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거진이 만난 사람들

음악을 넘어 업계를 프로듀싱하는 작곡가, 무아엔터테인먼트 PD 한승민의 시선

이 시대의 민요를 만드는 사회적 기업가

2년 전|Jinny, Diana
Editor's Comment

목화씨를 가져온 문익점처럼 한국에 루프 스테이션을 상륙시키고, 원맨밴드로 방송가에서 활약하다가, 돌연 소파 방정환의 정신을 계승하여 국악인의 생태를 위한 무아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심지어 15년 이상 국악의 길을 걷고 있는 에디터 Jinny보다 국악계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어 인터뷰 내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그의 개척 정신은 어디까지 확장될 것인가. 자기 자신이 선하지 않다고 손사래 치지만 선함이 뚝뚝 묻어나는 그의 행보. 그가 불러올 선한 변화의 바람이 기대된다.

가수, 작곡가, 프로듀서, 엔터테인먼트 대표 그리고 국악인 한승민

무아엔터테인먼트 대표/PD, 경성구락부 리더

Discography
• Disappear (2020)
• 서울아리랑 (2019)
• Diffusion (2018)

방송
• 조선판스타 (2021)
• 슈퍼밴드2 (2021)
• 악(樂)인전 (2020)
• 너의 목소리가 보여 7기 (2020)
• 도올아인 오방간다 (2019)
• 이것이 인생 (2019)

목차
  1. 원맨밴드 아티스트 루디
  2. 그의 음악사를 파헤쳐보자
  3. 국악인 한승민
  4.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연대를 만들다
  5. ‘무아’가 하는 일
  6. 한승민의 시선 “See 先(먼저 선)
  7. 한승민의 시선 “See 善(착할 선)

1. 원맨밴드 아티스트 루디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무아엔터테인먼트 대표 한승민입니다. 전 원래 실용음악 작곡을 전공하고 원맨 밴드 퍼포밍과 아이돌 음악 작곡 등을 했었어요.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2019년부터 국악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고, 지금까지 계속 국악 작업을 이어오고 있어요. 그래서 그런지, 지금은 네이버에 국악인으로 분류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저를 국악인으로 소개해야 할지 잠깐 고민했어요. (하하)


가수 루디(LUDI)로서의 활동이 궁금해요. 루프 스테이션을 활용해 혼자 합주하는 ‘원맨밴드’ 퍼포머로 활동하셨었는데, 이 형태의 음악을 시작한 계기가 있나요?

루프 스테이션은 한 번 녹음한 소리를 계속 Looping(반복 재생)해주는 기계예요. 반복 되는 소리 위에 소리를 쌓고 쌓아 혼자서도 밴드 사운드를 만들어 낼 수 있어요. 제가 여러 악기 다루는 걸 좋아하는데, 그 모든 것을 한 사람이 할 수 있다는 컨셉이 굉장히 멋져 보였어요.

제 취미 중 하나인 ‘구글링’을 하다가 외국의 루프 스테이션 공연 영상을 처음 접하였어요. 당시에는 아직 한국에 루프 스테이션이 소개되기 전이었고 지금처럼 유튜브가 활성화되어있지도 않아서 정보 검색이 많이 어려웠죠. 열심히 구글링해서 독학하고 루프 스테이션을 주문했는데, 제 루프 스테이션이 한국에 수입된 첫 번째 루프 스테이션이라고 하더라고요.


아마 많은 독자분들이 궁금해하실 것 같은데요. 원맨 밴드로 활동하기 위해 필요한 장비를 갖추려면 비용이 얼마 정도 드나요?

본인이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에요. 우선 필수품인 루프 스테이션은 약 100만 원 내외에 가격이 형성되어있어요. 보통 루프 스테이션에 드럼패드나 신디사이저 같은 것을 연결해 연주하게 되는데, 이 악기들은 퀄리티에 따라 가격이 상이하죠. 제 악기는 5만 원에서 1200만 원 사이에 가격이 형성되어 있는데, 가격과 품질이 늘 정비례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소리를 들어보고 사셔야 해요.

2. 그의 음악사를 파헤쳐보자

언제부터 음악을 잘하셨나요? 음악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무엇인가요?

