이[Dreamtalk] 역시 사이키델릭 특유의 몽환적이고 나른한 분위기, 다양한 음향 실험을 주요한 특징으로 하고 있고요. 이전 시기에도 한국대중음악상 세부분야에서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지닌 음악들이 꾸준히 주목받고 있었지만, 이 시기에 이르러 세부분야를 넘어 종합분야에서 사이키델릭 록이 상을 거머쥐며 본격적으로 한국대중음악에서 자신의 지분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 2014년~2017년 :
빨간 약은 레트로요 파란 약은 트렌디요 제3의 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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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옛 친구가 좋고 옷은 새 옷이 좋다니, 옛 음악에 새 옷을 입혀보자

뜨겁고 순수했던, 그래서 시리도록 그리운 그 시절.
들리는가, 들린다면 응답하라, 나의...

'응칠' '응사' '응팔' 2010년대 초중반 대한민국을 강타한 응답하라 시리즈, 기억하시나요? 응답하라를 재미있게 시청한 친구의 이야기로는, 이 시리즈가 실제로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늦게 태어나 실제로 그 시대를 겪어보지 않은(혹은 희미하게만 기억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그 시대의 향수에 젖어들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고 해요. 공중전화, 구닥다리 티비, 정겨운 동네 사람들 등... 그 시절을 경험하지 못한 인생 후배들이 인생 선배들에게 진짜 저랬냐며 추억회상을 강요하며 우애를 더욱 돈독히(?) 했다고도 하네요. (본방사수 못한 Estel은 유죄)



특히 작중 흘러나오는 그때 그 시절의 대중음악이 시대의 향수를 되살리는 데 톡톡히 힘을 썼다고 해요. 원곡이 그대로 삽입되기도 하고 현대적으로 리메이크되어 사용되기도 했는데, 향수를 자극하면서도 현대 대중의 감성에 부합하도록 '새 옷을 입은 옛 음악'들은 엄청난 인기를 끌며 음원 차트를 점령했죠. 한국대중음악상에서는 2014년도 시상식부터 영화TV음악 부문을 시상하지 않아 응답하라 시리즈 OST가 후보에 오르거나 수상할 기회가 없었지만, 옛 노래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레트로'가 이 시기 대중음악계의 현상이 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거예요.

그래서일까요? 2014년도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노래에 선정된 조용필'Bounce'는 대중의 엄청난 관심을 모았는데요. 'Bounce'라는 노래 자체는 조용필이 현대적으로 만들고자 한 음악이지만, 옛 음악의 상징과도 같은 가왕 조용필이 컴백한다는 사실 자체가 당시의 레트로 열풍과 조응하여 뜨거운 인기를 불러일으킨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요즘 감성이 이때 감성이야
볼빨간사춘기, 선우정아, 김사월, 혁오, 소유&정기고 '썸(Feat. 릴보이 of 긱스)', Zion.T '양화대교'... 이 시기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수상한 작품들 중에는 유독 대중적으로도 성공한 작품들이 많아요. 이러한 경향 때문에 한국대중음악상이 음악성을 기준으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음악들을 조명하는 취지라면서, 가려져 있는 음악을 주도적으로 발굴하는 게 아니라 대중의 선택을 눈치껏 따라가는 것 아니냐고 심사에 관한 비판을 듣기도 한대요. 하지만 이 시기 대중적 상업적으로 히트를 친 음악들이 한국 대중음악계에도 이전 시기와 이후 시기를 가를 만큼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에 한국대중음악상이 그러한 작품들을 선정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때 인기를 끌며 트렌드로 자리잡은 음악의 감수성 즉 '음색깡패', '편곡연출', '쇼미더랩'이 지금까지도 대중음악의 중심적 요소로 자리잡고 있으니까요.

