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사업 신청을 할 때, 선정이 되어 실제로 진행을 할 때, 의외로 우리의 발목을 잡는 이것! 바로 예산 계획 및 집행이에요. 일반수용비, 제작비, 회계검증수수료 같은 어려운 용어들의 향연 속에서 어디에 무슨 항목을 써넣어야 할지 혼란스럽고, 사례비와 제작비에는 얼마가 적절한지 감이 안 잡히고... 숫자에 약한 뮤지터라면 예산을 건드리는 것 자체가 무서울지도요. (아는 사람 이야기입니다. 제 이야기 아닙니다 흙흙)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예산을 짤 때 마주하게 되는 난관들을 하나씩 콕콕 집어서 설명드릴게요. 아티클을 다 읽고 나시면 아...! 돈은 이렇게 쓰는 거구나...! 돈맛(응?)의 오묘함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지원사업을 처음으로 경험하는 뮤지터, 예산 항목이 매번 껄끄러운 뮤지터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요~
예산을 잘 짜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요? 바로 망원경🔭과 저울⚖입니다. 무슨 뜻이냐고요? 나의 작업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시기별로 어떤 일이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쭉 내다보는 망원경🔭, 그리고 작업 내 우선순위와 중요도를 파악하여 절충이나 선택이 필요한 시점에 어떻게 행동할지 기준이 되어줄 저울⚖이 필요하다는 뜻이에요.
작업 과정을 한눈에 정리해야 시기별로 단계별로 어떤 부분에 얼만큼 돈이 필요한지를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예산을 짤 수 있어요. 바꾸어 말하면, 작업 과정이 사전에 제대로 정리되지 않으면 작업 후반부에 사비를 몰빵하여 구멍난 예산을 메꾸는 참사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지원사업 신청서를 작성하노라면 사업 추진 계획 등의 항목에서 망원경🔭을 어느 정도 갖추게 되어요. 지금 다시, "작업 한 번 하기"에 어떤 단계가 있는지 짚어보겠습니다.
숫자만 문제라면 계산기 두드리면서 씨름이라도 해 볼 텐데,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생소한 용어들이 예산 표에 난무합니다. 왜 우리는 진작 이러한 지식을 배워두지 않았을까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회계는 대학 필수교양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1인) 자, 지나간 일은 지나간 것이고, 이제부터 차근차근 용어 정리를 해봅시다!
2022 아르코 청년예술가생애첫지원 지원금 예산편성 항목 예시
연주자 사례비, 공연장 대관료, 회의 진행비 등을 최소한의 분류도 없이 적어내려 간다면, 예산표를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어지럽고 헷갈리겠죠? 그래서 예산을 그 성질에 따라 우선 큰 틀에서 분류하는 것이 '세목'이에요. '일반수용비' '임차료' '공공요금 및 제세' '여비' 등의 세목으로 분류한 다음, 세목 안에서 다양한 '항목'으로 예산을 편성하게 되죠. 그러면 세목과 항목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그리고 예산을 작성하다 보면 "식"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 궁금하셨던 적이 있을 거예요. 무대 제작비 x 1식은 얼마얼마 한다는데, 식이라는 게 도대체 뭐지? "식"은 "세트"라고 생각하시면 되어요. 그래서 무대 제작비 얼마 x 1식이라는 건, 무대 제작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을 합쳐서 통째로, 한 세트로 묶어서 얼마를 책정하겠다는 뜻이 되지요.
그렇다면 예산이 들어가는 즉 작업을 하는 데 돈이 드는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부분이 무엇일까요?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인건비, 제작비, 홍보비에요.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예산 개노답 삼형제! 하나씩 알아보겠습니다.
인건비는 참여하는 인력에 지불하는 페이를 통틀어요. 예산계획을 작성할 때에는 '일반수용비' 세목의 '사례비' 또는 '전문가활용비' 항목에 인건비 목록을 쓰게 되죠.
