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거진이 만난 사람들

새로운 음악을 위한 시공간 - 음악공간 “중력장” 대표 이용석 인터뷰

동시대의 음악을 담아내는 기획자, 작곡가, 그리고 사업가 이용석의 꿈

1년 전|Estel

영상보다, 어쩌면 음원보다도 음악의 “근본”인 이것, 무엇일까요? 바로 공연입니다.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비교적 최근 등장한 앞의 두 매체와 달리, 공연은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뮤지션과 관객이 같은 공간에서 가장 직접적이고 친밀하게 소통하는 창구였죠.

그렇다면 음악의 근본인 공연이 이루어지는 장소 공연장 역시 뮤지션에게 굳건한 “근본” 아닐까요? 장르와 관객에 따라 공연장의 규모와 주요 장치가 달라지고, 때로는 공연장이 하나의 음악 장르를 지지하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번 인터뷰에서는 ‘낯설지만 좋은’ 음악을 지지하는 ‘낯설지만 좋은’ 공연장, 즉흥 및 실험 음악의 명소로 떠오르는 “중력장”의 이용석 대표와 함께 공연장과 공연에 대한 이야기 나눠보았습니다.

이용석

미래의 음악 형식과 연주 형태 등을 탐구한다. 작, 편곡에 있어 한국과 유럽의 전통적인 악기들과 현대의 기술이 융합되어 만들어내는 새로운 방향의 음악을 지향한다. 동작구 흑석동의 음악공간 중력장을 운영하며 동시대음악을 지속적으로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꾸준히 만들어낸다.

중력장(물리) 파헤치듯
중력장(공연장) 파헤치기

‘중력장’이라는 공연장 이름이 인상적이에요. 이름을 어떻게 짓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음악의 시간성에 대한 고민에서 기원한 이름입니다. (웃음) 음악이 가지고 있는 시간성, 그 시간이 가지고 있는 다중성, 음악적 시간과 원래 우리가 생각하는 시간과의 다른 점…
음악에 따라서 달라지는 음악적 시공간의 체험이, 물리학에서 중력장에 들어갔을 때 달라지는 시공간의 상황과 이어지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이 공연장에서 이루어지는 음악이, 마치 중력장처럼,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공간을 감각하게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름을 중력장이라고 지었습니다.


중력장에서 주관하는 기획 공연의 이름들에서도 대표님의 물리학 사랑이 돋보이는데요.

맞아요. (웃음) 현재 “파동 입자”, “사상 지평”, “스윙 바이” 세 가지 기획 공연 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모두 천체물리학이나 양자역학에서 쓰이는 단어들에서 착안했어요.

“파동 입자”에서는 빛이 파동이면서 입자인 이중성을 지닌 것처럼 이중적인 장르들이 결합된 음악을 다룹니다. “사상 지평”은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처럼,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하는 곳으로 건너가는 경계로서 실험적인 음악들을 위한 기획이고요. “스윙 바이”는 중력을 이용해서 어디론가 날아가는 용어인데 이것을 재즈의 스윙과 결합해서,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는 즉흥 연주 시리즈로 기획하여 진행하고 있어요.

중력장. 흑석동 소재. 30석 규모의 라이브 퍼포먼스 공연장이다.


벌써부터 중력장이 ‘흔치 않은’ 공연장이라는 느낌이 오는 것 같아요. 이중 장르, 실험 음악, 즉흥 연주 등 다른 공연장에서 보기 어려운 ‘흔치 않은’ 레퍼토리를 다루게 된 내력이 궁금해요.

공연장을 개관하고 얼마 안 되어 오픈 콜을 했을 때, 실험과 즉흥 음악 하시는 분들이 많이 지원하셨어요. 어마어마한 스펙을 지니신 분들이 오픈 콜에 지원하셔서 놀랐죠. 그런데 그분들 입장에서는 그동안 이런 음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던 거예요. 예술의 전당에 가서 연주할 수도 없고 미술관이나 대안 공간을 구해야 하는데 그러자면 대관에 소요되는 에너지가 크고요.

이런 뮤지션들의 수요가 있다는 걸 깨달았고, 거기에서 세 가지 기획 시리즈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기존 제도권 무대에 오르기 어려운 음악 위주로 기획 공연을 만들어서 이러한 음악과 뮤지션들을 프로모션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비주류 음악 전문 공연장으로서 중력장은 의미가 큰 장소인데, 어떤 관객을 대상으로 하고 있나요?