어렸을 때 제가 음악에 재능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음악 공부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투입한 시간 대비 효율이 안 나왔거든요. 그때 오기가 생겼죠. ‘엉덩이 무거운 것으로 승부를 보자’라고요. 그렇게 노력하다 보니 예고에서 실기고사 1등은 늘 제 차지였어요. 하루에 17시간씩 연습만 하니까 당연한 결과였죠. 그 후부터 저는 ‘시간과 노력’을 맹신하고 있어요.

예술은 ‘하는 만큼’이라는 게 통하는 분야에요. 주변 친구 중에 취준생, 대학원생이 있는데, 그들이 일하는 분야에서는 노력과 시간이 꼭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그런데 예술 같은 경우는 분명히 실재하는 작품이 있고, 그 작품성을 판가름 짓는 것은 결국 작품에 투자한 시간과 노력이더라고요. 그게 제일 매력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아마 이 때문에 제가 아직 음악 업계에 있는 것도 같네요.


예고에 가겠다는 결심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요?

당시의 마음가짐이 기억나지는 않아요. 저의 가치를 빨리 입증하고 싶은데, 당시에 가장 잘했던 것이 음악이었던 것 같아요. 아마 제가 음악을 좋아했으니 그렇게 시간을 쏟아부었겠죠. 결국 부모님 반대를 무릅쓰고 서울공연예술고등학교에 진학했어요. 부모님께서는 제가 법률 전문가가 되길 바라셨지만… 제가 당시에 다소 반항적이었기에 제 마음대로 강행했어요. (하하)


나만의 연습 방법이 있었나요?

전 좀 이상하게 음악을 익혔어요. 코드 진행이나 모달 인터체인지 등의 이론적 기초를 쌓기 이전에 먼저 몸으로 부딪쳤거든요. 작곡 프로그램을 켜면 컴퓨터 화면에 제가 입력하는 음들이 보이는데, 그걸 이리저리 변형해가면서 경우의 수 하나하나를 만들어봤어요. 그렇게 코드 진행하면서 좋았던 것만 남기는 방식으로 작곡했는데, 나중에 화성학을 제대로 배우게 되면서 ‘아 그때 내가 했던 게 모달 인터체인지구나’ 이런 식으로 깨닫게 되었죠. 그래서 오히려 화성학 체득이 좀 빨랐던 것 같아요. 이론에서 얘기하는 것들이 이미 제 경험 안에 녹아 있었으니까요.

3. 국악인 한승민

2019년 ‘개화’라는 앨범에서부터 국악 작업을 시작하셨어요. 어떤 계기로 국악과 만나게 되었나요?

감사하게도, 경기민요 소리꾼 이희문 선생님께서 제 음악을 보시고 연락을 주셔서 같이 작업하게 되었어요. 선생님께서 여러 음악 동료분을 소개해주셨는데, 그분들과 어울리면서 국악계에 발을 담그게 되었어요.

(영상 보기) 루디 &오방신(이희문) - 서울아리랑 Full.
[도올아인 오방간다]

그때 이런저런 사운드를 들으면서 전통음악이 굉장히 재미있는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민요도 배우고 퉁소도 배우는 등 국악에 푹 빠졌죠. 전통음악의 선율 중 보석 같은 것이 많은데, 그런 것을 현대적 사운드로 멋있고 잘 어울리게 포장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계속 작업을 이어 나갔고, 경성구락부라는 국악팀을 만들었습니다.


국악 작업을 할 때 특별히 염두에 두는 부분이 있나요?

저는 곡을 쓸 때 항상 국악 클래식의 요소를 넣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예전에 가수 쥬얼리의 Baby One more time이라는 노래 기억나시나요? 그 곡에 메인으로 쓰이는 악기가 ‘반도네온’이었는데요. 반도네온을 썼다는 것만으로 그 음악 장르가 탱고가 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마찬가지로 국악기를 썼다고 국악인 게 절대 아니라고 생각해요. 경성구락부는 밴드 형태니까 기본적으로 서양음악의 이론적 기초에 얹혀 있을 수밖에 없는데, 국악기로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연주하는 것 외에, 클래식한 진짜 국악을 넣으려고 노력해요. 박범훈류 피리산조김병호류 가야금 산조를 넣어 만든 곡도 있어요. 전통 선율에 어울리는 현대적인 사운드를 찾는 게 저에게는 굉장히 즐거운 작업이에요.

