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인 노트

30살에 음악 시작하기

스스로를 음악인이라 소개할 수 있기까지

1년 전|싱어송라이터 성하진

싱어송라이터 성하진님께서 뮤지트에 올려주신 글을 재구성하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싱어송라이터 성하진입니다.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하기까지 약 5년정도 걸린 것 같네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안녕하세요, 성하진입니다. 음악같은 것 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라고 소개했었는데 말이죠.

스스로를 아티스트라 소개할 수 있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역시 정규 앨범의 발매이지 싶습니다. 비록 홈레코딩에다가 완전한 1인 제작과정을 거쳤기에 아쉬운 점이 많지만, 총 20곡이 수록된 싱어송라이터 정규 앨범을 만든다는 건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짐작하셨겠지만 저는 음악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음악 무지렁이가 어떻게 앨범까지 발매하게 되었는지 그 이야기를 짧게나마 소개드려볼까 하여 펜을 들었습니다 (사실 키보드를 잡았습니다).

1부. 비음악인

저는 저의 20대를, ‘평생 업’을 찾는 일에 모두 쏟아붓기로 작심했습니다. 앞자리가 3이 되는 날부터 그 일을, 혹은 그 일을 위한 준비를 하려고 말이죠. 그래서인지 사람도 많이 만나고, 다양한 일도 해보고, 못 볼 꼴도 많이 보고, 아름답고 예쁜 것도 많이 봤습니다. 다양한 일이나 아르바이트는 물론이고 음악, 연기, 글쓰기 등 조금씩이라도 안 건드려본 것이 없을 정도로 이것저것 시도해 봤습니다. 그리고 맞이한 스물 아홉의 12월, 결국 저는 음악을 평생의 업으로 결정했고, 결정 직후 가장 먼저 한 일은 해외로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2부. 버스킹 여행

뭐 거창한 세계 여행이나 명문음대 유학 같은 건 아니었고, 그냥 호주 워킹홀리데이였습니다. 하지만 마냥 놀러 간 것은 아니고, 분명한 목표가 있었어요! 당시엔 길거리 출신 아티스트라는 타이틀이 멋지다고 생각했었는지, 버스킹 여행을 다니려고 했습니다. 할 줄 아는 연주는 기타 기본코드 반주에, 노래방이나 가끔 다니던 보컬, 아는 음악 이론은 기초 이하의 화성학 정도밖에 없었는데 말이죠.

버스킹의 도시로 유명한 호주의 멜번에 도착한 날 밤, 우연인지 운명인지 워너비의 모습을 갖춘 버스커가 공연하는 것을 봤습니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라고 생각은 했지만, 우선은 일을 구하는 것이 시급했습니다. 약 1개월치 생활비밖에 들고 가지 않았거든요.

어찌저찌 레스토랑 일을 구해서 일을 시작했고, 일하는 틈틈이 화성학 공부나 기타 지판 외우기, 머릿속으로 음정 문제 풀기와 같은 공부들을 했고, 열심히 돈을 모았고, 결국 기타를 샀습니다.

하지만 ‘와아! 이제 나도 버스킹 할 수 있다!’, ‘나도 이제 도착한 날 봤던 버스커처럼 할 수 있겠다!’는 상상도 잠시, 공연을 하려면 허가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허가증을 받으려면 교육을 이수해야 하는데, 그 교육 일정이 앞으로 3개월정도 자리가 꽉 찼다는 정보도 함께 말이죠.

그래서 저는 다시 한 번 떠나기로 했습니다. 일정을 기다렸다가 교육도 받고 시내에서 버스킹하는 것도 좋지만, 아예 자연에 파묻힌 로드트립 버스킹 여행도 재밌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마침 일도 너무 손에 익어서 슬슬 매너리즘에 빠지려던 때였습니다.

멜번 남부에서 커다란 배를 타고 약 8시간이면 호주 최남단의 섬, 타즈매니아에 갈 수 있습니다. 저는 다음 목적지를 이 곳으로 정했어요. 고대의 자연이 그대로 살아 숨쉰다기에 더욱 설레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중고차를 샀고, 일할 수 있는 농장을 찾아다님과 동시에 앰프, 마이크 스탠드 등의 장비를 구했습니다. 버스킹 허가에 대해 알아보거나 시청에 방문해 오디션을 보기도 했습니다. 결국 멜번에서 하지 못했던 버스킹을 타즈매니아에서 신나게 하고 다닐 수 있었죠.