관객에 대한 고민은 현재진행형이에요. 로컬 관객이 확보되면 좋겠지만, 중력장의 공연 내용이 대중적으로 즐기기 쉽지는 않으니까요. 우선은 예술인들, 그리고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오면 좋겠어요. 이러한 음악들에 대한 얼리어답터를 개발해서 꾸준히 중력장을 찾는 관객층을 확보하는 게 목표입니다.


중력장에서 공연을 관람할 때, 선명하면서도 조화로운 음향이 인상적이었어요.

가깝게 들리는 울림, 개별 악기들이 뚜렷하게 들리면서 서로 블렌딩이 되는 음향이 중력장의 장점이에요. 연주자 분들이 오셔서 연주하고는 놀라십니다. (웃음) 가변형 흡음재 등 공간을 직접 설계했고, 음향 장치를 그때그때 조절하면서 개별 공연마다 최적의 음향을 만들어내려고 해요.



중력장에서 이루어진 공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을까요?

좋은 공연이 여럿 있었어요. 지금 떠오르는 공연은 “사상 지평” 시리즈 중 오의진 피아니스트의 <벡사시옹(VEXATIONS)>이에요. <벡사시옹>은 작곡가 에릭 사티의 곡인데, 완주하는 데 21시간이 걸려요. 이걸 오의진 피아니스트가 중력장에서 한국 초연으로 완주하였습니다. 이 연주를 위해서 피아니스트가 사흘 전부터 단식했어요. 연주 도중 화장실에 가면 안 되니까. 인터미션도 없었고요.

21시간 동안 쭉 완주를 하고, 앙코르로 작곡가 마이클 피니시의 작품을 두 곡 연주했죠. 관객 분들은 21시간 동안 들고 나면서, 마지막 즈음에 일부러 오셔서 함께 축하해 주기도 하셨어요. 유튜브에서 라이브 스트리밍도 진행했는데, 총 조회 수가 1300회 정도 나왔어요. 동시 시청은 최대 70명까지 나왔던 것 같아요. 무료로 진행한 공연이었는데 후원금이 유료로 진행한 것만큼 많이 들어왔던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중력장(공연장) 파헤치듯
중력장 대표(이용석) 파헤치기

중력장이 올해(2022년) 4월에 개관했잖아요. 그 전까지 대표님께서는 뭘 하고 계셨나요?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작곡을 전공해서 대학원까지 공부했습니다. 소위 말하는 ‘현대음악’ 서양 전통 악기로 만드는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왔어요. 대학 때부터는 국악인들과 가까워지면서 국악기를 사용하는 창작국악 작업도 지속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최근까지 오케스트레이션 등 편곡 작업도 많이 했는데, 공연장 사업을 시작하면서 이쪽은 조금 줄이고 있는 상황이에요.


창작 활동을 하시던 중 어떤 계기로 공연장을 설립하시게 되었나요?

원래는 이 공간을 팀 스튜디오로 사용하려고 인수했어요. 그러다가 저 혼자 이 공간을 운영하게 되면서, 연습실로 운영할지 대관장소로 운영할지 등 여러 선택지를 놓고 고민했는데요. 홀이 하나뿐인 공간 특성, 엘리베이터나 주차 문제 등 주변 환경으로 인해, 단순히 연습이나 대관 장소로만 운영하면 수익이 나지 않을 거라는 현실적인 이유때문이었어요.

그런데 저는 학부생 시절부터 혼자서 사용하는 작업 공간이 아닌,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네트워킹 플레이스, 연주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로망이 있었거든요. 그때는 군대도 다녀와야 했고 자금도 부족해서 실현하지는 못했는데 이제는 추진할 수 있는 환경과 힘이 마련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공간에서 재미난 것을 하고, 그것을 브랜딩하는 공연장을 만들자! 그렇게 중력장이 만들어졌습니다.


중력장이 ‘낯선 음악의 장’으로 자리매김한 이유 중 창작자로서 대표님의 고민이 녹아든 부분도 있는지요?

그렇죠. 사실 현대음악의 창작은 주로 공모에 의해 이루어져요. 재단 공모, 연주 단체 공모… 공모에 선택이 되어서 나의 곡이 연주되어도 나에게 딱히 수익이 되지 않고요. 공모 기관별로 원하는 음악 스타일이 있는데, 물론 이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고 당연한 것이기도 해요. 다만 그렇게 특정 음악 스타일이 권위를 가지고 지배적이게 되는 분위기, 다양성이 사라지는 분위기가 있다고 생각해요.

공모나 지원 사업에 열심히 임한다고 내가 원하는 음악을 진짜로 할 수 있는가? 의문이 들었고, 저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현대음악이지만 현재 제도권의 주류에 들지 않거나, 제도권 내에 있더라도 무언가 다른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음악을 찾아서 공연을 기획하려고 했어요. 그렇게 오픈 콜을 해 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은 장르 스펙트럼에서 음악인들이 공연에 목말라한다는 걸 확인했죠.


