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인 노트

박예람 마스터클래스 주최 후기 (상)

마스터클래스의 시작 부터 마치던 순간까지

1년 전|Flûtiste 박영주

Flûtiste 박영주님께서 뮤지트에 올려주신 글을 재구성하였습니다.

파리에서 공부할 때부터 절친했던 친구이자 내가 좋아하는 플루티스트 박예람 선생님 측에서 3년 전 '한국에서 독주회나 캠프를 주최해 줄 수 있겠냐'는 연락이 왔다. 현실적으로 독주회나 캠프는 내 선에서는 무리일 것 같고, 마스터클래스는 해볼 수 있을 것 같아 마스터클래스에 한해 제안을 받아들이고, 3년 전 처음으로 서울과 대구에서 행사를 주최했다. 그리고 올해, 한국에서 한번 더 마스터 클래스를 주최해 줄 수 있겠냐는 연락을 받았고, 올해는 대구에서만 이틀간 진행했다.

유학을 가기 전 한국에서 공부할 때, 대구에서는 유명 연주자의 레슨을 받을 기회가 흔치 않았고, 마스터클래스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서울까지 가야만 하는 여건이었다(지금도 그렇지만). 그래서 나는 나의 고향인 대구에서도 명연주자의 음악을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은 꿈이 있었고, 이런 내 꿈이 플루티스트 박예람 마스터 클래스 주최 동기가 되었다.

어릴 때부터 나의 은사님이신 이승호 선생님과 주변의 다른 선생님들께서 이러한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을 보기도 하였고, 몇몇 마스터클래스 통역으로도 참여를 하며 행사가 어떻게 준비되고 진행되는지를 봐온 덕분에 처음으로 행사를 주최했음에도 큰 어려움은 없었다. 무엇보다 같은 악기를 전공하는 나의 누나가 한국 현지 상황을 잘 알고 있어서 (한국의 휴가철 기간, 참가비 책정, 레슨 시간 등) 함께 행사를 준비하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이러한 일을 하면서 특히 차별화 하고 싶었던 점은 바로 ‘구두계약’을 하지 않고 상세한 내용을 정확히 적은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었다.

프랑스에서 누구라도 알만한 오케스트라에서 활동 중이시던 선생님의 마스터클래스를 수강했을 때, 한국에서 독주회를 한 후에 이에 대한 페이를 한 푼도 받지 못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페이를 받지 못한 이유는 간단했다. 주최 측과 페이에 대한 언급이 따로 없었기에 주최 측에서 페이를 전혀 지불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선생님은 본인이 세계 제일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위치가 있으니 '페이가 어느 정도는 되지 않겠나' 하고 안일하게 넘어간 게 문제가 된 것이었다고 한다. 이 사례는 추후에 내가 누군가를 초청하여 행사를 주최한다면, 반드시 아티스트와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계약서를 쓰겠다고 다짐한 계기가 되었다.

명연주자가 누군가의 일회성 돈벌이 목적으로만 이용된다는 건 너무나도 슬픈 일이다. 그래서 실제로 내가 마스터클래스를 주최하는 것을 결정한 후 로펌에 계신 변호사님께 연락드려 계약서 작성 및 행사 중 신경 써야 할 법률적 문제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

그리고 박예람 선생님과 마스터클래스 진행에 관해 상세한 이야기를 나눈 후 모든 내용을 계약서에 기입하였고, 당시 벨기에 리에주 왕립음악원에 재학 중이라 프랑스에 거주 중인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계약서에 서명을 받기 위해 직접 파리로 찾아가 상호 간 서명을 하고 계약을 체결하였다. 의뢰자 측에서도 계약서가 있으므로 여러모로 확실해진 점에 매우 만족하였고 덕분에 나 또한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차차 이 업종에서도 구두계약을 하지 않고 계약서를 쓰는 문화가 정착하기를 학수고대한다.

3년 전, 처음 행사를 준비할 때에는 '인구도 많고 플루트 전공자도 많이 분포한 서울에서 꼭 한 번 행사를 열어봐야겠다' 싶은 마음에 서울과 대구 두 지역에서 행사를 열었으나, 서울은 굳이 내가 준비한 마스터클래스가 아니어도 참여할 마스터클래스가 많아서 수요층의 큰 지지가 없었던 반면, 대구에서는 많은 참가자들이 다음에 또 마스터클래스가 열리기를 열망하였다. 그래서 올해는 내 고장에서도 좀 더 많은 명연주자들을 접할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는 취지와 함께 무려 이틀간 대구에서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하였다.

2019년 서울에서 열었던 행사 경우, 음악인들의 메카인 서초동에 오케스트라 연습실이 있으신 선생님께서 장소를 제공해 주셔서 큰 어려움이 없었고, 대구에서는 내 고향인 만큼 장소를 좀 더 신경 써서 골랐다.