직접 무대에 출연하는 연주자들뿐 아니라 무대 전체의 상황을 통제하는 무대감독, 조명과 음향을 설계하는 각 분야의 디자이너들, 공연에서 실제로 조명과 음향 콘솔을 조작하는 오퍼레이터들, 창작곡을 초연한다면 곡을 쓴 작곡가, 연출과 매니저까지... 공연 한 번 올리는 데 정말 많은 사람이 필요하고, 이게 다 돈이랍니다! ^^
그렇다면 연주자에게, 스태프에게 지불할 적정 페이는 도대체 얼마일까요?
얼마면 돼?
네,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음악의 난이도에 따라, 연습 및 공연 횟수에 따라, 예산 상황에 따라, 연주자와의 친분(?!?)에 따라, 돈이 아닌 방식으로 제시할 수 있는 유무형의 옵션(?!?!?)에 따라 그야말로 유동적 그 자체라고 생각하시면 되어요. 가령 연주할 곡이 매우 쉽고 리허설 1회 공연 1회만 진행해도 된다면, 낮은 페이로도 진행 가능하겠죠. 그렇지만 곡의 난이도가 상당하여 리허설 3회, 그리고 공연을 이틀 동안 2회 진행하게 된다면 연주자가 이 작업에 투자해야 하는 시간에 상응하여 페이를 더 주는 것이 인지상정일 거예요.
인건비에 대한 보통의 판단 기준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어요. 여기에 자기만의 기준, 자기 작업에서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여 인건비를 책정하도록 합시다!
한편 예산을 편성할 때 나의 인건비는 얼마를 쓰는 게 적절할까 역시 고민이 될 거예요. 되도록 넉넉한 금액을 편성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적자(...)가 덜 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죄인이여, 적자 정도는 각오했잖아?
공연을 준비하다 보면 "이런 데도 돈을 써야 하잖아?!?" 하는 순간을 수도 없이 마주치게 되어요. 리허설을 진행할 때 연주자들에게 커피라도 한 잔씩 사야 하고, 리허설 공간에 주차공간이 따로 없어 어마무시한 민영주차장 주차비를 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고, 대기시간이 긴 공연에는 출연진과 스태프를 위해 다과와 식사도 준비해야 하죠. 이 돈이 다 내 페이에서 나간다 생각하시고, 가능한 한 넉넉하게 자신의 인건비를 책정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
음악을 한다고 해서 음악만 하기에는, 어떤 작업에서든 시각적 요소가 매우 중요해요. 연주자들을 무대에 배치하는 방식, 연주자들의 의상처럼 가장 기본적인 요소부터 연주공간을 어떻게 꾸밀 것인지, 연출 콘셉트에 따라 조명과 소품 등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 공연에서 시각적인 부분을 채워넣을 여지는 무궁무진하답니다. 문제는 비주얼의 퀄리티가 대체로 투자하는 돈에 비례한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우리가 음악 공연을 할 때 신경쓸 시각적 요소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잘 보면 아시겠지만, 대부분의 음악 공연에서 제작비는 선택과 집중의 문제에요. 의상의 경우 그냥 검정+검정으로 각자 알아서 입어오는 걸로 한다면 의상에 드는 돈이 없겠죠? 하지만 공연의 분위기나 콘셉트를 생각하며 의상을 새로 구매하거나 제작하려고 한다면 의상은 돈 잡아먹는 하마가 됩니다... 무대 조명의 경우도, 공연장에 있는 기본 조명을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욕심을 내서 조명 디자인을 따로 하고, 추가로 필요한 조명 장비를 대여하려고 한다면 예산이 어마어마하게 소요되게 됩니다.
너로 정했다!
그래서 내가 꼭 이것만은 하고 싶다!고 욕심이 나는 제작 부문이 있다면 그것 하나에 집중을 하고, 나머지는 기본만을 가져가는 것도 결과적으로 깔끔한 선택이 될 수 있어요. 물론 예산이 풍족하다면 모든 부문에 집중을 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를 훨씬 더 많이 마주하게 될 테니까요.