한편으로 국악 클래식을 넣는 이유 중 하나는 저희 팀 ‘경성구락부’가 전통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을 병행하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에요. 제가 보았을 때 국악계는 ‘보존’과 ‘개량’이라는 방향으로 양분되어있는데, 보존을 하려는 자도 개량에 일정부분 힘을 쓰고, 개량을 하려는 자도 보존에 일정부분 힘을 써야한다고 생각해요. 양쪽 다 잡을 수 있는 좋은 선례를 만들고 싶어요.


4.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연대를 만들다

2021년에 무아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셨어요. 무아엔터테인먼트는 어떤 회사인가요?

무아엔터테인먼트는 국악 아티스트들의 매니지먼트를 제공하는 기획사예요. 음반 제작 및 유통과 활동 전반의 과정을 지원하고, 신진 아티스트를 발굴하여 맞춤형 콘텐츠를 기획·제작하기도 합니다. 공연 수익을 다시 국악계에 투자하며 사업을 확장하고 있어요.


개인 앨범 활동을 하다가 돌연 창업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국악인들과 접점이 많아지면서 이 업계에 관한 분석을 해봤는데, 상당히 안타깝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많았어요. 일단 이 업계에는 기획 및 경영의 역할이 굉장히 축소되어있어요. 마치 감독없이 선수만 있는 축구 구단처럼요. 컨트롤 타워가 명확한 비전을 가지고 이끌어 주어야 하는데, 그런 것 없이 뮤지션 개개인이 기획, 연출, 연주까지 각개전투하는 것이 안타까웠어요.

제일 슬펐던 것은 업계의 다수가 공무원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이었어요. 열심히 공연 활동하던 연주자들도 악단 공고가 나면 모든 일상을 멈추고 시험 준비를 하시더라고요. 그 때문에 심지어 공연에 설 연주자를 구할 수 없는 지경이 되는 것을 보고 업계 전체가 가진 공무직에 대한 열망에 상당히 놀랐어요. 100%는 아니더라도 80%는 악단에 취업하고 싶어하더라고요. 그만큼 민간에서의 수익 활동이 안정적이지 않다는 것이겠죠.

또, 국악인들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얘기 중에 국악인의 포텐셜은 마흔셋부터 발현된다는 얘기가 있더라고요. 연차가 쌓여야만 음악적인 성숙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있는 것일까요? 세월에 깊이가 깊어지는 것이 자명한 사실이긴 하지만, 어렸을 때만 보여줄 수 있는 풋풋한 음악적 에너지가 분명히 있거든요. 저는 그걸 좀 발굴하여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대중 앞에 나서서 끼를 펼치고 싶어 하는 젊은 국악인들은 많은데, 그 프로세스를 이해하고 전략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더라고요. 그 부분에서 제가 도움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무아’의 뜻이 무엇인가요?

무아의 한자가 ‘없을 무(無)’‘나 아(我)’예요. 자기 존재가 없어지는 듯한 상태를 무아지경이라고 하죠. 제가 농악 가락을 좋아하는데, 국악 타악이 가진 요소 중에 사람들을 트랜스 상태로 몰고 가면서 무아지경에 이르게 하는 무언가가 있어요. 그런 초월의 의미를 담고 싶었어요.

다른 의미 하나는, 제 개인적인 성향에서 나온 것인데요. 저는 저 자신에 대한 관심이 적고 제 자신을 내세우는 편이 아니에요. 그보다는 상황을 관찰하고 그 상황에서 제가 타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을 채워주는 것에 큰 만족을 느껴요. 말하자면 ‘무아주의’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데, 이게 ‘이타주의’와 같은 말이거든요. 무아엔터테인먼트가 회사의 정체성을 앞세우기보다는 아티스트들을 제대로 뒷받침하고 음악계에 선한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담았어요.