✋🏼 여기서 잠깐! 'Estel피셜' 음악용어사전

  • 음색깡패
    보컬의 폭발적인 가창력보다는 보컬이 지닌 음색이 더욱 주목받으며 사기적인 음색을 지닌 보컬리스트에게 붙여지는 수식어
  • 편곡연출
    노래 반주가 정형화된 패턴으로 노래를 받쳐주는 역할에서 벗어나 다양한 음색과 장면을 연출하는 방향으로 편곡되며 반주의 역할이 증대되는 경향을 이르는 Estel어
  • 쇼미더랩
    쇼미더머니를 계기로 대중음악의 주류 장르로 격상한 랩을 이르는 Estel어



특히 Estel이 주목한 노래는 '썸'이에요. 예전에는 연애 이전의 꽁냥꽁냥한 분위기를 이르는 단어가 달리 없었다는 사실, 아시나요? 어느 순간부터 '썸'이라는 신조어가 '그러한 시기'(?)를 이르는 말로 알음알음~ 사용되었다고 해요. 그러던 것이 같은 제목의 노래가 히트를 치며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썸이 공식적인(?) 연애 이전 단계로서 사람들의 의식 속에 규정되게 됩니다.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는 문장을 그대로 목격하듯 '썸'이라는 단어가 '썸'이라는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 '썸'이라는 노래가 만들어지고 그것이 다시 '썸'이라는 관계를 강화하는 과정이 무척 신비롭게 느껴졌답니다.


조동진, 나무가 되어
한국대중음악상 2017년도 올해의 음반 그리고 최우수 팝 음반에 선정된 이 음반을 처음 들었을 때 기억이 나요. 한국대중음악상이 아니었더라면 Estel로서는 접하지 못했을 음악이기에, 이번 아티클에서 가장 기대하고 있던 대목이 이 음반을 소개하는 바로 지금이었는데요. 막상 차례가 되니 가타부타 설명을 덧붙이기보다 뮤지터 여러분께서 직접 들으시고 여러분만의 감상을 가져가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듭니다. 이 시기의 레트로나 트렌드와는 상관없이 제3의 길을 걸은, 길 끝까지 다다른 음악을 느껴보세요.

😎2018년~2021년 :
미친 존재감의 재등장, '빅 뮤지션'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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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의 새 역사 방탄소년단
지난 아티클에서 말씀드렸다시피, 한국대중음악상의 수상기준은 상업성이 아닌 음악성이기에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인디 뮤지션들이 가장 많이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장이예요. 그런데 2018년도와 2019년도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악인 상을 2회 연속 수상한 뮤지션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적으로 모르면 간첩(?)일 만큼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방탄소년단이에요.



K-POP의 새 역사 2, 이날치
한편 2021년도 올해의 음악인 후보에는 방탄소년단을 비롯하여 선우정아, 백예린, 이해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과 최우수 포크 음반 및 노래 부문에서 3관왕을 달성한 정밀아 등 쟁쟁한 후보들이 경쟁했어요. 최종 수상은 '힙'한 판소리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모은 이날치가 수상했답니다. 이날치의 수상은 국악이 장르분야의 크로스오버 부문을 넘어 종합분야에서 수상한 첫 사례로 한국대중음악상사에도 무척 큰 의미가 있어요.

그렇기에 이날치에 관해서는 그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주목받은 국악과 함께 조금 길~게 다루려 합니다. 이날치가 작년 갑툭튀한 것 같지만, 사실 국악은 시대의 흐름에 부합하여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었거든요. 그럼 한국대중음악상과 함께 국악의 21세기사를 훑어 봅시다!


국악, 다시 한 번 국악이 될까?
2009년 한국대중음악상에 크로스오버 부문이 독립되면서 국악은 해당 부문에서 꾸준히 수상해 왔어요. 2009년도 수상작인 미연 & 박재천[DREAMS from the ANCESTOR]"한국 고유의 민속 장단을 바탕 삼아, 재즈와 현대클래식의 어법으로 작곡을 입히고 즉흥성을 가미해 연주해내어 ... 높은 독창성과 역사성을 선보였다"는 심사위원의 평을 들었어요. 대중적으로 크게 알려지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국악이 나아갈 길목에 서 있는 "문제작"이었다고 해요.

