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거진이 만난 사람들

음악을 사랑하는 자, 필로무지크 드러머 곽지웅의 음악세계

연주하는 창작자, 창작하는 연주자의 음악인생

3년 전|Estel


드러머 곽지웅

서울재즈아카데미 드럼 전공
동아방송예술대학교 실용음악과 졸업

뉴올리언즈 재즈 밴드 Lush Life 드러머
살자재즈 빅밴드 Cobana 드러머
즈윙 재즈 밴드 Golden Swing Band 드러머
블루스락밴드 김마스타 트리오 드러머
현재 Enigmata 밴드 리더, 드러머​

그 외 20년간 1000여회 라이브 세션, 60여개 음반 녹음 참여

Editor's Comment

코로나 시대, 뮤지션들에게는 특히나 가혹합니다.
음악하기 어려운 이 시절에도 뜨겁게 음악의 혼을 불태우고 계신 곽지웅 드러머님을 만났습니다.
드러머님의 활동기를 들으며 제 자신도 음악하는 마음을 되돌아보고 용기를 얻을 수 있었는데요.
뮤지터 여러분, 함께 만나보러 가시죠!

목차

1. 스타트라인
2. 드럼 연주의 이모저모
3. 연주로부터 창작을, 창작으로부터 연주를
4. 에니그마타
5. 음악을 업으로 한다는 것

1. 스타트라인

드러머로서 오랜 시간 꾸준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세요. 처음으로 드럼을 접하고, 드러머를 직업으로 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다니던 고등학교의 밴드 동아리에서 처음으로 악기를 직접 쳐 보았어요. 그때에는 드럼이 아니라 기타였죠. 대학은 음악 아닌 공부하는 전공으로 진학했는데, 너무 재미가 없어서 방황했어요. 음악하면 인생 망한다고들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하지만, 저는 그때 이미 인생이 망하고 있는 느낌이었어요. 고등학교 시절 같은 동아리에서 함께 연주했던 친구를 만나 술을 마시는데, 친구가 "인생 이렇게 허비할 바에야 하고 싶은 음악이나 하자, 망할 바에는 음악이나 해보자"고 하더라고요.

친구가 저한테 “기타보다는 드럼이 잘 어울린다”고 말해주었죠. 그 말을 듣고 두말없이 “알겠어, 내일부터 드럼 쳐 볼게” 그렇게 대답하고 드럼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그렇게 말했던 이유가, 친구와 저 둘 다 동아리에서 기타를 쳤는데 같이 기타를 치면 장차 포지션을 두고 경쟁하게 될 테니 일찌감치 저를 드럼으로 보낸 거라 하더라고요. ☺️

서울재즈아카데미에서 스틱 쥐는 법부터 배우며 드럼을 시작했어요. 입시를 거치지 않고 바로 드럼을 배우고 음악을 할 수 있는 곳이라는 소문을 듣고 갔는데, 가보니까 실력자들이 너무 많아서 주눅이 들었죠. 그래도 정말 좋은 곳이었어요. 아카데미에서 학생으로 드럼을 배웠고, 군악대에 다녀온 뒤에는 조교와 강사로 가르치는 일을 했어요. 그때 선배들과 계속 음악을 하고 있고요. 이래저래 인연이 길었고 저에게는 음악적인 고향입니다.

2. 드럼 연주의 이모저모

드럼 연주라고 하면 보통은 밴드 구성을 떠올리게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밴드도 장르에 따라 악기 편성이 많이 달라질 텐데, 그때마다 드럼의 역할 내지는 특히 신경 써야 하는 점들이 달라지나요?

제 관점에서는 록밴드의 경우 드럼의 역할이 군악대와 비슷해요. 군악대의 원래 역할이 전쟁할 때 신호를 주는 거잖아요. 요새는 통신 수단이 발달했으니 그럴 일은 없지만. 진군할 때 오른쪽으로 가라 왼쪽으로 가라 신호를 주고, 흥분시켜서 물불 안 가리고 적을 향해 달리게 하고... 전쟁에 나가는 전사들을 흥분시키는 파괴적인 느낌으로 드럼을 쳐요. “다 죽이겠어!” 😎 다른 말로는 밴드에 에너지를 만들어 준다고 할 수 있겠네요. 같이 연주하는 사람들과 공연장에 있는 사람들을 날뛰게 만드는 소리로요.