공연을 한다면 "반드시"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홍보 부문이 있습니다.
티켓 예매의 경우 인터파크와 멜론 등을 통하게 되면 적지 않은 수수료를 떼이게 됩니다. 공연의 규모가 크지 않다면 네이버티켓, 구글폼 등의 방법을 이용하여 티켓 예매 관리에 드는 가격을 절감할 수 있어요. 반면 오프라인 홍보물 제작 및 인쇄는 그야말로 고정비용이에요. 디자인 인건비는 제하고 인쇄비만 생각하더라도 15만원은 책정해 두어야 뒤탈이 없답니다.
화려한 비주얼... 이거 다 돈이다.
여기에 더하여 요즘은 온라인 홍보도 필수죠. 온라인 홍보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외향적이고 sns를 즐기는 뮤지터라면 본인이 직접 사진이나 영상을 찍어 올리며 홍보를 할 수 있겠지만 Estel처럼 내향적 뮤지터의 경우는 홍보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될지도 몰라요. 외향적인 친구나 온라인 홍보물 디자이너를 섭외하여 감정노동(?)의 부담과 지갑을 함께 가볍게 할 수 있어요.
온라인 홍보의 좋은 예 feat. 금손 디자이너
홍보 이벤트의 경우, sns 플랫폼별로 일정 돈을 내면 며칠 동안 어느 범위 내에서 홍보물을 광고해주는 서비스가 있답니다. 가령 인스타그램의 경우, 계정을 비즈니스 계정으로 설정하고 특정 피드를 홍보하기를 원한다면 1회에 3만 원 내외로 예산을 책정하여 진행할 수 있어요. 예산을 더 쓸수록 더 오랫동안 더 많은 사람에게 광고가 갈 거고요. 어떻게 보면 홍보야말로 인풋과 아웃풋이 가장 비례하는 분야라고 할 수 있어요.
인스타그램 비즈니스 계정 홍보 안내 사이트
이렇게 정형화되어 있는 홍보 말고도 참신한 홍보를 기획하여 적은 돈으로 큰 효과를 거둘 수도 있을 거예요. 길거리 플래시몹을 진행할 수도 있겠고, 사람들이 많이 보는 먹방 컨텐츠와 공연 홍보를 결합한 영상을 유튜브에 올릴 수도 있겠고요. (그러느라 머리에 쥐 나느니 안전하게 기본만 하는 편이 마음 편할 수도 있고...)
핵심은 이 모든 홍보의 목표가 "그냥" "다들 하니까"가 아닌,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우리의 공연에 관심을 가질까? 관심을 가지다 못해 공연장으로까지 발걸음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대답이어야 한다는 점이에요. 그 모든 것을 고려하여... 홍보비 예산을 편성합시다 ^^
그렇다면 예산짜기 연습도 할 겸 예산 규모별로 직접 예산을 짜 보겠습니다. 예산의 규모에 따라 할 수 있는 범위가 달라지고, 선택과 집중의 요소가 달라진답니다.
악기 대편성 금지! 특수악기 금지! 이 예산으로는 절대 많은 인원에게 적절한 인건비를 지불할 수 없어요. 소규모 편성의 옹골찬 음악들로 기획합시다. 그리고 현장에서 무대 셋업을 돕거나 관객을 안내하는 현장스태프도 최소 1인은 있는 것이 좋아요. 홍보물을 디자이너에게 제작 의뢰한다면 그 비용도 인쇄비와는 별도로 계산하고, 공연 실황을 촬영할 감독도 섭외해야 하고요.
예산의 규모와는 상관없이 공연 실황 영상 촬영은 꼭 하시기를 추천드려요. 단순히 공연을 기록하는 용도를 넘어서, 나의 포트폴리오가 되어 두고두고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미래에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영상 촬영을 늘 고려합시다!
