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대넓얕

바흐는 왜 음악의 아버지일까?

평범한 문장 속에 숨겨진 이데올로기

2년 전|Harrison
목차
  1. 바흐, 그 위대한 이름이여
  2. 바흐는 왜 음악의 아버지일까에 대한 여러 속설
  3. 뻔한 이야기 말고
  4. 그래서, 바흐는 음악의 아버지인가?

1. 바흐, 그 위대한 이름이여

bach

가장 위대한 작곡가 중 한 명으로 추앙받는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수많은 이들이 바흐의 위대성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고, 그렇기에 가히 '음악의 아버지'라 불릴만하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음악의 아버지’라는 표현은 백번 양보해도 엄청 파격적인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타 예술 장르를 뒤져보아도 ‘미술의 아버지’나 ‘건축의 아버지’, ‘영화의 아버지’ 등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예술 분야를 통틀어 ‘아버지’라는 칭호를 부여받은 사람은 바흐가 유일무이합니다. 그렇다면 바흐는 어떻게 음악의 아버지가 된 걸까요?

2. 바흐는 왜 음악의 아버지일까에 대한 여러 속설

1) 위대하니까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로 손꼽는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그만큼 그의 음악이 위대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바흐의 위대성과는 별개로 바흐 이전에도 서양음악은 존재했고, 바흐에 비견할만한 위대한 작곡가는 많았습니다. 또한 ‘음악의 아버지’라는 표현을 쓴다면 ‘음악의 매형’, '음악의 며느리', '음악의 외고조부'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바흐의 위대성을 추앙하는 방법으로써의 ‘아버지’라는 표현의 당위성을 입증하기엔 논거가 부족합니다(위대성에 대해 심도 있게 고찰하고 싶은 분들은 아래의 링크 참조!).

2) 그의 작품은 작곡 공부를 위한 교과서이기 때문에

textbook

실제로 수많은 후배 작곡가들이 그의 영향을 받았으며, 많은 이들이 그의 작품을 공부하고 연주합니다. 즉 음악인에게 아버지와 같은 영향력이 있다는 주장이죠. 하지만 바흐는 살아있을 당시 그리 인정받는 작곡가는 아니었습니다. 시대에 뒤떨어지는 작곡을 한다는 평이 많았고, 그를 기념하는 동상이나 기념물 하나 있지 않았죠. 사후엔 잊혀서 그의 악보 대부분이 소실되고 말았고요. 음악의 아버지는커녕 제삿밥 한 번 제대로 받아 먹어본 적 없는 셈이죠. 바흐가 재조명되기 시작한 건 그의 사후로부터 거진 100년이 지난 뒤의 일입니다. 바흐가 갑자기 음악의 아버지 자리를 꿰차기엔 너무 뜬금없죠.

3) 일본에서 붙인 이름

컨셉 부여를 좋아하는 일본에서 만든 이미지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예컨대 베토벤의 교향곡에 ‘운명’이나 ‘전원’ 등의 부제를 일본 음반사에서 붙였다는 속설처럼, 바흐는 음악의 아버지라는 칭호도 일본에서 만들었다는 의견입니다. 하지만 바흐가 음악의 아버지라는 건 일본과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고 있기에 단순히 음반사에서 만들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해 보입니다 (여담으로 ‘운명’이라는 부제를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만 쓴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사실이 아닙니다).

물론 위의 주장들은 맞다, 틀리다 답을 내릴 수 없습니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각자의 마음 먹기 달렸죠. 그래서 저는 위와 같은 식상한 주장들 말고 구미가 확 당길 파격적이고 신선한 주장을 가져와 보았습니다.

3. 뻔한 이야기 말고

저처럼 반골 기질이 있는 사람들은 바흐가 음악의 아버지라는 주장에 이와 같은 의구심을 품곤 합니다. “왜 하필 바흐가 음악의 아버지인 거야? 누가 그렇게 정했어??” 라고 말이죠. 분명 누군가가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렀기 때문에 바흐는 음악의 아버지가 된 것이겠죠.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음악의 아버지가(?) 되었다.

우리는 바흐가 왜 음악의 아버지인가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누가 그 말을 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즉 발언의 주체를 찾는다면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로 만든 그들의 목적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goongyeah

누가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렀는가?

이에 관해서도 여러 의견이 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세 가지 주장을 가져와 보았습니다 (이 주장들 모두 위의 주장처럼 정답이 있거나 확증이 있는 것이 아니니 재미있게 감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독일 음악학자들의 장난질

음악의 아버지가 있다면, 본인이 음악 그 자체인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짐이 곧 음악이니라”는 상상만 해도 부끄러운 초절정 자뻑의 완성, 모차르트가 그 주인공입니다(모차르트라면 인정이지).

