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대넓얕

조율에도 종류가 있다?

의외로 긴 조율의 역사

2년 전|Estel

오늘은 "음 속의 음, 미분음을 탐험하자" 아티클에서 예고했던 대로 조율의 역사를 탐구해보려 해요. 미분음 아티클을 아직 읽지 않으셨다고요? 걱정 말아요, 지금 읽고 오면 되니까요 😁

다 읽고 오셨으면, 가볍게 질문 하나!
바이올린은 왜 5도 간격으로 조율을 할까요?

Warm-up : 바이올린은 왜 5도 간격으로 조율을 할까?

stringtune

음악이 시작되기 이전의 음악, 첫 소리, 조율의 시간.

청중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연주자들이 무대에 등장합니다. 오늘 연주할 곡은 베토벤의 현악4중주 16번. 자리에 앉아 악보를 정리하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연주자들은 연주를 시작하기 전 악기의 조율 상태를 점검 하는군요. 무궁무진한 음악의 세계를 펼칠 단 네 개의 현은 어떤 음으로 조율될까요?

stringstune

현악기의 조율

모든 악기가 완전5도 간격으로 조율되고 있네요. 6도도 아니고 7도도 아니고...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목차
Warm-up : 바이올린은 왜 5도 간격으로 조율을 할까?
1. 가장 수학적인 것이 가장 음악적인 것이다, 피타고라스 음률
2.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도 짙어지는 법, 순정률
3.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조절음률
4. 민주주의의 승리, 평균율

1. 가장 수학적인 것이 가장 음악적인 것이다, 피타고라스 음률

서구 문화의 역사를 연어처럼🐟 거슬러 올라가면 헬레니즘 Hellenism헤브라이즘 Hebraism이 있다고 해요. 헬레니즘은 고대 그리스의 문화와 사상을, 헤브라이즘은 유대교에서 비롯된 기독교를 일컫는 말이에요.

유럽 문화의 두 기둥,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조율의 역사는 헬레니즘 즉 고대 그리스에 그 기원을 두고 있어요.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데모크리토스, 엠페도클레스... 고대 그리스의 기라성같은 '스'자 항렬 학자들 기억나시나요? 우리나라 역사의 신새벽에 단군왕검이 있듯이 유럽 음악 조율의 역사의 첫머리에는 피타고라스가 있답니다.

pythagoras

피타고라스가 조금만 덜 천재였다면 21세기의 수포자들은 훨씬 적었을 텐데...

피타고라스가 고안한 조율 체계를 피타고라스 음률이라고 해요. (기자톤) 피타고라스 음률이 무엇인지 육하원칙으로 알아보겠습니다.

  • 언제? 기원전 580년~490년 사이에
  • 어디서?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도시) 이오니아에서
  • 누가? 피타고라스가
  • 무엇을? 피타고라스 음률을
  • 어떻게? 순정 5도 Just Fifth를 반복하여 겹쳐서
  • 왜? 만물의 근원은 수이며 음의 협화 역시 가장 간단한 수의 비례로 설명할 수 있으니까
    (피타고라스특 : 매스버스 mathverse)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 G현에서 1/2 지점을 짚고 소리를 내면 한 옥타브 높은 G음이 나죠? 현의 길이의 비율에 따라 음높이가 달라지는 것인데, 피타고라스는 바로 이 원리를 이용하여 조율했어요. 특정 길이의 현에서 원래 나는 음보다 한 옥타브 높은 음을 내려면 현의 길이가 절반으로 짧아지면 됩니다. 즉 다음의 비례 관계가 성립하죠.

특정 음 a를 내는 현의 길이 : 특정 음 a보다 한 옥타브 높은 음을 내는 현의 길이 = 2:1

순정 5도 Just Fifth란 무엇일까요? 옥타브의 경우처럼 5도 역시 간단한 정수비에 의해 표현된다는 것이 피타고라스의 생각이었습니다.