이전까지는 원맨 밴드로 혼자 음악을 하다가 지금은 직접 결성한 팀의 리더로서 함께 ‘호흡’을 맞추는 음악을 하고 계세요. 혼자 하는 음악과 함께하는 음악. 어떤 차이가 있나요?

전 예전부터 음악을 제작하는 프로세스에 관심이 많았어요. 작곡 - 연주 - 녹음 - 믹싱 - 마스터링 - 퍼블리싱 - 발매까지의 전반적인 과정을 도와줄 사람은 없는데 관심은 있으니 혼자 해봤죠. 되긴 됐었어요. 근데 혼자하니까 지치더라고요. 되긴 되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들고, 시간을 쏟다 보니 뮤지션으로서의 시간이 모자랐어요.

혼자 하면 공들여서 한 작품 만들기는 쉬운데, 좋은 작품을 많이 내는 게 어려워요. 결국 그걸 가능케 하는 것은 협업이라고 생각해요. 솔로 가수더라도, 결국 음악 프로덕트를 생산해 내는데 여러 사람의 손길을 거치고 서로 호흡을 맞추잖아요. 빅밴드를 꾸린 것도 그 이유에요. 여러 사람과의 협업, 호흡, 그런 게 있어야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놀면서 만드는 거니까 음악에 ‘악樂’(즐거울 락)자가 붙어있는 게 아닐까요?

경성구락부

5. ‘무아’가 하는 일

무아엔터테인먼트의 사업을 소개해주세요.

저희가 하는 주된 일은 기획 및 매니지먼트, 콘텐츠 제작이고요. 저희 사무실에 국악기 전용 스튜디오가 준비되어있다 보니, 녹음, 믹싱, 마스터링의 외주 작업과 공간 대여사업을 병행하기도 해요. 요즘은 악기 케이스 같이 아티스트에게 필요한 여러 물품을 제작하는 굿즈 사업도 기획하고 있습니다.


어떤 아티스트가 소속되어있고 아티스트들과 어떤 그림을 그리는 중이신가요?

현재 활동 중인 아티스트로는 경성구락부, 소윤선 재즈트리오가 있고요. 걸그룹과 관현악단을 기획하고도 있어요.

처음엔 딱히 국악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는데, 우리 음악에 대체 불가능한 좋은 요소들이 있는데 굳이 안 쓸 이유가 없어서 국악인들과 계속 작업하게 되는 것 같아요. ‘국악’팀을 만드는 게 목표라기 보다는 좋은 음악팀을 만들고 싶어요.

음악적으로 보면 전통 국악 합주에는 화성이 없고, 거의 모든 부분이 유니즌, 헤테로포니로 연주되잖아요. 아티큘레이션도 저마다 다른데 그 미묘한 차이가 되게 멋지더라고요. 그래서 국악인들끼리 모여서 뭔가 할 때 멋짐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런 팀 워크 자체를 즐기는 중이에요.

결과물로서는 검증된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어요. 이미 존재하는 아이디어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재라던지 컨텐츠를 한스푼 얹는 것이죠. 이를테면 우리나라 대중이 익숙해하는 걸그룹, 밴드 등의 포맷에 국악 한스푼 정도?

(상) 경성구락부 / (하) 소윤선 재즈 트리오


유통 및 공연 판로 개척 전략이 있을까요?

일단 음원 유통에 있어서는 국악을 일상화하는 것이 메인 기조예요. 특수한 경우에 찾아듣는 국악이 아니라 거리를 걷다가 들을 수 있는, 일상 속에 스며든 국악. 이런 것을 목표로 저희 소속 아티스트들이 매년 앨범을 낼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고, 음원 뿐만 아니라 뮤직비디오라든지 다양한 채널로 유통을 하려 하고 있어요.

공연의 경우는 처음엔 판로를 개척했는데, 한 번 공연 보신 분들이 연속해서 불러주시고 다른 곳에 또 불러주셔서 파생된 기회들이 많아졌어요. 그게 공연 활동에서 정말 큰 힘이 돼요. 그래서 ‘모든 공연을 매번 최선을 다해 잘해야겠다’라는 다짐도 하고요.


