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서 알쓰노바님께서 뮤지트에 올려주신 글을 재구성하였습니다.
음악 업계에서 나의 위치는 그저 이방인일뿐이었다.
비전공자라는 사실에 괜히 자격지심을 느끼기도 했고, 주변에 음악하는 지인이 없어서 외롭기도 했다.
나는 나와 같은 비전공자 독학러들을 위한 아고라를 만들고 싶었다.
스물아홉. 이십 대의 마지막 한 해는 내 인생 최고의 해로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나를 불행하게 하는 것부터 제거해야 했다. 그래서 회사를 나왔다.
퇴사 후 유튜브라는 말이 한때 유행하지 않았던가. 마침 내게는 우연히 찍은 영상으로 조회수가 꽤 나오던 유튜브 채널이 있었다. 대학교 시절 취미로 해오던 미디 작곡에 대한 콘텐츠였는데, ‘오토튠’에 관한 내용이었고 조회수가 막 1만 회를 넘기던 시점이었다. 1만이라는 숫자에 취해서 왠지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막 생겼고 그렇게 유튜버가 되기로 결심했다.
시간이 흘러 유튜버가 되겠다고 다짐한 지 일 년 가까이 지났다. 구독자가 100명도 안 되던 채널은 일 년 만에 3,500명의 규모로 성장했고, 현재는 미디 업계의 다양한 브랜드로부터 제안을 받고 음악 커뮤니티에서 자주 언급되는 나름 알아주는 크리에이터가 되었다. 나의 구독자들을 모아 작은 커뮤니티를 만들었고, 함께 음향 장비 박람회에 참여하거나 스피커 청음회를 개최하는 등의 행사도 운영했다.
퇴사를 하고 막 채널을 기획하던 당시, 나는 모베러웍스 팀의 <프리워커스>라는 책을 읽으며 도전에 대한 용기를 얻었고, 드로우앤드류라는 유튜버의 콘텐츠를 보며 영감을 얻었다. 앞서간 이들의 경험과 인사이트 덕분에 유튜브 1) 기획, 2) 제작, 3) 홍보에 대한 아이디어와 레퍼런스를 얻을 수 있었다. 나의 이 글도 뮤지트의 다양한 음악인분들께 좋은 레퍼런스가 될 수 있길 바라면서 서론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음악 프로듀서의 일상을 담은 ‘브이로그 편’ 중에서
대학생 때 취미로 작곡을 독학하면서 느꼈던 가장 큰 고충은 작곡, 믹싱, 마스터링에 대한 한국어 자료가 너무 없다는 것이었다. 비전공자가 음악을 배우려면 학원이나 레슨밖에 해답이 없던 시절이었고, 그 당시에 학원비나 레슨비는 대학생이 감당하기엔 너무 비쌌다. 나와 비슷한 고충을 가진 사람이 분명 많을 것 같았다. 그래서 비전공자를 위한 미디 작곡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있다고 추측했다. 그러나 추측만으로는 부족했다.
당시에 나는 알베르토 사보이아의 <아이디어 불패의 법칙>이라는 책을 읽고 있었다. 요약하자면 본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기에 앞서 ‘프리토타입(pretotype)’을 만들어서 수요를 검증하라는 내용인데, 운 좋게도 ‘오토튠 영상’이 이미 잘 되어가고 있어서 자신감을 얻고 콘텐츠 몇 개를 더 만들어봤다. 추측대로 미디 작곡 입문자를 위한 콘텐츠를 찾는 사람이 꽤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직접 얻은 데이터로 수요를 검증할 수 있었다.
내가 만들 상품, 그러니까 콘텐츠에 대한 방향성이 정해졌지만, 워낙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다 보니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나는 유튜브 채널 자체를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 내가 누구를 위한 브랜드를 만들 수 있을지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나는 어떤 사람이고, 내가 누구를 대변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나는 평범한 심리학과생이었다가 스타트업에 취직하여 마케터의 길을 걸었다 보니, 음악 업계에서 나의 위치는 그저 이방인일 뿐이었다. 비전공자라는 사실에 괜히 자격지심을 느끼기도 했고, 주변에 음악하는 지인이 없어서 외롭기도 했다. 나는 나와 같은 비전공자 독학러들을 위한 아고라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내 채널의 브랜드 미션을 ‘미디 작곡을 독학하는 사람들(타겟)을 위한 콘텐츠와 커뮤니티(상품)를 제공하자’는 것으로 정했다. 브랜드의 뼈대가 잡혔으니 이제 제작에 들어가는 일만 남았다.