특정 음 a를 내는 현의 길이 : 특정 음 a보다 (순정) 5도 높은 음을 내는 현의 길이 = 3:2

thanksJinny

현의 길이와 음높이의 비례관계


순정 5도를 계속 쌓아올려 얻어지는 옥타브 내 12음이 피타고라스 음률입니다. 가장 오래된 반음계 조율법이라고 해요.

5thcycle

5도를 쌓아올려 12음 도출하기


앞서 던진 질문, 현악기들이 5도 간격으로 현을 조율하는 이유는 이러한 피타고라스 음률에서 영향을 받은 것 아닐까요? 또한 유럽 음악이 한 옥타브를 하필 12음으로 나누는 이유도 피타고라스 음률에서 찾을 수 있겠죠!

피타고라스 음률은 중세 음악까지 계승되었어요. 중세의 음악 이론가들은 피타고라스의 유지(?)에 따라 2:1, 3:2, 4:3 등 가장 간단한 정수비로 만들어지는 옥타브, 5도, 4도만을 협화 음정으로 간주하였는데, 그래서인지 음악에서도 해당 음정들이 비중 있게 등장해요.

interval

중세 음악에서의 협화음정(옥타브, 5도, 4도)과 불협화음정(3도, 6도, 2도, 7도)


2. 빛이 밝을수록 그림자도 짙어지는 법, 순정률

boetius

중세 음악 이론의 GOAT 보에티우스(기원후 480경~524경)
"음악의 원리"를 저술하였고 음악을 우주의 음악 / 인간의 음악 / 악기의 음악 세 가지로 구분하였다.

중세의 음악 이론가들은 3도(도-미)와 6도(도-라)를 불협화 음정 취급했어요. 옥타브, 5도, 4도와 달리 가장 간단한 정수비로 표현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어요. 피타고라스 음률에서 장3도의 비율은 81:64, 단3도의 비율은 32:27이었는데, 협화 음정으로 간주되던 음정들에 비하면 비율이 영 깔끔하지 못하죠. 그렇지만 지역에 따라(영국) 그리고 시대가 바뀌면서 상황은 달라집니다.




3도와 6도가 적극적으로 사용되면서 따뜻하고 밝은 질감의 음악이 되었죠? 후기 중세 영국에서는 장3도와 단3도를 피타고라스 음률대로 연주하지 않고 보다 단순한 비율인 5:4, 6:5로 연주하고 있었다고 해요. 그리고 르네상스 시대의 음악 이론가 라미스는 3도와 6도 역시 작은 정수들의 비로 정리하여 협화 음정으로 간주하는 새로운 조율 체계를 제안했어요. 이것이 바로 순정률 Just Intonation 입니다.


compare

피타고라스 음률과 순정률에서의 음정 비율 비교

듣기 좋은 소리가 수학적으로도 깔끔한 비율로 맞아떨어지다니, 순정률은 그야말로 완☆벽...한 조율 체계라고 하기에는 치명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었어요. 바로... 불협화를 일으키는 늑대 음정! 🐺🐺🐺




늑대 음정은 모든 음정을 순정률로 조율할 수는 없는 데서 발생해요. 순정률로 조율을 하다 보면 어떤 음정이 영 좋지 않은 비율이 될 수밖에 없고, 그 비율을 해결하고 나면 다른 음정이 영 좋지 않은 비율이 되고 말거든요.

shade

에... 하필이면, 음정이 영 좋지 않은 비율이 되었어요.

"하나의 불협화음을 해결하면 다른 불협화음이 생기며, 이런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 (위키백과) - 그럼에도 의지의 음악가들은 근성을 발휘하여 순수한 음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3.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조절음률

중세까지 사용된 피타고라스 음률에서는 5도와 4도가 협화 음정이었기에, 불협화 음정으로 간주된 3도와 6도보다 더 많이 사용되었고 중요했어요. 르네상스에 대두된 순정률에서는 3도와 6도가 협화 음정이 되면서 피타고라스 음률에서보다 존재감을 높였죠. 급기야는 3도와 6도가 5도와 4도보다 더 중요한 음정으로 대접을 받게 됩니다. 3도 조율을 기준으로 하고, 3도를 완벽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5도가 덜 완벽하도록 해 버린 것이죠. 하극상 이를 가온음률 Mean-tone Temperament이라 합니다.