본인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고 함께하는 사람들은 어떤 역할을 해주고 있나요?

개개인의 역할 분담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다 같이 시간을 내어서 의견을 교류하는 과정을 중시해요. 그래서 모든 업무 단계에 여러 구성원의 이야기를 듣죠.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른 생각들을 할 수 있잖아요. 그게 굉장히 소중하고 필요하거든요. 엔터테인먼트의 업무는 프로세스 자체가 어렵지는 않은데, 그걸 얼마나 잘 하느냐가 중요해요. 잘 하려면 다각도에서 보는 것이 필요하고 그게 다수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그 안에서 여러가지 시각을 가진 사람들과 의견을 조율하는 그 과정 자체가 즐겁고 예술로 느껴져요.


곡 작업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나요?

대부분은 제가 곡을 써서 악보를 배부하는데 곡에 약간 빈틈을 만든 상태로 줘요. 곡자의 손을 떠난 곡은 지휘와 연주자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애초에 그걸 받아들이고 아예 연주자가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편이에요.


무아엔터테인먼트만의 색깔이 있을까요? 어떤 아티스트를 원하시나요?

제가 만들고 싶은 그림이야 당연히 있고 무아의 색깔이라고 하는 것도 있는데, 다만 그 색깔이 약간 투명색 같은 거예요. 전 아티스트 본연이 가지고 있는 개성을 대면하는걸 좋아해요. 그들이 가지고있는 음악관이나 좋아하는 음악과 같은 것들을 살리고 그 위에 투명하게 코팅을 해주는 거죠.

최근에 만난 분 중에 굉장히 열의에 차 있으면서 음악에 본인만의 색이 있는 연주자가 있었는데, 그 매력을 살리는 방향으로 팀 하나를 기획하고 있어요. 전 그 분에게서 가야금의 터치법에서 나오는 개성을 발견하였는데, 대중들에게는 아마 이런 게 생소할지 몰라요.

십 년 전까지만 해도 대중들이 ‘춤선’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잖아요? 그런데 요즘 ‘스우파’ 같은 예능을 통해 춤이 메인 스트림이 되면서 그게 예술성을 평가하는 기준 중 하나가 되었죠. 이처럼 국악 아티스트가 가진 어떤 특수한 예술성을 논박할 수 있는 장이 대중으로부터 형성된다면 무아엔터테인먼트를 포함한 국악 업계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따라서 저는 기획이라는 이름 아래 아티스트의 개성을 덮어버리고 싶진 않고, 두터운 투명색의 무언가로 잘 포장해주고 싶어요. 그래서 그 개성이 대중에게 더 잘 다가가길 바라고 있어요.


국악에 K-Pop 시스템을 도입하신다고 들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시스템인지 궁금해요.

K-Pop의 비즈니스 모델링을 벤치마킹하고 싶어요. 대부분의 산업은 양적 성장이후에 질적 성장이 따라오는데, 국악은 질적으로 성장해있지만 양적으로는 성장이 정체되어있어요. 양적 성장을 폭발적으로 일으킨 선례가 K-Pop이고 그 시스템을 도입하면 국악계에도 양적 성장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K-Pop 시장의 작곡 시스템이 가장 대표적인 예인데, 작곡이 완전 협업으로 돌아가거든요. 멜로디를 쓰는 탑 라이너와 그 외에 편곡 및 사운드를 만드는 트랙메이커로 양분되어있는데, 작곡가마다 강점을 가진 부분이 다르기 때문에 굉장히 합리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국악에는 기막힌 선율들이 많거든요. 우리 조상님들이 최고의 탑 라이너인 것이죠. 작곡가들 사이에서 시쳇말로 ‘기깔나는 탑라인 앞에 장사 없다’라는 말이 있어요. 즉 국악 작업을 한다는 것은 조선 왕조의 유구한 역사, 세종대왕이라는 탑라이너와 협업하는 셈이라고 할 수 있죠.


공간 사업은 어떻게 하시게 된 건가요?

일단 스튜디오를 만들게 된 것은 작게는 밴드, 크게는 관현악팀까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서였어요. 소속 아티스트들이 자유롭게 연습하고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음악적 발전이 있을 테니까요.