이후 2013년도에는 잠비나이[차연(Difference)]이 수상했어요. 잠비나이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폐회식 공연에 출연하며 대중들에게도 인지도를 높인 바 있죠. "록 음악을 바닥부터 다시 고민하던 포스트 록의 사고방식으로 국악기 사용의 새로운 장을 두드리"며 "음악 낯설게 보기를 통해 고착화된 음악을 뚫고 나가"는 시도로 심사위원들의 격찬을 받으며 수상했어요. 이미 서양악기에 비해 '낯선' 것이 되어버린 국악기의 음색을 '낯익은' 재즈나 클래식과 퓨전하는 것이 아니라 '낯선' 포스트 록과 퓨전하면서 국악기가 지닌 '낯선' 매력을 한층 더 이끌어내었어요. (낯선+낯선=띵작?!?)



2015년과 2018년에는 한승석&정재일이, 2017년과 2020년에는 블랙스트링이 각각 2회 크로스오버 부문에서 수상했어요. 한승석&정재일의 두 번째 수상작 [끝내 바다에]"그간의 국악 크로스오버가 이루어내지 못했던 가요적인 판소리, 대중음악적인 국악의 미래를 시사한다"는 평을 받았고, 블랙스트링의 두 번째 수상작 [karma]"명제, 명분에 휘둘리지 않고 넓게 서양음악의 틀을 상정해 둔 뒤 양자 음악이 가진 개성적 요소들을 담아내"었다고 하는데요.

두 음반의 상반된 심사평은 각자 수록하고 있는 곡들의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어요. [끝내 바다에]의 수록곡 제목들은 '그대를 생각하다 웃습니다' '새벽 편의점' '벗님가' 등 정답고 친근한 인상을 주는데, 다수의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내용으로 대중친화적인 음악을 만들고자 했을 거예요. 반면 [karma]의 수록곡 제목들은 '바빌론의 공중정원' '빛의 고도' '카르마' 등 추상적이고 낯선 이미지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karma]의 제작자들이 대중친화적이기보다는 작가주의적 관점에서 음악을 만들었으리라 추측할 수 있어요. 비슷한 시기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주거니 받거니 수상한 두 국악그룹의 존재는 국악의 스펙트럼이 그만큼 넓어졌음을 반증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날치의 시대가 왔어요. 이날치의 베이시스트이자 프로듀서인 장영규는 일찍이 민요와 모던 팝을 결합한 씽씽 활동을 하며 국악의 퓨전에 관하여 '낯선 것과 익숙한 것을 결합하는' 특별한 경험과 관점을 지니게 되었다고 해요. 이날치의 다른 멤버들 역시 소리극, 창극, 퓨전국악그룹 등 퓨전국악 활동을 활발히 해 왔고, 그 경험들이 모여 이날치에서 열매를 맺은 것이죠.

이날치의 음악적 특색 중 하나로 소리꾼들의 '떼창'을 들 수 있어요. 전통 판소리에서 소리꾼 한 명이 모든 소리를 담당한다면 이날치는 소리꾼 네 명이 때로는 따로 때로는 함께 소리를 담당해요. (여러 소리꾼이 함께 소리하는 것은 판소리를 극음악화한 창극이라는 장르에서도 보이는 특성이죠.) 전통 판소리에 비해 소리를 운용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고 볼 수 있어요. 이날치는 전통 판소리의 대목을 솔로로, 남자 소리꾼들끼리, 여자 소리꾼들끼리, 모든 소리꾼이 다같이 부르는 등 소리의 층을 때로는 얇게 때로는 두껍게 조절하여 신선한 음색적 경험을 청자에게 선사해요.



