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를 하면서 바이올린을 연주한다고?! 데뷔 무대 <오즈예고>로 신선한 도전장을 내민 젊은 클래식 음악 팀 페아토(Featto). 재기발랄함 속 연륜(?)이 느껴지는 깊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장세은, 한예진, 권예성이 만들어갈 이야기 속으로!
페아토 팀을 간단히 소개해주시겠어요?
한: 안녕하세요. 저희는 관객에게 동화와 클래식 음악을 통해 관객들에게 선물 같은 시간을 드리고자 하는, 그래서 관객과 ‘동화’되고자하는 ‘페아토’입니다.
어떻게 팀을 결성하게되었나요?
한: 저희는 한 연주단체에서 앙상블 활동을 하다가 만났어요.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클래식 음악계에 관해, 우리의 미래에 관해 생각하는 관점이 서로 비슷하여 의기투합하게 되었죠.
장: 연습과 노력이 경제적인 보상으로 돌아오지 않는 것에 대한 한탄을 나누다가 이것의 해결 방안을 같이 고안하게 되었어요. 여러 선생님, 선배님들이 해오신 다양한 시도와 훌륭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클래식 시장이 더 좁아지고 있고, 연주자 페이는 20년 전과 같잖아요. 그러면 ‘우리 세대에서 지금까지 보다 더 획기적이고 새로운 시도를 해봐야 하는 것 아닐까?’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공감을 더 잘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다다랐어요. 몇 백년전의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무슨 감정을 느껴야하는지 알기 힘든 경우가 많은데, 우리만의 해석을 ‘이야기를 덧입히는 방식’으로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멤버 각각의 소개도 부탁드립니다.
한: 저는 팀의 막내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이고요. 현재 유튜버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본업은 바이올린 연주와 레슨이고, 가끔 저의 음악 일상을 소소하게 편집하여 유튜브에 올려요. 본업의 비하인드인 셈이죠. 워낙 새로운 시도에 관심이 많아서 최근에는 런던 패션위크에서 연주하기도 했어요.
저는 다른 전공자들에 비해 바이올린을 조금 늦게 시작했는데요. 초등학생 때 영재원에 들어가면서 처음으로 ‘전공생으로서’ 음악을 대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조금씩 클래식의 깊이를 알아갔어요. 대학에 가서는 스스로가 틀에 갇힌 느낌이 들어 답답했는데, 마침 코로나로 인해 연주 영상을 찍어 제출할 일이 많아졌어요. 이를 계기로 유튜브 채널을 만들게 되었고, 콘텐츠를 만들어 가면서 저도 몰랐던 재능을 발견했는데요. 이런 재능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갈지 진로 고민을 하던 중 팀원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아직 제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중이지만, 연주가로서의 삶이 제 가슴을 뛰게 한다는 건 항상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장: 저도 바이올리니스트이고요. 전 조금 일찍, 4살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해서 8살에 이쪽으로 전공을 결정하게 되었어요. 아주 오랫동안 한 우물만 판 셈이죠. 첫돌쯤, 장난감 가게에서 바이올린을 사달라고 떼를 쓸 때부터가 시작이었나 봐요. 꼬맹이 시절부터 제 연주에 욕심이 많아, 연주가 잘 안 되면 속상하다고 울기도 했어요.
그만큼 제가 바이올린과 클래식을 애정한 역사가 길어서, 이 팀을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 석사, 박사 등 정통적 연주자의 길을 걷고 있었을 거예요. 그리고 제가 원래 사람을 안 좋아하는데, 이 팀 덕분에 사람과 함께하는 재미를 많이 느끼게 되었어요. 무한 확장된 재밌는 팀플 같달까요? 준비 과정에서 마냥 즐겁고 행복하기만 한 건 아니었지만서도, 연주자/기획자로서의 만족감이 굉장했어요.
권: 저는 어릴 때 어린이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단원이었어요. 그때는 멋모르고 취미로만 하다가, 방황기를 거쳐 싱어송라이터의 꿈을 가지게 된 적도 있는데요, 집안의 거센 반대로 그 꿈은 접었지만,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해서 어떻게든 음악가가 되고 싶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당시 한예종에 갓 합격한 형이 연주하는 비올라 소리를 듣게 되었는데 굉장히 매력 있더라고요. 온전히 비올라 음색이 좋다는 이유 하나로 이 길에 들어서게 되었어요. 클래식 음악이라는 장르로부터 출발한 게 아니다 보니 클래식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좀 필요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입시와 대학 생활을 거치면서 피나게 공부했죠. 음악의 기본은 클래식이라는 편협한 시각을 가지게 될 정도로요.