공간대여 사업을 하게 된 것은 저희가 소셜벤처예비사회적기업이니까 국고에서 받은 지원을 지역사회에 이바지하는 차원에서 문화공간을 원하는 시민들에게 열어주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되었어요.

스튜디오 대관이나 녹음 외주 등의 사업도 하는데요. 무아의 스튜디오는 방별로 악기에 필요한 룸 어쿠스틱을 다 다르게 해서 전선 링크를 만들어 놓았어요. 사실 이런 시스템이 대중음악계에서는 새로운 것은 아니에요. 5층짜리 건물에 층마다 룸 어쿠스틱이 다른 스튜디오도 있어요. 국악도 과학의 영역에 있어서 최신의 것을 따라야죠.


굿즈 사업에 관해서도 소개해주세요.

굿즈는 엔터테인먼트에서 일종의 팬서비스 차원으로 해야 할 사업이에요.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음악과 산업이 있는 거잖아요. 굿즈는 팬덤이 소속감을 느끼고 애착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상징적인 무언가인데, 그런 맥락으로 당연히 엔터에서 신경 써야 할 한 요소이죠.

현재 시점에서 국악의 최다 소비자는 국악인이거든요. 그래서 그들에게 필요한 굿즈가 무엇일까 고민했는데 악기 케이스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완충재 없이 얇은 천으로 된 케이스가 대부분이더라고요. 저희는 튼튼하면서도 가벼운 악기 케이스를 만들고 있고, 다음주 중에 거문고, 가야금 케이스 시제품이 나올 것 같아요.


현재까지의 성과를 자랑한다면?

저희가 만든 첫번째 팀, ‘경성구락부’가 일년만에 음악적으로 경제적으로 자립하게 되었다는 것이 가장 괄목할 만한 성과라고 생각해요. 다음 달에는 정가 하는 의선씨와 함께하는 앨범이 나올 거고, 소속 아티스트로서 계속 활동 할 것 같아요. 소윤선 재즈 트리오도 다음달 부터 공연활동 예정이고요.

6. 한승민의 시선 _ “See 先(먼저 선)

국악 시장의 현재를 평가한다면?

대중 음악 시장 규모가 5,000억이 넘어가는데 국악이 차지하는게 17억 정도? 1%도 안 되는 비율이에요. 누구는 통계일 뿐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통계가 전부고 현실이고 실제예요. 제 생각에는 17억이란 금액은 업계 1위 플레이어의 연봉으로도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삼성 사장님 연봉이 17억이면 너무 적잖아요. 추신수 연봉이 17억이면 아무도 야구하려고 안 할거예요. '국악의 본 고장인 이곳에서 왜 시장 규모가 17억일까, 이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분석해 봤어요. 21개 정도 되는 국악대학에서 매년 800명 정도 졸업하는 것 같아요. 현역 국악인들의 활동 기간을 가장 적게 잡아도 20살부터 60살까지 40년 활동한다고 치면, 현시점에 활동 중인 국악인이 대략 4만 명에서 5만 명 정도 되는 것 같거든요. 나누기 17억 하면 평균 연봉 1,100만 원이에요. 물론 그 중 억대 연봉이신 분도 계시겠죠? 그분들을 국악인 중 10%라고 치면, 나머지 90%가 연봉 70만 원 정도라는 계산이 나와요.


국악 시장의 확장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지 궁금해요.

저는 이 시장의 확장을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나누어 생각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첫째는 국악 본연의 확장이고, 둘째는 크로스 오버를 통한 확장이에요.