비현실적인 풍경의 아름다운 자연을 보러 다니며, 때로는 야생 캥거루 집단이 얼마나 무서운지도 느껴보고, 오로라를 보겠다며 덜덜 떨며 차박을 하거나.. 그렇게 지냈습니다 (이 때 덜덜 떨면서 썼던 멜로디는 지금도 선명히 기억에 남아있네요). 물론 이렇게 지내는 와중에도 화성학 독학이나 기타 연습, 자작곡 써보기 같은 것들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3부. 귀국, 음악 관련 일

많은 일들을 뒤로 하고 무사히 귀국한 직후,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겠다고 말이죠. 제일 먼저 했던 일은 한 평생대학원의 조교 일이었습니다. 교수님이 미디어, 마케팅, 콘텐츠, 이런 쪽에 관심이 많은 분이었는데, 독립영화 제작도 하시더라구요. 제작 미팅 중 제가 음악을 한다는 걸 들은 감독님께서 시나리오에 어울리는 곡을 한 번 만들어보라고 하셨고, 만들어서 들려드렸더니 마음에 들어하시며 결국 ‘남을 위한 첫 음악 작업’을 그렇게 해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약하지 않은 업무 강도 탓에, 오래 일하지는 못했습니다.

다음 직장으로는 작은 음반기획사에 입사했는데, 여기서 A&R에 대한 기초 지식이나 음악 산업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을 키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맘때 홍대 인근에서 갓 음악을 시작하거나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그룹을 나눠 간단한 트레이닝 후 발표식 공연을 올리는 프로젝트 그룹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영화제작팀에서 알게 된, 마음 맞는 몇 분들과 무용+영상팀을 꾸리기도 했어요. 하지만 회사에서는 남의 아티스트를 키우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런저런 프로젝트들에선 나는 음악적으로 준비가 너무 안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일도, 프로젝트도 모두 정리했습니다.

4부. 스타벅스

‘나의 음악’을 하려고 마음을 먹고, 저는 스타벅스에 입사 지원을 했어요. 왜냐면, 하루에 5시간만 일하면 된다고 해서요 (면접때 실제로 한 말). 최소한의 생활비만 벌며 음악적 성장에 더욱 집중하려는 전략이었습니다. 함께 일하던 파트너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입사 초기의 저는 매장 일에 적응하기까지 한참 걸렸습니다. 다들 한 두 번이면 통과하는 레시피 시험도 4번인가 봤고, 일도 힘을 빼고 했거든요. 집에 가서 공부하고 작업하는 에너지가 제겐 훨씬 더 중요했습니다.

친구들을 만나는 시간도 줄이고, 이런 저런 강의도 많이 찾아보는 등 나름 열심히 준비했던 것 같습니다. 휴가를 한 번도 안 쓰다가, 1년치 휴가를 한 번에 몰아 쓰기도 했습니다. 아예 월세 작업실을 구해서, 틀어박혀서 2주간 작업만 하려고요. 그런데 이 때 결과물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무슨 짓을 해도, 아무리 머리를 쥐어 짜내도 그럴듯한 음악은 커녕 스케치 이하 퀄리티의 작업물만 쌓여갔습니다.

나름 열심히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물이 이러니 급속도로 우울해졌었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작정했던 휴가는 끝났고, 다시 일은 시작했지만 다시금 방황이 가까워짐을 예감하고 있던 어느 날, 출근 시간이 아슬아슬해서 급히 나갈 준비를 하다가 소파에 찧은 발가락이 부러졌습니다. 서서 날아다녀야(?)하는 업무 특성상, 일 자체를 할 수가 없어 2달을 쉬었습니다.

몸이 고요해지니 생각이 안으로 파고들었습니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제대로 된 커리큘럼을 겪어보지 않고 중구난방, 마구잡이식으로 공부해온 모래성과 같은 저의 음악 실력에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어요.