이러한 판소리의 새로운 음색을 현대 대중들에게 친근한 것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드럼과 두 대의 베이스, 그리고 신디사이저에 의해 조성되는 팝 사운드에요. 더하여 콘셉트에 어우러지는 의상과 앰비규어스 컴퍼니의 안무까지 시각적 요소들이 함께 맞물려져 이날치만의 '힙한 판소리'가 완성되죠. 이날치의 소리꾼 멤버 안이호는 스튜디오 허프 인터뷰에서 "흥선대원군, 고종 때 했던 판소리랑 정조 때 판소리랑 같은 판소리일까요? 아니란 말이죠. 지금 제가 그냥 즐기는 게 21세기의 판소리라고 생각해요. 갓 쓰고 도포 입고 하는 것도 21세기의 판소리고, 이날치를 이렇게 하는 것도 21세기의 판소리인 거죠."라 말했는데, 이날치의 판소리에 관한 가장 정확한 정의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서양음악이 유입되기 전 계층을 막론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향유하는 음악은 현재 '국악'이라 불리는 음악이었죠. 그러나 서양음악이 음악계의 주류를 장악한 이후 국악은 일반 대중으로부터 오랜 시간 배제되어 있었고 대중적 인기나 상업적 성공과는 먼 길을 걸었어요. 그리고 우리의 시대에 질문하고, 고민하고, 대답하는 치열한 노력을 거쳐 마침내 대중이 먼저 찾아 듣는 이날치의 음악까지 이르렀죠. 까마득한 세월 동안 우리의 대중음악이자 현대음악이었으나 오랜 시간 비인기음악이던 국악이, 이제 다시 자신의 이름에 걸맞게 우리의 음악으로 우뚝 설 수 있을까요?

우리는 핫하며 더욱 핫해질 것이다 2 - 일렉트로닉

이 시기 한국대중음악상 장르분야 일렉트로닉 부문에서 IDIOTAPE와 공중도둑이 저마다의 개성과 실력을 뽐내며 수상했어요. 둘 다 사이키델릭을 주요 요소로 삼고 있지만 그 전개방향이 사뭇 다른데요. IDIOTAPE는 2012년도 [11111101]에 이어 2018년도 [Dystopian]으로 두 번째 수상을 했어요. "전자 음악과 록의 퓨전이 얼마나 매력적일 수 있는지" "유행하는 음악의 충실한 구현이 아닌 독보적 개성의 심화"라는 심사위원의 호평을 받았어요.



2019년도 일렉트로닉 음반 부문에서 수상한 공중도둑 [무너지기]는 IDIOTAPE과는 다른 감수성으로 몽환적인 일렉트로닉 세계를 펼쳐요. "장르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자유롭게 음악 스펙트럼을 넓혀 쉽게 따라하기 힘든 파격적 신선함을 주조"하며, "장르의 경계선이 너무나도 얇아진 21세기 음악 문법의 장점을 백분 활용함과 동시에 형식에 옭매였던 팝의 구조에도 환기를 던"지는 "문제작"이라고 합니다.

부록 1 : 한국대중음악상의 눈 👁 사회참여에 대한 관심
모든 시기를 통틀어 한국대중음악상이 지니는 특징 중 하나로 사회참여 음악을 꾸준히 조명하는 것이 있어요. 2014년도 올해의 음반 및 최우수 모던록 음반 부문 수상작인 윤영배의 [위험한 세계]는 첫 번째 트랙부터 '자본주의'라는 제목을 달고 "몇몇 사람의 난폭한 결정" "틈틈이 틈내 입을 맞추는 비밀주의 기회주의" 등 자본주의의 모순과 한계를 직설적으로 비판하죠. '선언'이라는 노래에서도 '나는 비매품이라 나를 팔지는 않아'라 말하며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화하여 자본가에게 팔아야만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자본주의의 현실을 꼬집어요. '점거'에서는 점거농성 중인 화자의 입장에서 느끼는 감정을 풀어내며 세상의 사각지대, 감추어진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존재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요.



2020년도 최우수 재즈 음반에 선정된 김오키의 [스피릿 선발대] 역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면으로부터 만들어진 작품이에요. '실직폐업이혼부채자살 휴게실'에서는 흐르는 재즈 연주 위에 한 사람의 생이 파노라마쳐럼 펼쳐져요. 어렵게 어렵게 취직을 하고 결혼을 했다가 실직하여 치킨집을 차리지만 손님이 없어 빚을 잔뜩 남긴 채 폐업하고, 가정마저 유지하지 못하여 이혼하고, 마침내는 자살에 이르는 한 인간의 생, 결코 남의 이야기라 치부할 수 없을 생이.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에서는 캄보디아의 한국계 기업을 향해 현지 노동자들이 벌인 최저임금 인상 시위가 총까지 동원한 무력으로 진압된 실화를 담았고요. 잔잔한 재즈 연주 위에 잔잔하게 읊조려지는 이야기, 우리 시대의 기록이 씁쓸한 뒷맛을 남겨요.