5도가 덜 완벽하기에 가온음률에서도 늑대 음정의 문제는 여전했습니다. 조율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기 위해 악기가 신기하게(?) 제작되기도 했어요.

organ

산타 바바라(Santa Barbara) 오르간 (Graziadio Antegnati, 1565)

검은 건반 위에 더 작은 검은 건반이 있는 게 보이시나요? 순수한 음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때그때의 조성에 따라 음을 다르게 조율해야 했어요. 즉 D#과 E♭이 다른 음정으로 조율되어야 했죠. 이게 머선 129... 상황에 따라 자의로 음을 조정할 수 없는 건반악기 연주자로서는 난감한 노릇이었죠. 그래서 아예 다른 음정으로 조율되어야 하는 이명동음까지 건반화한 악기가 만들어지기도 했어요. 산타 바바라의 오르간이 그 예인데요, 소리가 무척 오묘합니다.

하지만 음악 나고 조율 났지 조율 나고 음악 났겠어요? 치열한 경합 끝에 음악가들은 조율의 완전성과 연주의 편의성 중 후자를 선택합니다. 조율은 다시 한 번, 그리고 현대까지 이어지게 되는 변화를 겪게 됩니다.

4. 민주주의의 승리, 평균율

세월이 흘러 1721년, 음악의 아버지 바흐는 음악의 구약성서라 불리게 될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Das wohltemperierte Klavier의 첫 권을 작곡합니다. 당시 태동기에 지나지 않았던 평균율이라는 조율 체계에 기반한 곡이라는 점에서 그 시대의 아방가르드 음악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순정률에서는 순수한 음정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순수하지 못한 음정을 완전히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죠? 평균율에서는 순수한 음정을 아예 포기(옥타브 제외)해 버립니다. 그리고 순수하지 못한 음정의 순수하지 못함(?)을 모든 음정이 조금씩 나누어 가져요. 한두 음정이 도맡았다면 확 티가 났을 불순함이 여러 음정으로 흩어지며 희석되었죠. 가장 아름다운 음정은 없지만 모든 음정이 그럭저럭 들을 만하게 조율하는 것, 그것이 바로 평균율 Equal Temperament입니다. 피아노가 가장 대표적인 평균율 악기죠.

piano

근대 유럽 음악은 평균율을 채택하면서 순수한 음정을 잃어버린 대신 조성음악에서의 자유를 얻었어요. 순정률 시절에는 임시표 하나 붙이고 뗄 때에도 조율의 문제를 생각했어야 하는데, 평균율의 시대부터는 임시표도 자유롭게, 과격한(?) 화음도 마음껏 쓸 수 있게 되었어요. 전조의 제약도 풀리니 어느 조로도 자유롭게 전조할 수 있게 되면서 #이나 ♭이 대여섯 개씩 붙은 조로도 드나들 수 있게 되었고요. (그리고 연주자들이 악보를 읽는 시간은 세 배로 늘어났다고 한다)

정리하자면 평균율은 화음, 화성, 조성이 중심이 되는 음악에 딱 맞는 조율 체계로서 고전과 낭만 시대 주옥같은 명곡들이 쏟아져나올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답니다. 🥰 조성음악으로 나아가고 있던 근세~근대 음악가들의 필요가 평균율을 이끌어냈다고도 할 수 있겠죠.

지금까지 유럽 음악에서의 조율의 역사를 살펴보았어요. 조율은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악기의 역사적 변천에도 스며들어 있고, 우리가 지금 듣고 있는 음악의 선율과 화음에도 스며들어 있어요.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때, 음악이 무럭무럭 자라나도록 해 주는 조율이라는 주춧돌에도 같이 귀 기울이면 어때요? 👂

참고문헌 : 그라우트 서양음악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