뮤지컬 모차르트 ‘나는 나는 음악’, 그래 네가 음악해라

모차르트가 실제로 그런 발언을 했는지에 관한 문헌을 찾지는 못했지만, 설득력이 없는 주장은 아닙니다. 실제로 모차르트는 바흐에게 음악을 배웠었거든요. 본인이 음악이고 자신의 선생님이 음악의 아버지가 되는 셈이죠(그사세...).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모차르트가 사사한 선생님이 우리가 알고 있는 J.S.바흐(요한 세바스찬 바흐)가 아니라 그의 아들인 J.C.바흐(요한 크리스티안 바흐)라는 것입니다.

bachson

J.C.바흐(1735~1782)

J.S.바흐에겐 수많은 자식이 있었고, 그 중엔 아버지처럼 작곡가로 활동한 바흐들이 있었는데요, J.C.바흐는 아버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잘나가던 작곡가였습니다. J.C.바흐는 이탈리아에서 음악 공부를 하고 런던으로 진출했는데요, 아버지와는 달리 이탈리아 음악의 영향을 받아서 훨씬 쉽고 편안한 음악을 작곡했습니다. 이러한 작곡 스타일은 그의 제자인 모차르트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죠. 그래서 모차르트가 음악의 아버지라고 부른 이는 다름 아닌 J.C.바흐라는 것입니다😱

J.C. 바흐의 음악. J.S.바흐보다는 모차르트의 음악과 더 유사하다.

하지만 독일 음악학자들은 이러한 사실이 불편했나 봅니다. 독일 음악의 계보에서 모차르트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 그런 그가 J.C.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로 섬겼다는 건 곧 독일 음악이 이탈리아 음악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인정해버리는 꼴이니까요. 쉽게 비유해보면 모두가 존경하는 한국 음악의 대부가 ‘중국 음악이 내 음악의 아버지다’라고 말했을 때의 실망감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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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음악의 계보가 이탈리아로부터 출발하는 건 너무나 자존심 상하는 일

그래서 독일 음악학자들은 모차르트의 발언에서 ‘J.C.’를 빼버립니다. ‘음악의 아버지는 바흐’, 즉 우리가 더 잘 알고 있는 J.S.바흐라고 떠올리게끔 유도한 것이죠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단지 말을 안 했을 뿐). 이를 통해 독일 음악은 (J.S.)바흐로부터 비롯되는 순수한 독일 혈통의 계보를 갖게 되었다는 주장입니다.

2) 독일 음악의 이데올로기

독일의 저널리스트들이 독일의 이데올로기를 구축하기 위한 방법으로 철학과 음악을 택했다는 주장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독일의 음악이 훌륭하다는 것을 설파하기 위한 목적으로서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로 추앙했다는 것이죠.

그도 그럴 것이 바흐는 다른 음악가들처럼 유학을 가거나 연주 여행을 다니는 등의 대외적인 활동도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그를 음악의 아버지로 만들기 위해 저널리스트들이 적극적으로 홍보를 했습니다. 바흐의 음악을 신성시하고, 그의 음악을 유력 인사들이 홍보하게끔 했죠. 이를 통해 바흐는 독일, 더 나아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치며 자연스레 음악의 아버지 이미지를 구축하게 되었습니다. 즉 '바흐는 음악의 아버지'라는 말에는 독일 음악을 신성시하고 숭배하는 이데올로기가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3) 개신교의 이미지메이킹

church

역사에 길이 남은 클래식 음악 작곡가 중에서 개신교 신자는 대표적으로 멘델스존과 바흐가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바흐를 다시 발굴하고 널리 홍보한 사람이 멘델스존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것이 과연 우연의 일치인가에 대한 음모론(?)이 있습니다.

church

펠릭스 멘델스존

음악 평론가 강헌은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로 부르게 된 이유를 개신교 세력의 음모라고 주장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부를 거머쥔 부르주아 세력(대부분 개신교 신자)이 자신들을 대변할 영웅적인 아이콘으로 바흐를 택했다는 것이죠.

4. 그래서, 바흐는 음악의 아버지인가?

바흐가 음악의 아버지가 된 이유에 대한 다양한 주장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바흐는 음악의 아버지’라는 단순한 한 문장이 여러 조작(?)과 음모(?)로 점철되어 있을 줄 상상도 못 했네요.

글의 내용과는 별개로 마무리를 지어보자면 바흐는 독일에서 활동하던 작곡가였습니다. 그가 아무리 위대하여 서양 음악의 아버지라 할 수 있을지라도 전 세계의 모든 음악을 아우르는 아버지가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 글을 계기로 바흐가 왜 음악의 아버지여야 하는가에 대해 비판적으로 고찰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