재즈밴드의 경우에는 역할이 많이 달라져요. 재즈에서는 모든 악기가 모든 역할을 해요. 피아노가 드럼이 되고, 드럼은 피아노나 관악기가 되고. 보컬도 타악기나 관악기가 되고... 이런 역할을 순간순간 경우와 필요에 따라 직관적으로 바로바로 연출을 하고 생각을 하고 소리를 내는 게 재즈 뮤지션의 Improvisation이죠. 재즈 밴드에서 드럼의 역할은, 단순히 리듬만 치는 걸 떠나서 같이 멜로디를 쳐 주고, 심벌이나 브러시 등으로 곡에 필요한 장면과 색채를 연출해 주고, 다른 악기들과 인터플레이를 하는 것 같아요. 록밴드할 때와는 악기가 아예 다른 느낌이죠.


드러머를 지망하는 독자들이 드러머님의 인터뷰를 많이 읽을 텐데, 장르와 편성을 막론하고 드럼 연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면 무엇이 있을까요?

상황에 따라서 많이 다르긴 한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템포와 에너지인 것 같아요. 템포는 드러머에게 정말, 정말 민감한 문제예요. 영화 <위플래쉬>에서 템포 때문에 학생을 다그치며 물건을 집어던지는 선생은 현실에서야 소송을 당하겠지만, 그 장면에서 느껴지는 드러머의 긴장감은 정말로 현실적이에요. 얻어맞는 정도의 압박감으로 템포 문제를 느낍니다.

한편으로는 난감한 것이, 사실 밴드의 리듬이라는 게 드러머 혼자서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베이스나 기타와 함께 리듬을 치며 가다 보면 같이 어깨동무하고 달려가는 느낌이라, 한명이 처지거나 빨라지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어요. 그걸 무시하면 앙상블이 깨지고요. 그런 이유들로 인해서 밴드 전체 템포가 변하기 쉬운데, 보통 모든 책임이 드러머에게 돌아가죠.

메트로놈을 듣고 하는 게 속 편하기는 한데, 메트로놈을 들으면 에너지가 흩어지는 느낌이 들어서 또 문제예요. 같이 달려야 하는데 누가 나를 붙잡고 앞서 끌어가거나 뒤에서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거든요. 순간의, 공간의 분위기와 에너지에 따라 자연스럽게 템포가 변하는 게 가장 좋은 연주 같아요. 그런데 사고가 날 확률이 높죠. (웃음) 보컬이나 댄서 입장에서는 템포의 변화가 커지면 퍼포먼스 자체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하는 것 같아요.

어려운 곡을 치거나 무거운 분위기에서 연주를 하면, 분명 맞는 템포에 맞는 연주인데 뭔가 기분이 안 날 때가 있어요. 그런 경우 흔히 왜 그렇게 의기소침하게 연주하냐, 에너지가 있어야지, 그래야 밴드들이 같이 춤을 추지, 그렇게 이야기하죠. 신나게 연주하는 곡뿐만 아니라, 조용하고 느린 곡에서 나오는 감성을 표현하는 것도 에너지라 할 수 있어요.

또 연주 외적인 의미에서의 에너지도 있죠. 무대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다른 파트를 듣고 기다릴 때, 연주를 듣지 않고 핸드폰을 보거나 흐트러진 자세로 있으면 관객 입장에서도 보기 싫고 실제로도 음악의 흐름을 타기가 어려워져요. 내가 연주하지 않는 순간에도 집중해서 에너지를 유지해야 하죠. 어떻게 보면 템포와 테크닉보다도 중요한 부분일 수 있기 때문에 늘 에너지를 염두에 두고 연주합니다.



이번에는 녹음으로 초점을 돌리고 싶어요. 라이브 연주와 함께 녹음 활동도 매우 활발하게 하고 계신데, 연주와 녹음, 이 두 가지가 연주자에게 어떻게 다른가요?