그러다가 해양 경찰 군악대에 가게 되었는데, 그때 실용음악 밴드와 함께 연주하면서 가치관이 많이 바뀌었어요. ‘이렇게 즐겁게 연습하고 연주할 수도 있구나, 모든 음악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구나’라고요.
전역 후 <다시 태어나도>라는 책의 공동 저자로 참여할 기회가 생겼는데요. 그때 열린 북콘서트에서 저의 정체성을 깨달았어요. 저는 클래식이든 다른 장르든 관계 없이 제 비올라 소리로 제 생각과 진심을 전하는 것을 좋아하고, 음악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에서 큰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란 걸요. 그런 와중에 팀원들을 만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오즈예고 공연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페아토 결성 후 처음으로 올린 공연, <오즈예고> 얘기로 넘어가볼게요. 독자들을 위해 짧게 공연 소개를 해주시겠어요?
권: 아주 간단히 얘기하자면, <오즈의 마법사>와 ‘예술고등학교’를 합친 이야기예요.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도로시와 사자, 양철 나무꾼을 각각 세 명의 예고 학생에 대입하였어요. 1학년 꼴찌 ‘도로시’, 2학년 꼴찌 ‘남궁사자’, 3학년 꼴찌 ’이남욱’은 저마다의 사정으로 학교 시험에서 성적을 내지 못하는 친구들인데, 실내악 콩쿨에 입상하여 큰 혜택과 영광을 얻기 위해 의기투합하게 돼요.
음악에 감정을 담지 못하는 도로시, 무대 공포증으로 실력 발휘를 하지 못하는 남궁사자, 가정 형편 때문에 연습할 시간이 없는 남욱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열심히 준비를 하지만 결국 콩쿨에 입상하지 못하는데요. 이로 인해 팀이 분열된 후, 각자의 고단한 삶으로 돌아가는 듯 했던 극의 전개는 남궁사자의 용기를 통해 전환을 맞게 돼요. 남궁사자가 친구들을 설득하여 와해되었던 팀을 재결집시킨 거죠. 그리고 그 셋은 답은 우리 안에 있다. 실내악 콩쿨의 결과가 아닌, 우리가 팀을 이루고 연습해 온 과정이 답이었다라는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왜 많은 동화 중 오즈의 마법사를 선정하게 되었나요?
권: 오즈의 마법사를 택한 건, “답은 네 안에 있어”라는 메시지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에요. 제가 경험한 클래식계는 1등만 먹고사는 세상, 나머지는 의미가 없는 세상이에요. 저도 ‘알파 연주자’가 아닌 ‘나머지 연주자’로서 취급 받았던 적이 있는데 그 수준이 ‘베타’가 아니라 ‘시그마’ 수준이었거든요.. 시그마라고 인생을 포기하고 살 수는 없잖아요? 1등이 아니라 최초가 될 수 있는 음악을 하자, 너희는 이미 한 명 한 명 모두가 빛난다, 이미 답은 네 안에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극의 배경으로 예고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장: 일단 저희가 가장 잘 아는 소재이기도 했고,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공연이니만큼 음악 전공자들이 많이 보러 와주었음 했는데, 창작자인 페아토와 보러 와주시는 관객이 다 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소재가 ‘예고’였어요. 그 예고라는 소재를 어떻게 풀어낼까 하다가 예성 씨가 제안한 동화가 <오즈의 마법사>였어요. 특히 오즈의 마법사의 캐릭터들이 팀원 각자의 실제 캐릭터와 정말 비슷하단 걸 발견한 게 큰 영감이 되었는데요. 이걸 저희 셋의 자전적인 스토리와 엮어낼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로부터 출발해 마치 물 흐르듯 ‘오즈의 마법사와 예고 배경’이라는 조합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한: 또 다른 이유로는 K-드라마의 클리셰랄까요? 최근 드라마 중 학원물이 유독 많았는데 그 흐름에 편승해 보고자 했죠. (웃음)
권: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예고에 대한 판타지도 흥미를 끌 수 있는 요인이라고 생각했고요.
직접 대본을 쓰는 일이 쉽지가 않았을텐데요. 이를 위해 영감을 얻거나 외부의 도움을 받은 부분이 있을까요?