‘국악’이란 용어 자체가 참 애매하긴 하지만, 우리가 통상적으로 ‘국악’으로 느끼는 범주의 음악들을 스펙트럼으로 나열한다고 해볼게요. 오른쪽 끝에 국립국악원 정악단이 있다고 치면, 왼쪽 끝에는 서도밴드 같은 퓨전 팀이 있을 수 있겠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면서 경성구락부, 억스, 이날치, 씽씽밴드, 잠비나이, 고래야 등의 팀이 있겠고요. 좀 더 가면 상자루, 불세출이 있겠죠. 국악인들은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대중들에게는 이 모든 게 국악으로 인식되거든요. 스펙트럼의 여러 부분에서 양적으로 더 확장되고 두터워져야 해요. 요즘 만들어지는 새로운 ‘산조’처럼 전통 국악에 좀 더 가까운 창작 음악이 많이 등장하면 국악인들도 ‘국악’이라고 느끼는 범주가 넓어질 수 있겠고요. 국악 본연의 범주를 늘려주는 것과 국악을 개량하는 것 이렇게 투 트랙으로 나눠 전략적으로 국악인들이 움직이면 해답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대중 음악 시장에 국악에 대한 수요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건 유수한 K-Pop에 국악이 들어가는 것으로 증명이 이미 된 사실이라고 생각해요. 국악이 대중 음악에 진출하는 것은 필수 불가결이고 그걸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나서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해서 일단 대중들을 국악에 입문시키면, 분명히 그들의 관심이 전통 국악쪽으로도 확장되리라 생각해요.

7. 한승민의 시선 _ “See 善(착할 선)

전반적으로 가지고 계신 가치관과 삶의 방향이 '선한 영향력'과 관계가 있는 듯 보여요.

저는 스스로에 대한 연민이 있었어요. '좀 더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더라면, 시장의 상황이 달랐다면 조금 더 잘 될 수 있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그 아쉬웠던 지점을 지금 자라나는 누군가에게 적용할 뿐이에요. 저도 소박한 걸 바랐던 것 같거든요. '좋은 스피커랑 컴퓨터 하나만 있었으면 좋겠다' 뭐 이런 거요.

'선'이라기보다는 '책임감'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영향을 끼친다는 관점에서 봤을 때는 제 입으로 ‘선한’ 영향력이라고 말하는 게 조금은 부끄러워요. 선해지려고 하는 일은 아니고 책임지는 삶을 살자는 생각에서 하는 일이라서요. 국악인들에게 포텐셜이 있는 만큼 일부분에서 제가 책임을 다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하고 싶어요. 그럼 나중에 제 음악에도 이들이 도움을 주지 않을까요? 이렇게 주고받는 게 선순환을 일으키면 그게 선한 영향력이라는 생각은 해요.


한승민에게 음악이란? 음악 없이 살 수 있나요?

음악 없이 못 살 것 같지는 않지만 음악이 ‘시공간을 지배한다’는 그 지점이 좋아서 계속할 것 같아요. 제가 처음에 음악을 좋아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고, 지금도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에요. 이를테면 카페에서 무슨 음악이 나오느냐에 따라서 공간의 이미지와 분위기가 달라지잖아요.

저는 제가 듣고 싶은 소리가 있는데, 그게 시장에 없으면 그 소리를 작곡해요. 즉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편인데 그게 우연히 다른 사람에게도 좋게 들리면 좋은 것이라는 주의예요.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을 위해 곡을 써 주었을 때, 그게 그 연주자에게 잘 들어 맞으면 엄청 뿌듯해요. 그래서 제 곡을 ‘누가 연주 하느냐’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 개인 앨범도 작업 중이에요. 거의 완성 되었어요.


이 글을 읽게 될 국악 아티스트나 기업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국악인들한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저항정신을 가져라”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투쟁하는 장르가 메인스트림이 되는 거 아세요? 힙합의 역사도 투쟁이잖아요. 역사적으로 국악도 투쟁과 관련한 음악이었잖아요. 이제는 국악인들도 진짜 민요를 해야죠. 지금의 민요는 그냥 옛날 노래예요. 현시대 민중의 음악을 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지금처럼 음악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들을 발현하는 시도가 끊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를테면 이날치가 잘 되면 국악 시장이 전체적으로 확장되는거잖아요. 우리가 모두 동업자 정신을 가지고 서로의 음악을 응원하고 시도하고 나아갔으면 좋겠어요.

업계에 어떠한 문제가 있다고 인지했을 때 고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처한 상황에 굴복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특히 국악계에 후자의 방식으로 대처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국악인이 국악으로 홀로서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고 거기에 무아엔터테인먼트가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