집중하는 방향에 차이가 있어요. 라이브 연주는 관객들이나 같이 연주하는 동료들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나가는 거라서, 주위 반응이나 소리에 민감하게 함께 반응하고 같이 만드는 느낌에 집중해요. 스튜디오 녹음의 경우, 제가 지금 치는 연주가 믹싱이나 마스터링 등 후반작업에서 어떻게 가공될지, 곡의 앞부분과 뒷부분의 소리 차이가 크지 않고 일관성이 있는지, 작곡가나 프로듀서의 의도에 맞는지를 주로 생각합니다.


녹음을 하실 때 드러머로서 가장 중요시하고 공을 들이는 지점이 무엇인가요?

결국에는 톤이 가장 중요해요. 집중해서 곡을 잘 분석하고, 원곡자나 프로듀서와 많이 이야기를 하고 들어가야 하죠. 그리고 녹음을 할 때마다 사운드를 잡는 사운드체크 시간이 있어요. 이때 드럼을 어떻게 튜닝하느냐, 엔지니어가 어떻게 소리를 잡느냐, 그런 것들에 따라서 결과가 많이 달라집니다.
물론 믹싱 마스터링에서 소리가 많이 달라지지만, 소리가 애초에 지니는 캐릭터-성격이라는 것을 믹싱 마스터링에서 바꾸려 하면 할수록 결과가 부자연스러워지거든요. 녹음할 때 엔지니어, 원곡자, 프로듀서, 드러머가 함께 의사소통하면서 톤을 잡는 게 제일 좋습니다.


드러머로서 가장 뿌듯하게 생각하시는 녹음 작업 소개 부탁드립니다.

싱어송라이터 황경은의 EP앨범 <안녕히>를 들고 싶어요. 2년쯤 전부터 스스로의 드럼 연주 주법이나 톤 만드는 방법과 관련하여 제 드럼 스타일을 바꾸려고 여러 가지를 시도 중이었어요. 그런 시도들이 어느 정도 결실을 본 앨범인 것 같아요. 곡마다 의도를 갖고 드럼 소리를 다르게 튜닝했고, 합주와 편곡 과정에서 옛날과는 좀 다른 관점으로 드럼 소리와 연주를 만들었어요. 이게 원곡자에게 좋게 다가가는 게 제일 중요한데, 좋아해주신 것 같습니다. (웃음)

수록곡 중 <세레나데>라는 곡의 경우 드럼이 화려하거나 귀에 딱 꽂히는 느낌보다, 뒤에서 조금은 느긋하고 풍성한 느낌으로 치는 게 좋겠다 싶었어요. 위아래 깊이가 깊어서 소리가 어둡고 중저음이 강조되는 스네어를 사용했죠. 탐탐들에도 수건을 다 덮어씌워서 "통통" 보다는 "텅텅"하는 멍청한 소리를 만드는 방향으로 머플링을 했어요 (머플링: 천이나 테이프를 붙여 필요없는 소리를 막는 작업). 비틀즈 시대 흔히 쓰던 영국 사운드의 일종인데, 그런 식으로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을 만들어보려고 시도했죠.


3. 연주로부터 창작을, 창작으로부터 연주를

지금까지 드러머로서 여러 세션 활동 작업 이야기를 들어보았어요. 그런데 세션으로만이 아니라 창작자로서도 작업하고 계시다고요. 처음 창작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말씀해주세요.

작곡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드럼을 시작할 때부터 갖고 있었어요. 드럼 쪽으로 연습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뒷전으로 미뤄두고 있었죠.

그러다 친구들과 팀 활동을 하는데, 재즈 스탠다드 곡만 하려니까 재미도 없고, 신인밴드가 남들 다 하는 음악을 해봤자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기발한 방법까지는 몰라도 최소한 우리 곡으로 해야 의미가 있지 않을까? 마음속에 점점 갈증이 생겼어요. 그래서 두 마디라도 멜로디 한 번 써보고, 거기서 발전해서 좀 더 써보고 다른 곡도 써보고 주변에 들려주고, 그렇게 하게 되었어요.