권: 네 맞아요. 쉽지 않아서 회의를 많이 했죠. 근데 저희가 스토리를 짜긴 해도 길이 조정이 어렵더라고요. 그럴 때마다 연기 선생님이 첨삭을 잘 해주셨어요. 그러다 보니 최종적으로 9개의 버전이 탄생했더라고요. (웃음)
대본과 줄거리를 통해 특별히 전달하고 싶은 메세지가 있었나요?
장: 결과만 중시하는 사회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싶었어요. 특히 한국은 우울증 유병률과 자살률이 높잖아요. 그게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생각해 보면 10대부터 시작된 경쟁과 결과만 중시하는 풍토 때문인 것 같아요. 삶은 성공을 위해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결과와 순위만 중한 것이 아니고 그 과정 속에서 성숙해지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인생의 가치이지 않을까요? ‘모든 사람은 능력으로 인해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 귀하다. 과정에서 배우고 그 경험을 누려라. 인생 속에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 이런 말들을 전하고 싶었어요.
극 장르를 하이틴 ‘스릴러’라고 한 이유가 있나요?
장: 예중-예고-음대 프로세스 자체가, 그들의 인생 자체가 스릴러라서요. (일동 웃음)
한: 시험 성적 순대로 오케스트라 자리를 정하는데, 매 시험마다 그 자리 바뀌게 될까 노심초사하죠. 다 보는데 공개적으로 성적표가 노출되는 거예요.
장: 매 순간순간이 공포죠. 학교 다닐 때는 우스갯소리로 신분제에 빗대어 스스로를 서열화시키기도 했어요. 암암리에 친구를 실력으로 나누어 평가하기도 했고요.
곡 선정은 어떤 기준으로 이루어졌나요?
한: 대부분 클래식 공연들이 곡을 먼저 정하고, 그에 맞춰 공연의 기획을 정하는 방식이 대부분인데, 저희는 스토리 중심의 공연이기 때문에 극의 분위기와 스토리에 맞게 곡을 골랐어요. 대중성이나 효율성도 곡 선정의 기준이었어요. Cheek to cheek이나 Fly me to the moon처럼 대중들에게 더 알려진 곡을 선정하기도 했고, 실기 시험 장면에서는 각자가 가장 자신있고 잘하는 곡을 선정하기도 했어요. 저한테는 집시곡이 잘 어울려서 집시곡을 선정했어요.
장: 효율성이요? 저는 라캄파넬라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곡이라는 이유로 무대에 올렸는걸요? (하하) 제 솔로곡은 전부 제가 이번 공연을 통해 처음 해보는 곡이었어요. 물론 제가 언젠가 연주해보고 싶어서 선정한것도 있긴했지만요.
권: 세은 씨가 배신감을 많이 느끼셨어요. 저랑 예진 씨는 각자 해봤던 곡들을 리스트업 했었어서 (웃음)
한: 여러 기준이 있지만 아무래도 캐릭터와 서사에 맞는지가 가장 큰 기준이었어요. 실내악곡을 정할 때는 Waltzing Matilda나 A New Satiesfaction 같이 듣기에 너무 무겁지 않고 경쾌한 곡을 선정하였습니다.
준비하면서 좋았거나 새로워웠던 경험을 꼽자면요?
장: 타의에 의해 정해진 곡을 연주하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고 연주해 보고 싶은 곡들을 할 수 있었던 게 좋았어요. 특히 거슈인의 It Ain’t Necessarily So처럼 저의 ‘숨’어 ‘듣’던 ‘명’곡을 무대에 올려 공유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어 짜릿했죠.
한: 저는 연기를 해 본 경험이 특별했어요. 제가 극 중에서 맡았던 도로시처럼 저도 음악에 감정을 넣는 게 늘 어려웠는데, 연기를 배우며 감정에 몰입할 수밖에 없으니까 실제 음악을 할 때도 감정 이입이 되는 거예요. 감정선과 음악을 연결하는 법을 새롭게 알게 된 것 같아요.
연기를 시도한다는 생각 자체가 어떻게 떠올랐는지 궁금해요.
장: 에스파처럼 ‘세계관’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를 하다가, 뮤지컬 얘기를 하면서 연기 얘기로 넘어갔던 것 같아요.
권: 맞아요. 아마 제가 얘기를 꺼냈던 것 같은데 제가 싱어송라이터를 꿈꾸던 시절 뮤지컬 배우의 꿈도 가지고 있었기에 ‘연기’라는 선택지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던 것 같아요.