노동운동이 활발하던 1980년대만 해도 당대의 사회참여 음악이었던 민중가요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불리웠죠. 하지만 민주화 이후 노동세력이 쇠락하고 자본주의가 경쟁자 없는 유일한 체제로 자리매김하면서, 보이지 않는 것들은 더욱 보이지 않게 되고 사회참여 음악들은 일반 대중과 더욱 괴리되었어요.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사회참여 음악을 꾸준히 노미네이트하고 수상하는 것을 통해 그 괴리가 조금은 해소되기를, 보이지 않는 것들을 조금 더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라봅니다.


부록 2 : 한국대중음악상의 의의와 한계 🤷‍♀️
지금까지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수상한 음악을 중심으로 21세기 한국대중음악의 행보를 살펴보았어요. 아티클에서 다룬 음악보다 다루지 못한 음악이 훨씬 많기에 부족함도 아쉬움도 많지만, 뮤지터 여러분들께서 한국대중음악의 숨겨진 보석 같은 음악들과 흐름을 보시는 데 약간이나마 도움이 되었다면 좋겠습니다.

한국대중음악상의 의의는 역시 음악성을 시상 기준으로 하여 음악적으로 뛰어나지만 상업적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지 못하는 음악들을 조명하는 데 있을 것이예요. 음악의 장르를 세분하여 장르별로 시상함으로써 비주류 장르음악에도 주목하고 있고요. 눈앞에 바로 보이지는 않고 찾아 들어야 하는 이런 음악들을 짚어주는 점만으로도 뮤지션들에게는 힘이 되고 듣는이에게는 좋은 청취 리스트가 되어주는 것 같습니다. 잘 들리지 않는 것을 들리게끔 하는 것이 한국대중음악상의 힘이 아닐까 합니다.

다만 저번 아티클에서도 언급했듯, 트로트와 같이 우리나라에 한해서만이지만 명확히 자신의 지분을 지니고 있는 장르에 대한 시상이 없는 점, 음악성만을 시상 기준으로 한다기에는 상업적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은 작품에 대한 시상 비율이 상당하다는 점이 아쉬워요. 물론 상업성 대중성과 음악성이 서로 대립하고 배척하는 가치는 아니지만요. "좋은 음반을 내놓고도 썩힐 수밖에 없었던 많은 뮤지션들을 위하는" 한국대중음악상의 설립 취지를 생각한다면 무게중심을 조금 더 명확하게 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부록 3 : 한국대중음악의 갬성? 트렌드? 미래? 😵
그렇다면 한국대중음악의 '갬성' '트렌드' '미래'는 무엇일까요? 가장 먼저 '트렌드'를 이야기해 보자면, Estel은 음색의 다양하고 신선한 표현을 꼽고 싶어요. 앞서 Estel 용어사전에서 '음색깡패' '편곡연출'을 통해 말씀드린 것처럼, 요즘의 대중음악에서는 다양한 사운드, 사운드의 실험적 조합, 극적인 장면 연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요. 신디사이저와 코러스, 이펙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똑같은 verse인데도 해당 부분의 반주를 전혀 다르게 연출한다던가 한 section에서 다음으로 넘어갈 때의 연결을 극적으로 처리하는 등 하나의 노래 속에 존재하는 요소들을 어떻게 "더 다양하게, 더 신선하게" 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죠.

다음으로 '갬성'에 관해서는, 사실 이렇게도 넓고 깊은 음악세계의 감수성을 몇 가지로 좁혀서 이야기하는 것 자체에 어폐가 있지만, 가장 지배적인 감성을 꼽는다면 역시 서정이 아닐까 해요. 한국대중음악상을 통해 살펴본 바 첫 번째 시기에 인기를 끌었던 록발라드, 세 번째 시기로부터 이어지는 트렌디한 감성들을 파헤쳐서 다다르는 곳은 결국 시적이고 따스한 서정이니까요. 서정과 함께 해학 역시 중요한 감성이라 생각해요. 두 번째 시기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에서 느껴지는 유쾌한 자조, 이날치의 노래에서 느껴지는 판소리 특유의 해학적 정서가 대표적 예시가 될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