또 드럼 같은 경우 다른 악기나 다른 사람의 음악을 반주하는 역할이 크잖아요. 남의 음악을 계속 반주하다 보니 남의 음악에서 자꾸 내가 치고 싶은 드럼 연주를, 자아실현하려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어요. 차라리 남의 음악 할 때에는 남의 음악에 철저히 잘 맞추고, 내가 직접 곡을 써서 내가 하고 싶은 사운드를 만드는 게 옳다고 생각했어요. 그것도 작곡을 시작한 이유입니다.


처음으로 창작하여 작업하신 곡으로 Collor의 <나비>가 있죠. 소개 부탁드려요.

처음으로 작곡과 작사를 했고, 혼자 주도해서 발매까지 마친 음원이에요. 이 작업을 하고 나서 시각이 많이 달라졌어요. 작사 작곡 프로듀싱 전반에 걸친 일을 주도하고 나니까 시야가 넓어졌죠. 이후로도 드럼 세션과 병행해서 제 작품을, 느리지만 꾸준히 만들게 되는 계기가 되어서 의미가 큽니다.

드럼 연주만 봤을 때에도 다른 데서는 시도하기 어려운 드럼 튜닝을 했어요. 드럼을 직접 보신 분이라면 상상하실 수 있을 텐데, 드럼통이 있으면 때리는 피(면)이 위아래로 달려 있어요. 그런데 <나비>를 연주할 때는 탐탐과 베이스드럼의 아랫면을 없애고 아래가 뚫리게 한 채로 연주했어요. 이게 1970년대 디스코 등에서 많이 쓰인 방법이에요. 요즘은 이렇게 연주하는 경우가 결코 흔하지는 않죠. 하지만 어차피 내가 만드는 곡이니 내 맘대로 해보자 해서 그렇게 소리를 처음 만들어 보았는데 결과물이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사람에 따라서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아주 재미있었고 좋았습니다.




만드는 과정에서는 너무 힘들었어요. 멜로디도 이상하고 가사도 오글거리고... 남의 음악을 듣고 해석하는 것과 내 안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내서 멜로디와 리듬을 생각해내는 게 아예 다른 작업이더라고요. 창작에는 제한이 없으니 이것도 나쁘지 않고 저것도 나쁘지 않고, 즉 이래도 이상한 거 같고 저래도 이상한 거 같고... 😅 선택지를 좁혀나가는 과정이 필요한데 그게 너무 어려웠어요. 뭘 해도 이상하니 이랬다 저랬다 하느라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갔어요. 창작의 고통이라는 게 그런 데서 나오는 말이라는 걸 깨달았죠.

결국 동료들이 옆에서 이래저래 정리해주며 작업이 진행되었는데, 신기한 것이, 내가 이상하다고 주눅들어 있는 것을 막상 동료들이 연주해주고 소리를 내 주면 나쁘지 않았어요. 나쁘지 않다는 느낌에 스스로 놀랐고요. 작업을 하나씩 진행해 가다 보니 어느덧 완성된 음원이 나왔어요. 결과물을 듣고 있으면 그 결과물을 위해 많이 힘써준 동료들이 생각나요. 동료들과 함께 만들어냈다는, 함께 하는 과정이 뭐든 다 좋았어요. 같이 노는 거죠, 사실.


연주자와 창작자, 같은 뮤지션일지라도 하는 일이 다른 만큼 음악을 바라보는 관점도 다를 것 같아요. 연주자일 때의 곽지웅과 창작자일 때의 곽지웅은 음악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떻게 다른가요?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아요. 아주 조금 달라졌는데, 달라진 그 조그마한 부분이 핵심인 것 같아요. 작곡가나 제작자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고충이 어떤지 대충은 알고 있었는데, 직접 해 보니까, 깊숙하게 관여를 해 보니까 이게 진짜 힘든 일이구나 알게 되었죠. 또 작업을 함께 했던 동료들이 참 좋은 사람들이라서, 제가 우왕좌왕 헤맬 때 옆에서 많이 제시해 주고 이끌어 주었어요. 그런데 나는 과거에 세션으로서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지 않았나, 까칠한 적도 있지 않았나, 그런 것도 떠오르더라고요.