장: 관객에게 클래식 음악의 감정과 스토리를 부여하려는 시도는 이전부터 있었어요. 디즈니에서 ‘피터와 늑대’, ‘판타지아’ 등에 애니메이션을 입히는 것, 해설이 있는 음악 콘서트 등 말이죠. 근데 설명에서 끝나지 않고 보다 직관적이고 강렬한 공감을 통한 감정 전달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 답이 연기라고 생각했어요. 마치 뮤지컬처럼, 연기를 하는데 극적인 장면을 표현하는 장치로 클래식 음악을 쓴 것이죠.
준비하면서 어려웠거나 배움이 가장 많았던 경험을 꼽자면 어떤 게 있을까요?
권: 연기가 어려웠습니다. (하하) 클래식 음악을 배우면서는 늘 감정을 절제해야 했어요. “클래식은 절제하는 멋이다. 하체를 너무 많이 움직이지 말아라. 특히 남자가 감정에 휘둘리면 안된다”란 식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했었죠. 그런데 연기 선생님은 수업 때 저한테 “저기 가서 울고 오라”고 하시더라고요. 선생님이 같이 울어주시니 저도 감정이 올라와 울고서 그 상태로 바로 연주를 했었는데, 제가 이전까지 연주해본 적 없는 방식으로 연주하게 되고, 감정도 더 잘 전달이 되더라고요.
한: 전 “내 지인들 다 올 텐데 내가 그 앞에서 어떻게 연기를 하지?”라는 생각에 정신적으로 힘들었어요. 스스로 ‘난 배우야’라고 세뇌 하기도 했고요. 그 틀을 깨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권: 처음에는 셋이 서로 눈도 잘 못 봤어요. 그래도 나중에는 예진 씨와 세은 씨가 도로시로 보이고 사자로 보이고 하더라고요.
장: 연기 시도를 절박함에 한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시향 자리는 들어가기가 너무 어렵고, 레슨도 한 철에만 수요가 많잖아요. 물론 그럼에도 잘 하시는 분도 있지만, 저는 프리랜서 연주자의 삶이 너무 불안하다 보니까 악기를 빨리 관두고 다른 직업을 찾아봐야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우리의 새로운 시도는 이런 절박함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관객의 반응 또는 피드백이 있나요?
한: 클래식 음악 연주할 때에는 관객과 다른 언어로 대화하는 느낌이 들어요. 관객들은 뉘앙스 정도만 알아듣는 느낌이랄까요? 느리다 - 빠르다, 시끄럽다 - 조용하다 정도만 파악하시는 경우도 많아요. 그런데 스토리를 통해 감정선을 잡아 주고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니 관객들이 이 연주를 완전히 이해하시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여태까지 악기 연주를 하면서 느껴보지 못한 소통의 경험이었어요.
장: 이전에는 관객의 눈을 보고 공연한 적이 없어요. 특히 바이올리니스트는 옆을 보고 연주하니까요. 그런데 이 공연에서는 관객을 대면하고 즉각적인 반응을 봐야 했잖아요. 내 움직임과 말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관객들의 모습이 재미있었어요.
권: 관객들 피드백 중에서는 “서사 속 음악을 들으니 항상 이해하기 어려웠던 음악이 느껴진다.”, “모든 중고생이 봤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가 봤으면 좋겠다.”라는 피드백이 감동적이었어요. “시간 가는 줄 몰랐다”라는 피드백도 되게 뿌듯했고요.
여러분에게 페아토의 활동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요?
권: 저희의 활동이 음악가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되면 좋겠어요.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의 대가 끊기지 않고 계속해서 질이 좋아지면 좋겠어요. 경제가 힘들 때 삶에서 가장 먼저 포기하는 게 예술과 문화잖아요. 이 중요성과 가치를 지키는 힘이 되고 싶어요.
한: ‘나만 잘 먹고 잘 살자’가 아니라 ‘다 같이 함께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 활동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장: 저희의 작업 같은 여러 시도가 많아진다면 클래식의 진입장벽이 낮아져서 전공자도 많아질 것이라 생각해요. 그러면 전통 클래식의 퀄리티도 좋아지고 이 생태계가 살아나지 않을까요? 클래식계와 대중 양쪽에 다 좋은 영향을 미치고 싶어요.
페아토가 생각하는 페아토의 강점은 무엇일까요?
장: 저희의 강점은 열린 생각이에요. 새로운 시도에 겁이 없고요.
권: 셋 다 아이디어가 넘쳐나요.
한: 그만큼 저희가 오래 앉아서 얘기를 나누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요.