5부. 대학원

그래서 결정했습니다. 제대로 배워보기로! 이 결정엔 ‘나는 음악을 배워본 적 없으니까’라는 자기합리화를 깨부술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한 몫 했습니다. 그래서 비전공자인 제가 입학할 수 있으며 당시의 제게 가장 필요한 커리큘럼과 수강 과목이 있는 학교를 찾아봤고, 시험과 면접을 열심히 준비했고, 작곡 시험과 면접을 치뤘고, 덜컥 합격했습니다. 진짜 될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는데, 되더라고요. 아마 교수님 보시기에는 발에 깁스를 한 채로 머리는 장발을 해선 절뚝거리며 면접장에 들어오는 모습이 신기해서 합격시켜주신 걸지도 모르겠네요.

스타벅스를 퇴사하고, 그렇게 2년간 배우고, 공부하고, 연습하고, 작업하며 음악에 푹 빠져서, 아니, 음악에 푹 절여져서 살았습니다. 그 어떤 수업도 쉽지 않았습니다. 고급 화성학, 스트링 편곡법, 트렌디 뮤직 제작실습, ... 모든 수업이 어렵고 고통스러웠지만, 결국 학기중에 논문까지 써내 통과하며 제때 졸업을 하게 되었죠.

6부. 정규 앨범 준비

대학원에 다니며 싱글도 수 회 발매해 보고, 이런저런 음악적 경험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음악 하려는 사람’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더군요. 이런저런 지원사업이나 공모전을 시도해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알맹이 없는 소리만 늘어놓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제가 써온 곡을 정리해, 정규 앨범을 발매하여 스스로를 한 번 정의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스타일의 음악을 하게 될지 여전히 정해지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이런 걸 해왔다고 제대로 남겨둬야 다음 걸음을 밟아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2022년엔 앨범 제작에 집중했습니다. 총 10곡의 데모, 혹은 스케치한 곡을 발전시키고 수정하여 완성했습니다. 그리고 곡 자체는 10곡이지만 한글/영어 버전으로 나누어 녹음해 총 20곡을 수록했습니다. 대략 한 곡당 1개월로 잡으니 딱 1년을 쓰게 되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완성한 정규 앨범이 2023년 1월 6일에 발매되었답니다! 앨범 제목은 ‘안녕부터 안녕까지’이고, 타이틀 곡 제목은 ‘장르가 어떻게 되세요?’입니다. 여기서 홍보까지 할 생각은 없었지만! 많관부, 만괂부!

7부. 싱어송라이터

그리고 앨범 제작이 마무리되어가던 중, 뮤지트 연말 파티에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후달리지만(?) 그래도 나름, 이제는 스스로를 ‘싱어송라이터’라고 소개할 수 있게 된 자신이 대견했어요. 자기소개 시간에 공연이나 노래가 아닌, 이 글에서 했던 이야기를 말로 읊기만 해서 조금 아쉽긴 했습니다만 내년이나 내후년 모임에선, 저도 다른 분들처럼 ‘제 자작곡입니다! 편안히 감상해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도록, 2023년은 더욱 치열하고 열정적으로, 꾸준히 준비해나갈 생각입니다.

짧지 않은 글인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볼만하셨을지 모르겠네요. 꽤나 요약되긴 했지만, 제게는 그저 제 궤적일 뿐인 이 이야기가 어떤 분들에겐 재밌고 신선하게 다가올 수도 있겠다는 걸, 뮤지트에서 다른 분들을 직접 만나며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용기내어 글을 써 봤어요.

정규 앨범의 발매 이후, 앞으로는 연습, 공연, 공부, 작업, 유튜브를 하며 지낼 예정입니다. 음악과 콘텐츠만으로 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지속 가능한 창작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이 지금의 목표예요! 그렇게 이어지는 저의 7부 이야기를, 앞으로는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고 싶습니다. 교류나 소통은 언제든 환영입니다! 편하게 연락 주세요. 꼭 협업이나 프로젝트가 아니어도, 그냥 음악이나 작업 이야기 좋아하는 친구가 필요해서여도 좋습니다. 저도 다양한 분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전체 글 한 줄 요약과, 제 유튜브 채널 링크 소개와 함께 글을 마무리지으려 합니다(채널에 인스타 링크도 있어요). 우리 모두의 꿈과 미래를 응원합니다! 같이 힘내봐요! 감사합니다!

한 줄 요약 : ‘이렇게 음악하는 사람도 있답니다!’

싱송성하진SingSongSungHaJin
https://www.youtube.com/@singsongsunghaj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