남의 음악을 연주할 때, 아무리 사전에 편곡을 잘해놓고 악보를 잘 만들어도 레코딩을 하러 오면 돌발상황이 생겨요. 악보가 아무리 충실해도 완벽하게 충분하지 않은 약속이고, 더 좋은 아이디어가 순간순간 떠오를 수도 있어요. 그런 상황을 적극적으로 잘 받아들이면서 원곡자가 창작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게 좋은 드러머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드럼 연주자로서 뒤에서 신나게 놀아주고, 나아가 작곡자가 편하게 아이디어 내고 할 수 있도록 맞장구쳐주고 재미있어해주자. 자기 음악이 좋게 느껴지도록 드럼도 치고 아이디어도 내고 그렇게 같이 놀아야겠다. 원곡자의 음악을 지지해주고 더 좋은 결과가 나오도록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거죠.

덧붙여 보컬 분들이 노래를 부르는 관점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어요. 그전에는 "발성을 저렇게 하네, 리듬을 저렇게 하네" 이런 식으로만 생각했는데, "노래 가사가 저러니까 저런 분위기를 담아서 노래를 부르는구나, 그러면 나는 뒤에서 이런 식으로 느낌을 만들면 곡이 더 좋아지겠다" 그렇게 관점이 넓어졌어요. 창작을 하면서 연주에 대한 깨달음을 많이 얻었네요. (웃음)

4. 에니그마타(ENIGMATA)

최근에는 직접 밴드 에니그마타를 결성하셨다고요. 에니그마타와 그 작업들 소개 부탁드려요.

에니그마타는 베이스 김진규 / 건반 조우재 / 드럼 곽지웅 으로 이루어진 트리오 밴드예요. 인디 뮤지션 버둥이라는 분과 연주를 하면서 만난 친구들이죠. 음악적인 성향이나 창조적인 영감, 이런 것들이 너무 잘 맞는다고 생각해서 딴집살림을 차렸어요. (웃음) 다들 연주에 능수능란하고 믹싱과 편곡 모두 다 잘하죠. 무엇보다도 이 두 사람과 함께라면 대중적으로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멜로디 그리고 내가 언제나 만들고 싶었던 웅장한 리듬, 그 두 가지를 조화롭게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좌충우돌하면서 열심히 헤매고 있어요. 하나하나 곡이 잘 나오고 있고, 다른 두 사람도 워낙 열심히 해주어서 같이 하면서 행복합니다.

작년 9월에 첫 공연을 했고, 지금은 싱글 음원으로 를 제작 중이에요. 는 제가 독일의 쾰른 대성당을 직접 보고, 그 웅장한 모습과 세밀한 조각들에 대한 감탄을 담아서 떠올린 아이디어를 밴드에서 함께 디벨롭했어요. 무척 거대한데 계속 확대할수록 세밀한 무언가가 나타나는 의미에서 제목을 지었고요. 는 한밤중 아무도 없는 고속도로를 혼자 운전하며 떠오른 감상을 저와 김진규 씨가 함께 작곡했죠. 올해 상반기 안에 발매될 예정이에요.

밴드 에니그마타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창작자가 따로 있고 소통하며 작업을 하는 세션 활동과, 창작과 편곡과 연주를 병행하는 에니그마타 활동은 작업방식에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에니그마타에서는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어떤가요?

에니그마타에 있는 조우재 김진규 둘 다 악보에 얽매이지 않고 음악하는 스타일이에요. 아이디어가 있으면 악보로 구체적으로 정리하기보다는 일단 셋이 모였을 때 아이디어를 들려주고 살을 붙이고, 밥 먹거나 메신저로 얘기하면서 또 아이디어가 오가고, 나중에는 아이디어가 너무 많아져서 좀 잘라내기도 하고, 집단 창작같은 느낌으로 작업해요.