이 과정 중 여러 소형 홀을 비교해 봤는데, 대부분 대관료를 100% 지불할 시 레슨비를 비싸게 받는 것이 불가피할 것 같은 금액이었다.
그러나 레슨비가 비싸다는 이유로 학생들이 좋은 기회를 포기하는 것은 내 교육관과 맞지 않아서, 좀 더 고민을 하던 중, 주차 및 대중교통 문제, 중심가와 멀지 않은 장소라는 조건을 갖춘 대구 음악인들의 집결지인 명덕역과 경북예고 인근의 동서음악사가 떠올라 문의를 해보니 대관료도 합리적이고 원하는 날짜에 대관이 가능하여 2019년과 2022년 모두 동서음악사에서 마스터클래스를 개최하게 되었다.

장소 섭외 이야기를 하며 내 ‘교육관’에 대해 언급했는데, 이번 행사를 준비하며 참가자들이 얻어갈 수 있는 것에 대해 나름대로 고민을 많이 해보았다.
예를 들어, 레슨 시간표에 학생 이름을 아예 언급하지 않고 곡명만 기재하였는데, 이는 연주 실력이 뛰어난 학생들의 레슨만 골라서 청강하려는 분들을 여러 레슨을 무작위로 청강하게 하려는 의도를 담은 것이다. ‘핀셋 청강’은 아니 된다!라는 신념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청강료도 한 번 지불하면 종일 청강이 가능하도록 했다.

몇 년 전 프랑스에서 한 외국인 선생님의 마스터클래스에 참여하였을 때, 선생님께서 한국에서의 마스터클래스에서 느끼신 한국 학생들의 청강 태도에 대해 지적하신 적이 있다. 본인의 친한 친구의 레슨 혹은 잘하는 학생의 레슨만 듣고 바로 사라지고 다른 학생의 레슨을 잘 듣지 않는 점을 강하게 지적하셨다.

타인의 레슨을 청강하는 문화가 강한 유럽에서 11년 넘게 공부하며 느낀 점은 여러 학생들이 레슨받는 것을 계속 들으며 혼자 생각을 많이 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앞으로의 연습이나 레슨에 대한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청강생들이 최대한 오랫동안 다양한 케이스의 학생들의 레슨을 청강하며 본인만의 영감을 얻거나, 동기부여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레슨 시간표에 참가자들 이름을 일체 기재하지 않았으나, 바쁘신 분들께서 정말 놓치고 싶지 않은 곡의 레슨은 꼭 들을 수 있도록 곡명은 기재하였다.

실제로 '특정 학교 및 특정 학년의 참가자가 특정 시간대에 있는지'에 관한 문의를 받았으나, 개인 정보 수집 최소화라는 목표를 가지고 행사를 준비한 터라 참가자들의 비상 연락망, 이름 그리고 레슨받을 곡명, 참가비 입금 여부 말고는 가진 정보가 없어서 정말로 알려드릴 방도가 없었다. 그래서 정말 몰라서 알려주지 못한 것이고, 거짓말에 재능이 없는 내 입장에서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뿌듯했다는 작은 에피소드가 생겼다..!

본 행사를 진행하며, 나는 모든 레슨을 청강할 수밖에 없었는데, 청강 중 학생들의 반응과 레슨 중이신 박예람 선생님을 보며, 앞으로의 내 레슨 방향에 대해서도 구상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본 행사를 함께 준비한 친누나와 청강하며 느낀 점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것이 좋은 인사이트를 많이 가져다주었다. '레슨 종료 후 친구 혹은 동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이견을 듣다보면 본인만의 청강비법이 생긴다'는 나의 소견이 다른 음악인들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개인적으로 박예람 선생님의 겸손하신 태도와 모든 학생들에게 정성스럽게 레슨 해주시는 모습을 보고 “역시 아무나 젊은 거장이 되는 것은 아니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많은 분들께서 대구에 이러한 행사가 좀 더 자주 열리면 좋겠다는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셔서 보람을 많이 느꼈다. 특히 2022년 마스터 클래스에는 부산과 진주 등 타 지역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레슨과 청강에 참여해 주셨고, 만족하시는 모습으로 떠나시는 걸 보고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또한 이 글을 빌려 마스터클래스 현장 방문 후 부탁드린 설문조사에 참여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다음 번에는 이번보다 더욱 유익하고 교육적인 시간을 마련해드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준비한 설문조사였는데, 번거로울 수 있었음에도 정성스럽게 의견을 나눠주셔서 감사하였다.

본 설문조사를 통해 많은 참가자들과 청강생분들이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한 연주자만의 고유한 테크닉에 대해 아는 것'을 열망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정보화 시대에 다양한 주법이 세상에 공개되기도 했고, 어떤 연주가 좋은 연주인지는 다들 알고 있지만, 마스터클래스에서 시범연주를 보여주시는 선생님은 어떤 주법 혹은 비법으로 연주하시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많은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런데 3년 전과 달리 올해의 경우, 주법적인 부분보다도 '음악적인 아이디어'를 알고 싶어 하는 여론이 상당히 많았다. 그만큼 현재 우리나라 플루트 전공자들이 기악적인 면에서는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으나 아직 음악적으로는 발전이 더 필요하다고 느낀다는 뜻으로 해석되었다.

레슨 및 청강에 참여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리며, 무더운 여름날 좋은 추억이 되었길 바란다. 많은 분들의 성원에 힘입어 내년 귀국 이후 양질의 행사를 대구에서 좀 더 주최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