참여인원이 적으면 공연장도 큰 곳을 잡을 필요 없겠죠? 저렴한 가격의 소공연장, 작은 홀을 찾아 대관합시다. 무대, 의상, 소품 등 무대연출 부문에는 사실상 예산을 쓸 수 없어요. 정 무대에 무언가 하고 싶다면, 따로 돈이 들지 않도록 집에 있던 소품들로 무대를 예쁘게 꾸미는 선에서 만족해야 합니다.
리허설을 두 시간씩 2회 진행한다 치면 연습실 이용료로 10만 원은 책정해야 안전할 거예요. 그리고 공공기관 지원사업이라면 회계검증 수수료를 반드시 책정해야 하는데, 예산 규모별로 단가가 정해져 있답니다. 그러고 나서 남은 돈을 나의 인건비로... 얼마 남지 않은 돈인데, 공연 준비하다 보면 진행비로 다 쓰게 됩니다 ^^
1000만원이면 그래도 숨통이 트입니다. 음악에서나, 무대 연출에서나, "무언가 하나" 욕심을 낼 수 있는 예산이에요. 음악에서 욕심을 낸다면 조금 더 크거나 다양한 편성의 음악을 시도할 수도 있고, 작곡가에게 곡을 위촉하여 신작 초연을 할 수도 있겠죠. 무대 연출에서 욕심을 낸다면, 콘셉트에 맞는 무대를 설계하거나 조명을 디자인하거나 의상을 제작하는 가능성이 있어요. 물론 이 모두를 해낼 수 있는 예산은 아니므로, "뭔가 하나"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두 개는 안돼!)
이 예산표에서는 "무대와 조명"의 비주얼에 투자하기로 결심한 것을 알 수 있네요. 무대 디자인 및 조명 디자인 전문가를 섭외하는 사례비가 추가되었고, 무대 제작비도 편성되었어요.
공공기관 지원사업의 경우 예술인고용보험을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는데, 이에 따라 예술인고용보험료가 편성된 것도 특기할 점이네요. 공연 자체에 대한 보험을 드는 것도 권장되는데, 행사보험료가 따로 편성된 것도 볼 수 있어요.
흠, 그리고 기획비를 더 많이 편성했군요. 잘 했어요. 저래봐야 적자엔딩이겠지만...
2000만원쯤 되면 조심스럽게, 욕심 내고 싶은 것들을 많이 욕심 낼 수 있는 예산이에요. 물론 욕심을 내고 싶은 대로 막 분출하면 적자와 사비 메꾸기를 면하기 어렵습니다. 조심조심, 내가 정말로 만들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고민하면서, 외줄타기를 하며 균형을 잘 잡아봅시다.
일단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연출을 섭외했다는 사실이에요. 공연 전체의 흐름과 비주얼을 책임질 사람이 들어왔으니, 공연의 퀄리티 상승을 기대할 수 있겠죠? 무대 영상을 제작할 영상감독도 섭외한 걸 보면, 확실히 비주얼에 욕심을 내려는 것 같아요. 작곡가 위촉을 통해 신작을 초연하다 보니 연주자 인건비까지 올랐네요(신작 초연은 어려운 일이죠). 온라인 홍보 디자이너를 따로 섭외한 걸 보니 홍보도 적극적으로 도모할 모양이에요.
오, 그리고 공연장 대관료가 상승했네요. 더 크고 좋은 공연장을 선택한 모양이에요. 비싼 공연장을 이틀 대관한 것을 보니, 무대 셋업과 디자인에 공을 들일 것 같아요. 음악과 연출 양면으로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은 공연입니다.
여기까지 예산 편성에 대해 맛보기 시간을 가졌어요. 어때요, 예산 계획표를 대하기가 조금 덜 무서워졌나요? 예산을 짜기에 앞서 공연의 전 단계에 대한 청사진, 인건비 제작비 홍보비의 삼각형을 어떤 삼각형으로 만들지, 주어진 예산의 규모에서 가장 가성비 좋은 작업을 뽑아내는 방법 등을 숙고할 때 도움이 되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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