드러머로서 제가 느끼기에 제일 좋은 점은, 김진규나 조우재나 이 밴드에서 드럼 연주에 관여를 많이 해요. 그 아이디어들이 나 혼자서는 절대 생각해내지 않을 만한 아이디어들이죠. 일단은 뭐 이런 걸 다 시키나 난감하면서도, 막상 소리를 내 보면 너무 좋고 너무 재미있어요. 드러머들이 생각해내기 어려운 걸 생각해내주니까 드러머로서 감사할 일이죠. 드럼 레슨을 받는 셈이에요. (웃음)

의견이 부딪칠 때도 있어요. 서로 말을 하면 듣는 척은 하는데, 다음날 보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 있어요. (웃음) 다시 들어보니 문제 없어서 분쟁이 해결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으면 계속 말하고... 지금 그러는 상태예요. 분쟁을 피하기보다는 계속 얘기하며 의견을 조율할 수 있는 나름의 방법을 찾는 중이죠. 셋이 있으면 남들과는 다른 재미있는 음악이 만들어질 거라는 확신이 셋 모두에게 있으니까.


5. 음악을 업으로 한다는 것

이번에는 개인적인 질문으로 화제를 돌리고 싶어요. 음악을 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많은 것을 감내하고 인내할 각오를 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뮤지션으로 사시면서 힘든 시기가 있으셨는지?

경제적으로는 그렇게 행복한 적은 없었지만, 동료들과 함께 무엇을 만들어나가는 기쁨이 커서 그걸로 버티고 계속 살아온 것 같아요. 그런데 코로나로 일이 너무 없다 보니, 요새는 정말로 난감하긴 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결국에는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며 기다리는 상태예요.

육체적으로 제일 힘들었던 경우는, 코바나(COBANA)라는 라틴빅밴드를 할 때였어요. 정정배 선생님께서 운영하시는 팀인데, 맘보나 살사 같은 쿠바 음악을 전문적으로 해요. 밴드 규모가 굉장히 크고 쌓아온 곡들이 많다 보니, 처음 그 밴드 들어갔을 때 1년 연습해도 어려운 곡들을 한 달 안에 공연해야 하는 상황이 닥쳤어요. 음악 때려치고 잠적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너무 힘들었죠. 그래도 어찌어찌 연습과 공연을 하며 시간이 지나니까 그쪽 스타일로는 나름 잘하는 드러머가 되었어요.

사실 그렇게 힘들었던 건 없었던 것 같아요. 물론 스스로의 연주에 짜증이 나는 건 하도 일상이라서. (웃음)


아 너무 힘들다, 음악 때려치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 있으신가요? 그랬다면, 그럼에도 드러머를 계속 하도록 지지해준 힘, 원동력이 무엇인가요?

뮤지션들이 자기 음악을 관두는 많은 경우가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에요. 저는 다행히 운이 좋아서 주위 많은 선후배들이 많이 찾아주고 그래서 일할 기회가 많다 보니 경제적으로는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었어요. 돈을 잘 버는 건 아니지만요.

더 중요한 이유는 연습할수록 연주가 점점 좋아진다는 발전의 재미예요. 지금도 스스로 제 연주가 짜증나지만, 그래도 하루 몇 시간 연습하고 일주일 연습하고 한 달 연습하고 나면 옛날보다는 조금 잘 되고 조금 소리가 좋아지거든요. 이게 참 사소한데 이 재미 때문에 음악을 못 관두겠어요. 막연히 앞으로 나아지겠지 이게 아니라, 하루하루 실력이 좋아지는 게 몸으로 느껴지니까 재미있거든요.

주변인의 위로와 힘도 컸어요. 그런 게 없었다면 진작 때려쳤을 것 같아요. 유학 대신 늦은 나이에 음대에 입학했는데, 거기서 오종대 교수님께 자기 긍정이라는 가르침을 받았어요. 처음 입학했을 때만 해도 나는 못하는 게 너무 많고, 나는 너무 거지같고 나는 좀 부끄러워 해야 한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그렇지만 이 세상에서 완벽하게 연주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자기 자신이 제일 잘할 수 있는 걸, 제일 빛날 수 있는 걸 무대에서 하는 게 좋고, 그렇게 하면 자기 스스로 위대해진다... 그런 말씀을 해주셨죠. 음악적으로 아버지 같은 분이에요.