공연장 운영에는 적잖은 비용이 드는 것으로 아는데… 괜찮으신가요?

적자입니다. (웃음) 그렇지만 안 벌지는 않습니다. 공연 수익과 대관 수익으로 월세는 커버할 수 있는 정도로 버는 것 같아요. 올해는 중력장을 개관한 첫 해여서, 사실 1년 내내 프로모션 한다고 생각하고 기획공연 시리즈에 투자하고 있어요.

향후 수익모델은 교육프로그램과 대중적인 지역 행사를 개발하는 쪽으로 구축하려 해요. 중력장 옥상이 참 예쁜데, 동작문화재단 같은 기관과 논의하여 이곳에서 흑석동 위주의 사업을 진행하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또 중력장에서 공연을 한 아티스트 분들을 외부 행사와 연결을 한다거나, 제가 직접 외부 행사를 운영한다거나 하는 식으로도 수익을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중력장에서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될 생각은 없어요. (웃음) 월세와 운영비 정도 커버하면 딱 좋겠고, 그렇게 오래오래 유지하고 싶고, 그것을 목표로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는 중입니다.


어떤 계획인지 살짝 알려주실 수 있나요?

기획공연을 다원화하고, 신인 예술가들에게 작업 공간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생각 중이에요.

페이퍼 컴포저(악보로 작곡하는 작곡가)를 위한 기획도 하고 싶어요. 퍼포먼스 컴포저(연주와 작곡을 겸하는 뮤지션)는 공연이 생기면 자기가 무대에 서는데, 페이퍼 컴포저의 경우는 연주자를 따로 섭외해야 하는 상황이 인력적으로나 금전적으로 부담이 되잖아요. 그래서 작곡가들과 연주자들을 동시에 모아, 중력장에서 공연하고 티켓 수입을 배분하는 기획이 구상 중입니다. 유튜브 영상 콘텐츠를 만들어서 프로모션에 활용할 계획도 있고요.

작곡가와 사업가. 창작자와 기획자. 닮은 듯 다른 두 개의 자아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신 것 같아요.

두 개의 자아 모두 저에게 중요해서 밸런스를 잘 맞추며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둘 중 하나를 놓으면 문제가 생겨요. 예를 들어 사업을 놓으면 생계가 어려워지고 창작을 놓으면 마음이 못생겨져요. (웃음) 창작하는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배가 아프더라고요. 그런 열등감이 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치고요. 그래서 어느 하나의 자아로 지나치게 치우치지 않도록, 시간을 더 쪼개서라도 생계와 감정을 모두 건강하게 가져가려 합니다.

또 이런 내적인 동기뿐 아니라 기획과 창작을 동시에 하는 게 서로에게 시너지가 되어요. 기획을 하면서 여러 아티스트를 만나는 것이 창작을 위한 동력이 되고, 창작을 하면서 아티스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공연장을 운영하며 만나는 아티스트에게 더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디딤돌이 되거든요. 기획에서도, 창작에서도 다양한 관점을 익히고 취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인 것 같아요.


궁극적으로 중력장을 어떤 공간으로 만들고 싶으신가요?

슬로건이 ‘새로운 음악을 위한 시공간’이에요. 새로 태어나는 음악들을 1차로 발표할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좋겠어요. 예술가 분들이 이곳에서 부담 없이 작품을 선보이고, 얼리어답터 관객들에게 피드백을 받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디벨롭하여 지원사업 등에서 좋은 결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선순환을 만들고 싶어요. 그런 인큐베이터 공간, 프로모션 공간으로 중력장을 브랜딩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뮤지션 이용석의 포부는?

월드 투어를 하는 아티스트가 되는 것입니다. (웃음) 아직 제 음악적 색깔을 찾는 과정 중에 있어요. 우선은 이전 세대 음악이 아닌 동시대 음악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유럽이나 미국에 휩쓸리지 않는, 내가 지금 이 시점에, 2020년대 서울에서 만들 수 있는 음악이 무엇일까 고민 중이에요. 그 과정에서 클래식이나 오케스트라 등 특정 장르나 포맷에 갇히고 싶지는 않고요.

현재는 국악과 라이브 일렉트로닉스를 결합한 앰비언트 뮤직인가 싶은 무언가를 하고 있는데요. 여기서 시작해서 국악기와 서양악기와 대중음악이라고 일컬어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 전자음악까지 한데 섞어 잡탕(!)이 되는 음악을 계속 만들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