나는 자료 조사와 대본 작성부터 녹화와 편집, 업로드까지 모든 작업을 혼자서 하고 있다. 취준생 시절, 주변 친구들이 자격증이나 어학시험을 준비하고 있을 때, 뜬금없이 영상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주머니를 탈탈 털어 구입했던 영상 제작용 컴퓨터와, 유튜브를 뒤져가며 배웠던 어도비 프리미어 지식이 지금 이렇게 쓰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스티브 잡스가 대학교 시절 타이포그래피 수업을 들었던 것을 대학교 자퇴 후 Apple을 만들며 써먹었듯이, 내가 좋아해서 공부했던 모든 것들이 참 신기하게도 지금 어떻게든 잘 쓰이고 있다. 그렇다 보니 유튜브 채널에 대한 기획을 마친 후, 콘텐츠를 제작하는 일은 정말 쉬웠다.
이때까지만 해도 유튜브 채널 운영을 일처럼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니까 여전히 퇴사 후 백수의 나약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 장인성 작가의 <마케터의 일>이라는 책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일할 때 수영장 바닥 끝까지 내려가서 동전을 주워 온다는 마음가짐으로 해야 한다’는 대목이 특히 인상 깊었다. 이 책은 성실하지 못하고 게으른 데다가 엉덩이 힘이 부족했던 내게 딱 적당한 회초리가 되었다. 시간이 지나자 아이러니하게도 회사를 나와서 일을 더 일처럼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인데다가, 남의 사업도 아니고 내 사업이었기에 더 큰 추진력으로 콘텐츠를 만들어갔고, 현재 채널에 45개의 콘텐츠가 쌓여 2만 회가 넘는 조회수가 매달 발생하고 있다.
‘음원 유통하는 법 편’ 중에서
초반부터 채널은 그럭저럭 잘 되는 편이었다. 구독자들이 한 명 두 명 모여들어 100에서 500명 규모로, 그리고 금세 1,000명 규모로 성장했다. 그즈음 홍보에 대한 고민을 했다. 기획과 제작이 해결되었으니, 홍보에 대한 해답만 찾으면 되었다. 내 유튜브 채널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작정 콘텐츠만 만들어 쌓을 게 아니라 그 업계에서의 영향력을 키워 다양한 업체와 협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고작 구독자 1,000명뿐인 채널을 앞세워 이곳저곳의 담당자들에게 메일을 넣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다양한 업체의 담당자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중에는 내 영상을 보고 먼저 연락을 준 ‘작곡가의 미디가게’나 ‘리듬스토어’ 같은 브랜드도 있었고, 작은 채널을 믿고 선뜻 광고를 맡겨준 ‘기어라운지’ 같은 곳도 있었다. 한편 무응답이나 거절이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시간이 흐르자 그때 내가 뿌렸던 씨앗들이 점점 열매가 되어 돌아오기 시작했다. 많은 담당자들에게 썼던 메일 중에는 그분들과의 느슨한 연대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 한편으로는 시간이 지나고 채널이 성장하니까 내가 먼저 연락하는 입장에서 점점 연락을 받는 입장이 되어갔다. 해외의 작은 브랜드에서 국내 업체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나를 찾기 시작했다. 처음엔 내 채널을 알리려고 메일을 돌리던 나였지만, 조금씩 나의 영향력이 커지자 업계인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나의 존재가 금세 알려지게 되었다.
리듬스토어와 협업하여 제작한 ‘모니터 스피커 편’
이렇게 기획과 제작, 홍보의 과정을 거쳐 ‘프로듀서 알쓰노바’라는 채널이 탄생하게 되었다. 나는 이제 겨우 내 커리어에 대한 준비 기간이 끝났다고 생각한다. 지금 나는 채널을 운영하면서, 나의 첫 정규 앨범을 작업하며 음악 활동을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모름지기 아티스트는 라이브 퍼포먼스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디제이 컨트롤러를 구입해서 공부하고 있다.
나는 과연 퇴사할 때 다짐했던 것처럼 인생 최고의 한 해를 보내고 있는가? 채널을 운영하고 음악을 만드느라 정신없는 와중에도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짜릿함’이다. 살면서 요즘처럼 열정적이고, 간절해 본 기억이 없다. 음악하는 유튜버가 되면서 내 인생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 중 만약 미디 작곡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내 채널에 한번 들러주셨으면 좋겠다. 미디 작곡 독학러를 위한 다양한 콘텐츠가 마련되어 있고, 원한다면 100명 가까이의 유저가 모여있는 오픈톡방에 들어오실 수도 있다. 사실 ‘알쓰노바’라는 이름을 기억해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음악이라는 힘든 여정을 함께하는 동지로서,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분들의 꿈을 응원한다. 여러분 모두 좋아하는 일로 성공하시길 바라는 마음을 전하며 글을 마친다.
프로듀서 알쓰노바 채널: https://youtube.com/channel/UCDInHVzKTF54YDxjYPTKS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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