드럼은 어떤 악기라고 생각하시나요? 드럼을 연주한다는 것 그리고 음악을 창작한다는 것은 드러머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드럼은 저한테 놀이터예요. 어렸을 때에도 그렇고 지금도 남들과 노는 거 싫어하고 안 즐기는 성격이에요. 그런데 드럼을 칠 때에는 제가 연주하는 비트에 연주자들이 신나하면서 연주하고 관객들도 신나하고 재미있어하는 게 제게 큰 위안을 줘요. 제가 하는 일에 사람들이 춤추고 좋아해주니, 고맙고 행복하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혼자서 아무렇게나 질러대고 갖다 버리고 이런 게 아닌 이상, 이 세상에 자기 혼자 하는 음악이란 없어요. 동료들과 계속 협업할 수밖에 없죠. 같이 작업을 하다 보니 책임이 따라요. 지나치게 동료들 눈치를 보고 그러지는 않지만, 동료들이 이렇게 힘써서 나를 도와주는 만큼 내 작업이 이 사람들에게 좋은 경력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생각해요.


드러머로서 그리고 창작자로서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옛날부터 일본 애니메이션 음악, 대표적으로 지브리의 히사이시 조 음악을 좋아해왔어요. 멜로디로는 그런 감성을 표현하고 싶어요. 그러면서 멜로디를 받쳐주는 리듬은 원시적인 느낌을 추구하고 있어요. 아프리카 쪽에서 전해지는 토속적 리듬일 수도 있고, 동남아 쪽에서 여러 사람이 타악기 두들기는 느낌일 수도 있고... 구체적으로 어떤 사운드냐, 리듬이냐, 이건 또 곡을 쓰면서 워낙 많이 달라지다 보니 특정지으려 하지는 않고, 상상력의 방향을 그쪽으로 하면서 찾아내는 중이에요.

얼마 전 아프리카에서 굉장한 실력자이신 아미두 라는 분과 함께 잼 세션을 했어요. 그분 옆에서 연주를 하는데, 제가 스틱으로 치는 드럼 소리보다 그분이 손으로 치는 젬베 소리가 더 크더라고요. 무슨 총소리가 나는데... (웃음) 그런 밀도 있는 소리들로 이뤄진 리듬을 옆에서 체험해보니까, 이쪽으로 앙상블을 편성해서 이런 사람들과 함께 밀도 있는 원시적인 리듬을 만들어보고 싶어졌어요.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해 보고 싶어요.


2021년 새해가 밝았어요. 올 한 해의 목표와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최근 몇 년 동안 드럼 스타일을 바꾸고 싶어서 이런저런 시도를 많이 하고 있어요. 마침 주위에 굉장히 멋진 나이 어린 후배님들이 많이 계세요. 에니그마타도 그렇고, 이영찬이라는 친구와도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있어요. 어린 친구들에게 많이 배우며 더 이상하고 더 과감하고 더 멋진 음악적인 시도를 하면서 살아갈 생각이에요.


드러머를 지망하는 후배 독자님들께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시기가 워낙 어렵다 보니, 행복하게 음악하라는 말을 하기가 쉽지 않네요. 그렇지만 어차피 판검사가 아니라 드럼을 하겠다면, 예술가로서 자기 자신의 행복을 느끼며 살겠다고 스스로 다짐한 거예요.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가 있을지 몰라도, 동료들과 함께 음악을 만들고 자기 자신을 발전시켜나가는 기쁨은 여러분 상상보다도 훨씬 크다고 생각해요. 음악에 이끌리고 드럼에 이끌린 자신을 믿으시고, 선생님이나 교재에 지나치게 끌려다니지는 말고, 자기 자신이 내고 싶은 소리를 찾아서 재미있게 해 보세요. 그러면 분명 여러 가지 좋은 일이 생깁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최근 블로그를 열심히 하고 있어요. 네이버에서 곽지웅 아니면 파도드럼을 검색하면 나옵니다. 제 드럼 영상과 발매작 등의 소식을 계속 업데이트하고 있으니 많이 찾아 주세요. 그리고 밴드 에니그마타 많이 관심 가져주시고 기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안녕히>도 많이 들어주세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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