권: 또 중요한 포인트는, 저희가 클래식의 진가를 아는 사람들이라는 점인 것 같아요. 클래식 음악이 정말 좋은데 셀링이 잘 안 되어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희가 그 셀링 포인트를 잘 잡아낼 수 있을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한: 최근 들었던 테드 강의 ⟪How playing an instrument benefits your brain⟫에서 음악을 들으면 뇌의 여러 부분이 동시다발적으로 활성화된다는 뇌파 연구 결과를 언급했어요. 더구나 악기 연주를 하면 좌뇌와 우뇌 사이의 뇌량이 두꺼워진다고 해요.
장: 그래서 음악하는 사람들이 창의적이고 독창적이라고 하더라고요. 이런 셀링포인트들이 있는데 아직까지 잘 살려지지 않은 것 같아 아쉬워요.
페아토 활동을 하면서 생긴 고민이 있을까요?
권: 아직 너무 신생팀이라는 것? 그래서 헤쳐 나가야 할 게 많다는 것이죠. 일례로 <오즈예고> 공연 피드백 때 기존에 하지 못했던 공연 제반 상황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었는데 이런 것들이 경험의 차이에서 나오는 결과라고 생각해요. 열심히 해서 빨리 경험을 쌓아야겠죠.
한: 그리고 아직까지는 자본이 없어서 각자의 개인적 수입을 팀에 투자하고 있어요. 지금은 페아토가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고 꿈을 위한 투자라는 것이 고민이라면 고민입니다.
권: 이번에는 연출과 연기 선생님을 섭외하여 공연을 꾸렸는데, 첨언해 주시는 선생님이 자기만의 주관이 있을 수밖에 없잖아요. 첫 시작으로는 선생님들 말씀을 들어가며 배우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지만, 앞으로 독자적인 생각을 표출하는 예술가로서 활동을 이어가려면 여러 방면에서 능력을 키워야 할 것 같아요. 음악 외적인 역량을 포함해서요.
장: 혼자서 모든 것을 통제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각각 장단이 있는 것 같아요. 저희 셋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도 있으니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 적재적소에 협업할 수 있다면, 그래서 페아토와 시너지를 낼 수 있다면 매우 좋겠죠. 그런 인재를 알아보고 소통할 수 있을 정도의 내부적 능력을 키우자 정도의 마음이에요.
비슷한 또래의 클래식 전공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한: 다양한 사람을 많이 만나라는 얘기를 하고 싶어요. 저도 그랬지만, 주변에 음악하는 사람들 밖에 없잖아요. 연습만 하지 말고 세상을 넓게 보라는 얘기를하고 싶어요. 다양한 경험을 할 수록 시야가 넓어지고, 내가 세상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로 생각이 확장되는 것 같아요.
다음으로 예정 중인 프로젝트가 있나요?
장: 최근 저희와 마음과 생각이 비슷한 작곡가님을 만나게 되어서 그 분과 새로운 앨범 작업을 하게 되었어요. 그 다음으로는 동양의 동화를 공연으로 올려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오즈예고>의 여파로 지금은 연극과 연기가 페아토의 정체성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너머로 더 다양한 창조적 시도를 하고 싶어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않고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산이든 들이든 생활 속 어디든 스며들어 공연하고 싶어요.
페아토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권: ‘Do You Know’ Member가 되는 거요. (웃음) Do you know 김치? Do you know 강남스타일? 하듯이 “Do you know 페아토?”로 통하는, 한국을 대표하는 팀이 되고 싶어요.
한: 우리한테 이런 길을 제시해준 선배는 없었지만, 저희의 활동이 다른 연주자들에게 새로운 영감이 될 수 있도록 영향력을 미치고 싶어요.
권: 갈대 밭에서 어디가 길인지 다들 헤메고만 있거든요. 갈대가 조금 꺾인 곳이 있으면 거기가 길이라고 쫓아가요. 근데 정해진 것은 없잖아요. 헤치면서 만들어 갈 수 있는게 길이죠. 그걸 먼저 앞서서 만들고 여기에도 길이 있다고 알려주고 싶어요.
이 인터뷰를 읽어주신 독자 분들께 마지막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권: 길은 만들어 가는 것. 여러분의 길을 만드세요.
장: 거창하지 않더라도, 한 개인이 한 개인에게만 도움을 준다면 모두가 잘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서로 미워하지 않고 같이 상생하면 좋겠어요.
한: 페아토 많관부! (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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